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5화. 5화: 은신처의 비밀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뉴서울의 밤은 끝없이 차갑고, 네온사인의 빛은 마치 나를 조롱하듯 깜빡인다. 폐공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다시 어둠 속 골목길을 내달리고 있다. 발밑의 젖은 아스팔트가 미끄럽게 느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뒤에서는 리셋의 추격자들의 외침과 드론의 기계음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손에 쥔 USB는 내 과거의 조각을 담고 있지만, 그 무게가 지금은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유령이 내 손을 꽉 잡고 앞장서 달리고 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그 온기가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 된다. 그의 옆얼굴을 힐끔 보니 땀에 젖은 이마와 굳게 다문 입술이 보인다. 그의 눈빛에는 다급함과 함께 무언가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왜 나를 이렇게까지 돕는 걸까.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숨을 고를 여유조차 없다. 그의 손을 놓치면 나는 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골목길을 돌자마자 그는 속도를 늦추며 주변을 살핀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희미한 네온빛이 스며들고, 멀리서 자동차 소음이 들려온다. 그는 나를 끌어당겨 건물 벽에 몸을 숨기며 낮게 숨을 고른다. 나도 그의 곁에 붙어 숨을 죽인다. 드론의 기계음이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가고,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뛴다.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며 떨리는 숨을 내쉰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이나. 내 은신처는 여기서 멀지 않아. 버텨."

그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하지만, 살짝 떨리는 울림이 섞여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눈을 바라본다.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은신처라니, 대체 어떤 곳일까. 그리고 그곳에서 내 기억의 조각들이 밝혀질 수 있을까.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가슴을 조여온다.

"은신처까지… 안전할 거라고 확신해? 리셋이 우리를 계속 추적하고 있잖아."

내 목소리는 떨리고, 불안이 그대로 묻어난다. 유령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완벽히 안전한 곳은 없어. 하지만 거기라면 리셋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은폐되어 있어. 내가 직접 만든 곳이니까. 믿어, 이나."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망설인다. 믿고 싶지만, 그의 정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완전한 신뢰를 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손에 쥔 USB를 더 세게 쥐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손이 다시 내 손을 잡고,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골목길을 몇 번 더 돌자, 낡은 아파트 단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창문은 대부분 깨져 있다. 네온사인의 빛조차 이곳까지는 닿지 않는 것처럼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유령은 주변을 살피며 나를 이끌고 건물 뒤편의 좁은 계단으로 향한다. 계단은 녹슬고, 발을 디딜 때마다 끼익 소리가 울린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의 뒤를 따른다. 공기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하고, 벽에는 낙서와 오래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곳이 정말 안전한 곳일까. 불안이 다시 밀려오지만,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다.

계단을 올라 5층에 도착하자, 유령은 복도 끝에 있는 낡은 문 앞에 멈춘다. 문에는 자물쇠 대신 디지털 패드가 붙어 있다. 그는 빠르게 코드를 입력하고, 문이 덜컥 열린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문을 닫고 잠금 장치를 걸며 나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좁은 방 안은 예상과 달리 최첨단 장비들로 가득 차 있다. 벽에는 여러 개의 모니터가 붙어 있고, 책상 위에는 키보드와 각종 디지털 기기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한쪽 구석에는 작은 침대와 낡은 소파가 보인다. 이곳이 그의 은신처라니, 단순한 해커의 아지트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기가… 네 은신처야? 이런 곳에서 뭘 하는 거야?"

내가 놀란 목소리로 묻자, 유령은 소파에 앉으며 한숨을 쉰다. 그는 땀을 닦으며 나를 바라본다.

"여긴 내가 리셋의 감시를 피해 작업하는 곳이야. 뉴서울의 시스템을 해킹하거나, 리셋의 데이터를 캐내는 데 필요한 모든 장비가 여기 있어. 일단 앉아. 좀 쉬어야 해."

그의 말에 나는 망설이다가 소파에 앉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나는 손에 쥔 USB를 내려다보며 다시 물어본다.

"그럼… 이제 이 데이터 확인할 수 있는 거지? 내 기억, 여기서 확인해도 안전해?"

유령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담겨 있다. 그는 책상으로 다가가 USB를 컴퓨터에 꽂고, 모니터를 켠다. 화면이 깜빡이며 고아원에서 다운로드한 데이터가 떠오른다. 내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손끝이 떨린다.

"확인할 수는 있어.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이나. 이 안에 담긴 게 모두 네가 원하는 기억이 아닐 수도 있어. 리셋이 조작한 데이터일 가능성도 있고… 네가 충격받을 내용일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진지하고, 나를 걱정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충격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괜찮아. 알아야 해. 내가 누구였는지, 리셋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더 이상 모르는 채로 도망치고 싶지 않아."

