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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지옥의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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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고?”

내 속삭임은 마차의 삐걱임에 섞여들지 못했다. 그 대신, 얼음송곳처럼 이안 데 발레리우스의 귓전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의 목덜미에 닿아 있는 내 단검의 시퍼런 날이 그 증거였으니까. 아주 희미한 힘만 실어도, 그의 고고한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터져 나올 터였다. 하지만 남자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마치 목에 닿은 것이 차가운 쇠붙이가 아니라 연인의 손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그의 차분한 대답이 내 인내심의 마지막 끈을 잘라냈다. 나는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얇은 피부를 파고드는 감각. 붉은 핏방울이 선명하게 맺혔다.

“헛소리 집어치워. 알렉산더 경이 투옥됐다. 황태자를 시해하려 한 반역죄로. 그런데 넌 날 제국으로 데려가? 이게 네놈이 말한 복수의 무대야, 아니면 내 무덤이야?”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이안은 여전히 마차 앞을 주시한 채로 대답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반짝였다. 그 여유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지난 5년간, 나는 저런 눈을 가진 자들을 수없이 죽여왔다. 자신의 권력과 능력을 맹신하는 어리석은 자들.

“마지막 기회야. 넌 누구지? 황태자의 개인가, 아니면 2황자의 개인가? 네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네놈의 혀를 먼저 자를지, 손가락부터 자를지 결정하지.”

“제 주인은 없습니다, 그림자 님.”

드디어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목에서 흐르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감정에 가까운 얼굴. 하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활화산 같은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본 그 어떤 인간보다도 복잡하고 위험한 사내였다.

“저는 그저, 가장 가능성 높은 패에 모든 것을 건 투자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패는 바로 당신이고요.”

“알렉산더 경은 내 유일한 패였어. 내 생존을 아는 유일한 아군이었지. 그런데 그 패가 사라졌는데, 내가 네 장기 말이 되어 춤을 출 것 같아?”

“그래서 더더욱 당신이 필요해진 겁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알렉산더 경은 제국 기사단의 심장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황제 폐하께만 충성하는 마지막 보루였죠. 황태자는 그런 그를 곁에 둘 수 없으니 반역자로 몰아 가뒀고, 2황자는 그를 회유하려다 실패했습니다. 그의 투옥으로 제국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제 누구도 전쟁을 막을 수 없게 됐죠.”

그의 논리에는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나를 설득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전쟁터 한복판으로 날 밀어 넣어서 뭘 어쩌겠다고?”

“불길을 잡는 가장 빠른 방법은 더 큰 불을 지르는 겁니다. 죽은 줄 알았던 셋째 황녀의 귀환. 그것만큼 제국의 모든 귀족과 기사, 백성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사건은 없습니다. 황태자와 2황자가 벌이는 진흙탕 싸움의 판 자체를 뒤엎는 거죠. 알렉산더 경이 있었다면 안정적인 복귀를 도왔겠지만, 그가 없기에… 당신은 이제 구원자가 아니라 파괴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파괴자. 그 단어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천천히 단검을 거뒀다. 그를 죽이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이안 데 발레리우스. 이 남자가 가진 정보와 배경 없이는, 나 혼자 제국에 돌아가봤자 이름 없는 시체 하나를 늘릴 뿐이었다.

“좋아. 거래는 유지하지. 하지만 명심해둬, 이안.”

나는 피 묻은 칼날을 내 소맷자락에 아무렇게나 닦아내며 경고했다.

“네놈이 날 배신하는 순간, 난 네 심장을 꺼내 발레리우스 가문의 깃발 위에 걸어둘 거야.”

그는 내 살벌한 협박에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영광이겠군요.”

***

수도로 향하는 길은 멀고 험했다. 이안의 말대로 제국은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부글거리고 있었다. 국경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황폐해졌고,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경계심이 가득했다. 마을 입구마다 각기 다른 깃발을 내건 용병들이 통행세를 뜯어냈고, 영주들은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였다. 이것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카이센 제국이 아니었다.

마차 안에서, 이안은 제국의 현 상황을 조각난 그림 맞추듯 설명해주었다.

“황태자 아서 데 카이센. 원칙과 명예를 중시하는 강직한 군인이지만,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습니다. 황실 근위대와 제국 정규군 대다수가 그를 지지하고 있죠. 그는 2황자와 2황후가 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럴싸한 의심이군.”

나는 짧게 대꾸했다. 레안드라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여자였다.

“반면, 2황자 에반 데 카이센은 사교적이고 영리합니다. 수도의 젊은 귀족들과 상인 세력이 그의 편이죠. 그는 황태자가 늙은 아버지를 밀어내고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기사단장까지 엮어 넣은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고요.”

“둘 다 서로에게 완벽한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군. 이래서야 전쟁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하지.”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피폐한 농촌 풍경을 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황위 다툼이라는 그들만의 놀음에, 잿더미가 되는 것은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의 삶이었다.

“가장 중요한 자금은 어떻지? 전쟁은 결국 돈 싸움이니까.”

내 질문에 이안의 눈이 빛났다. 그는 내가 핵심을 짚었다는 사실에 만족한 듯 보였다.

“현재 제국의 국고는 황태자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건 다섯 개의 대규모 상단 연합, ‘오르비스 상회’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제롬 마키아는… 아직 어느 쪽에도 줄을 서지 않았습니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늙은 여우지. 양쪽이 피 터지게 싸워 국력이 소진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기는 쪽에 막대한 빚을 지우고 제국 경제를 통째로 삼킬 생각일 거야.”

