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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서울의 밤은 끝없이 차갑다. 골목길을 따라 흐르는 네온사인의 빛은 희미하게 깜빡이며, 마치 내 심장 박동처럼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공기는 습하고, 비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발밑의 젖은 아스팔트가 미끄럽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균형을 잃을까 두렵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뒤에서 들려오는 추격자들의 발소리와 드론의 기계음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손에 쥔 USB는 내 과거의 조각을 담고 있다. 그 안에 어떤 진실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오직 달리는 것만이 내 선택이다.
유령이 내 손을 꽉 잡고 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그 온기가 이상하게도 나를 진정시킨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그는 앞을 보며 낮게 말한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힐끔 본다. 땀에 젖은 그의 이마, 굳게 다문 입술. 그의 눈빛에는 다급함과 함께 무언가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왜 나를 이렇게까지 돕는 걸까.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지금은 물어볼 여유가 없다.
"이나, 조금만 더 가면 돼. 저 앞에 폐공장이 있어. 거기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거야."
유령의 목소리는 다급하지만 침착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헐떡인다. 폐공장이라니, 안전한 곳일까. 리셋의 추격자들이 쉽게 포기할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골목 끝을 돌아서자, 낡은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인 폐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오래되어 벽이 무너져 있고, 녹슨 철골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창문은 깨져 있고, 어둠 속에서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친다. 안전해 보이진 않지만, 적어도 추격자들의 눈을 잠시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울타리 사이의 틈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발밑에서 부서진 유리 조각이 바삭거리며 소리를 낸다. 나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핀다. 공장 내부는 거대한 기계들이 녹슬어 버려진 채로 널려 있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공기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하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여기서 잠시 숨어. 내가 주변을 확인하고 올게."
유령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의 손이 떨어지는 순간 불안이 다시 밀려온다. 그가 떠나면 나 혼자 이 어두운 공간에서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빨리 돌아와. 혼자 있으면… 무서워."
유령이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그의 눈빛에 미세한 흔들림이 스친다.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 마. 금방 돌아올 거야. 넌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웅크리고 기계 뒤에 숨는다.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손끝이 떨린다. USB를 꽉 쥐며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괜찮아, 이나. 조금만 버티면 돼. 하지만 머릿속에는 고아원에서 본 영상이 계속 떠오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나를 끌고 간 어두운 방.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리셋이 내 기억을 지운 이유는 무엇일까.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가슴을 조여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장 안의 어둠은 더 짙어지는 것 같다. 멀리서 드론의 기계음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추격자들이 이곳까지 왔을까. 아니, 아직은 아닐 거야. 나는 손전등을 꺼내 주변을 살짝 비춰본다. 녹슨 기계들, 먼지 쌓인 바닥, 그리고 벽에 낙서된 글씨. ‘리셋은 적이다.’ 누가 쓴 걸까. 나처럼 리셋에게서 도망친 자들일까. 그 생각에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스친다.
그 순간,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숨을 멈추고 기계 뒤로 몸을 더 숨긴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유령일까, 아니면 추격자일까. 손에 쥔 USB를 더 세게 쥐며 나는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나, 나야. 괜찮아."
유령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킨다. 그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 그는 손에 작은 디지털 패드를 들고 있다.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이 희미한 네온빛에 비친다. 나는 그를 보며 안도감과 함께 묘한 설렘이 가슴을 스치는 걸 느낀다. 왜일까. 그의 존재가 이렇게까지 나를 안심시키는 이유는 뭘까.
"추격자들은? 근처에 없어?"
내가 묻자 유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패드를 보여준다. 화면에는 주변 지도가 떠 있고, 붉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다.
"지금은 조금 떨어져 있어. 내가 드론 신호를 교란시켜서 시간을 벌었어. 하지만 오래 버틸 순 없어. 이곳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안 돼."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USB를 내려다본다. 이 안에 담긴 데이터, 내 과거의 조각. 그걸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밀려온다. 나는 유령을 바라보며 물어본다.
"이 데이터, 여기서 확인할 수 있어? 지금 당장 알고 싶어. 내 기억이… 대체 뭐였는지."
유령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쉰다. 그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담겨 있다. 그는 패드를 내려놓고 내 옆에 앉는다. 그의 어깨가 내 어깨에 살짝 닿는다. 그 순간, 묘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숨을 삼킨다.
"이나, 지금 당장 확인하는 건 위험해. 리셋이 이 데이터를 추적할 가능성이 있어.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 뒤에 열어보는 게 나아. 그리고… 네가 이걸 보면 충격받을 수도 있어. 준비가 필요해."
그의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충격받을 수 있다니, 대체 어떤 기억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나는 손을 떨며 USB를 쥔 손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다. 지금은 안전이 우선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알았어. 그럼 어디로 가야 해? 안전한 곳이 어딘데?"
유령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이다가 입을 연다.
"내 은신처로 갈 거야. 거기라면 리셋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어. 네 기억을 확인하기에도 적합한 장소지.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쉽진 않을 거야. 추격자들이 우리 흔적을 놓치지 않았어."
그의 말에 나는 긴장감이 다시 솟구치는 걸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은신처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다. 그의 정체를 조금 더 알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어본다.
"네 은신처? 거기서… 너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거야? 넌 대체 누구야, 유령? 왜 나를 돕는 거야?"
유령은 내 질문에 잠시 침묵한다. 그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어둠 속을 바라본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살짝 떨리는 것처럼 들린다.
"그 질문엔… 아직 대답할 수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게.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네가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끝까지 도울 거야."
그의 말이 진심처럼 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의 목소리, 그 익숙함. 내 기억 속 어딘가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 걸까.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낀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 그를 믿고 싶은 마음과 의심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그 순간, 멀리서 드론의 기계음이 다시 들려온다. 유령이 벌떡 일어나며 나를 잡아끈다. 그의 손이 다시 내 손을 꽉 쥔다.
"시간 없어. 지금 움직여야 해. 추격자들이 가까워지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일어난다. 우리는 다시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폐공장을 빠져나오며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뉴서울의 밤이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뒤에서는 추격자들의 외침과 드론의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유령의 손을 잡고 있는 한, 나는 멈출 수 없다.
그의 은신처. 그곳에서 내 기억의 조각들이 밝혀질까. 그리고 유령의 정체, 그가 나를 돕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지금은 오직 달리는 것만이 내 선택이다. 뉴서울의 어둠 속에서, 나는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추격자들의 그림자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어둠을 뚫고 안전한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다음 순간이 두렵지만, 동시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