유령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데이터를 열기 시작한다. 모니터에 고아원의 기록들이 다시 떠오른다. 낡은 복도,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그 검은 정장의 남자. 나는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한다. 영상이 재생되며, 어린 내가 다시 보인다. 이번 영상은 고아원의 연구실 같은 곳에서 찍힌 것 같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내 머리에 이상한 기계를 연결하고 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고 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이건… 대체 뭐야? 저들이 나한테 뭘 한 거야?"

내 목소리가 떨린다. 유령은 화면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안타까움이 섞여 있다.

"리셋의 기억 조작 실험이야. 고아원을 이용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기술을 테스트했어. 네 기억을 지우고, 새로 쓰는 실험. 너는… 그 실험 대상 중 하나였어."

그의 말이 머릿속을 강타한다. 실험 대상. 나는 단순히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누군가의 실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밀려온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화면을 노려본다. 눈물이 고이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럼… 내 기억은 전부 가짜라는 거야? 내가 기억하는 나 자신은… 진짜가 아닌 거야?"

유령은 잠시 망설이다가 내 손을 잡는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그 온기가 나를 조금 진정시킨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지 않아. 네 기억 중 일부는 진짜일 거야. 리셋이 지운 건 네가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되는 부분, 그들이 숨기고 싶은 진실이 담긴 부분이야. 우리는 그걸 찾아야 해. 네 진짜 과거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눈물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흐르지만, 나는 닦지 않는다. 분노가 가슴을 채우고, 동시에 유령에 대한 신뢰가 조금 더 커진다. 그는 나를 돕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그는 왜 나를 돕는 걸까. 그의 목소리가 익숙한 이유는 뭘까.

그 순간, 모니터 화면이 깜빡이며 새로운 파일이 열린다. 이번에는 텍스트 로그다. 고아원에서의 실험 기록. 내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옆에는 ‘프로젝트 네온’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나는 눈을 좁히며 그 단어를 읽는다. 프로젝트 네온. 그게 대체 뭐지. 나는 유령을 바라보며 묻는다.

"프로젝트 네온… 이게 뭐야? 나랑 관련이 있는 거야?"

유령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를 끈다. 그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낮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지금은… 그 얘기할 때가 아니야. 네가 더 알아가기 전에 준비가 필요해. 이건 단순한 기억 문제가 아니야, 이나. 더 깊은 비밀이 얽혀 있어."

그의 말에 나는 불안이 다시 밀려온다. 더 깊은 비밀이라니.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나는 그의 팔을 잡고 다시 묻는다.

"숨기지 마, 유령. 나한테 말해. 프로젝트 네온이 뭐야? 왜 나한테 말하지 않는 거야?"

유령은 나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인다. 그의 눈빛에는 갈등이 담겨 있다. 그는 결국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미안해, 이나. 지금은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약속할게. 때가 되면 다 말해줄 거야. 지금은… 네가 안전한 게 우선이야."

그의 말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낀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은 그를 믿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나를 정말 끝까지 도울 수 있을까. 아니, 그는 나를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순간, 모니터 옆에 놓인 작은 디지털 패드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유령이 재빨리 패드를 확인하며 표정이 굳어진다. 그는 낮게 중얼거린다.

"젠장, 리셋의 드론이 근처까지 왔어. 우리가 여기 있는 걸 감지한 것 같아. 움직여야 해."

내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이곳마저 위험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그를 바라본다.

"어디로 가야 해? 또 도망쳐야 하는 거야?"

유령은 USB를 뽑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빛에는 다급함이 담겨 있다.

"그래, 하지만 이번엔 내가 계획이 있어. 리셋의 본거지로 접근해야 해. 네 기억의 마지막 조각이 거기 있을 거야. 하지만… 위험해. 각오해야 해, 이나."

그의 말에 나는 숨을 삼킨다. 리셋의 본거지라니. 그곳은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곳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동시에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열망이 나를 밀어붙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한다.

"각오했어. 가자, 유령. 내 기억을 되찾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유령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에는 안도감과 함께 무언가 슬픈 기운이 담겨 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문 쪽으로 향한다. 우리는 다시 어둠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뉴서울의 밤은 여전히 깊고, 추격자들의 그림자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리셋의 본거지로 가는 길, 그곳에서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움이 가슴을 짓누르지만, 유령의 손을 잡고 있는 한 나는 멈출 수 없다. 다음 순간이 두렵지만, 동시에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는 설렘이 나를 앞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