나는 어릴 적, 연회에서 몇 번 마주쳤던 제롬의 탐욕스러운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을 터였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등장이 중요합니다. 제3의 선택지. 무너져가는 제국을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 그 늙은 여우에게 가장 구미가 당기는 투자처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나보고 그 여우 앞에 가서 재롱이라도 부리라는 소리로군.”

“필요하다면 말이죠.”

이안의 단호한 대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더러운 정치판.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겨운 건 마찬가지였다. 마차는 덜컹거리며 숲길로 접어들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마차 지붕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눅눅하고 차가운 공기가 마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

그날 밤, 우리는 숲 속의 낡은 사냥꾼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이 이상 말을 모는 것은 무리였다. 이안이 모닥불을 피우는 동안, 나는 오두막 주변을 살폈다. 용병의 감각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조용했다. 빗소리를 제외하면, 이 깊은 숲에서 들려야 할 흔한 밤짐승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이 숲의 생태계를 통째로 삼켜버린 듯한 부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손님이 온 것 같군.”

내가 나직이 말하자, 모닥불 앞에 앉아 있던 이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열 명. 여덟은 나무 위, 둘은 정면에서 접근 중.”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침착했지만, 나는 그의 손이 허리춤의 장검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프로들이군.”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빗소리에 섞여 들리는 미세한 나뭇잎 스치는 소리. 훈련받지 않은 자라면 절대 낼 수 없는 소리였다. 단순한 산적이나 용병이 아니었다. 이들은 ‘사냥’을 위해 온 자들이었다.

“누굴 노리는 걸까. 발레리우스의 후계자? 아니면….”

“어느 쪽이든, 살아서 돌아가게 둘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쐐애액-! 하고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내가 서 있던 자리의 나무 기둥에 깊숙이 박혔다. 나는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리아’가 아니었다. 숨통을 끊기 위해 다가오는 자들 앞에서 귀족 영애 놀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망토와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자락을 찢어버리고, 허벅지에 숨겨두었던 단검 두 자루를 양손에 고쳐 쥐었다. 비에 젖은 흙냄새와 피 냄새가 섞일 것을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운 감각이었다.

“뒤는 맡기지.”

이안을 향해 짧게 한마디 던진 나는, 한 마리 검은 표범처럼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내 말에 대답 대신 검을 뽑아 드는 것으로 화답했다. 쨍, 하는 맑은 쇳소리가 빗속에 울려 퍼졌다.

첫 번째 표적은 오두막 동쪽의 가장 큰 떡갈나무 위에 있었다. 나는 소리 없이 나무 뒤로 접근해, 와이어를 던져 놈의 발목을 낚아챘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거꾸로 매달린 놈의 목에 지체 없이 단검을 꽂아 넣었다. 뜨거운 피가 빗물과 함께 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사이, 오두막 앞에서는 이안이 두 명의 자객을 상대로 검무를 추듯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검술은 정교하고 우아했다. 제국 기사단의 정통 검술. 하지만 나는 그가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단순한 귀족 도련님이 아니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피에 익숙한 자였다.

나는 나무들 사이를 그림자처럼 옮겨 다니며 차례차례 자객들의 숨을 끊었다. 그들은 분명 정예였지만, 어둠은 나의 영역이었다. 5년간 그림자로 살며 터득한 나의 암살술은 제국의 그 어떤 훈련보다도 실전적이고 잔혹했다.

마지막 남은 자가 당황한 기색으로 동료를 찾는 순간, 나는 그의 등 뒤 나뭇가지에서 소리 없이 뛰어내렸다. 그의 어깨를 밟고 몸을 회전시키며 목에 단검을 그었다. 놈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끝났다. 빗소리만이 다시 숲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피 묻은 단검을 털며 오두막 앞으로 돌아왔을 때, 이안 역시 마지막 상대를 베어 넘기고 검에 묻은 피를 빗물에 씻어내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서로의 실력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이 오갔다.

“시신을 확인해봐야겠군.”

나는 가장 가까이에 쓰러진 자객의 복면을 벗겼다. 특별한 표식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팔뚝 안쪽에 새겨진 작은 문신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붉은 사자의 갈기. 황태자 아서의 친위대이자 제국 최정예 기사단인 ‘진홍의 사자단’의 표식이었다.

나는 싸늘한 눈으로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황태자가 벌써 내 귀환을 알아챈 건가?”

내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의심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를 황태자와 적으로 만들기 위한 이안의 계략일지도 몰랐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다가와, 다른 시신 옆에 꽂힌 화살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화살촉을 유심히 살피던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아니. 이건 황태자의 짓이 아닙니다.”

그는 화살촉 끝에 묻은 검푸른 액체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냄새를 맡았다.

“이상하군요. 진홍의 사자단은 임무 수행 시 절대 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긍지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그의 말에 나는 다른 시신들을 확인했다. 그들의 무기에는 하나같이 동일한 독이 묻어 있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 마치 ‘이건 진홍의 사자단의 소행이다’라고 광고라도 하는 것 같았다. 함정이었다. 누군가 황태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2황자인가?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안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게 잠겨 있었다. 그는 쓰러진 자객의 손목에서 작은 장신구 하나를 풀어내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 독… 제게는 아주 익숙한 물건입니다.”

나는 그가 내민 것을 받아들었다. 작은 은 세공으로 만든 팔찌.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 팔찌에 새겨진 문양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게 뭔데?”

이안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깊은 심해처럼 일렁였다. 그가 내뱉은 다음 말은, 얼어붙은 강물 속으로 다시 한번 나를 밀어 넣는 듯한 충격이었다.

“5년 전, 돌아가신 황후 폐하의 침실에서 발견되었던 것과 같은 독이자, 같은 세공사의 표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