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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의 말에 카이로스는 잠시 굳어 있었다. 마치 그녀의 대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눈은 한동안 공허하게 떠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흡사 풍전등화처럼 불안정했다.
"너는 내 경고를 이해한 것인가?"
카이로스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여전히 단호했다. 그가 시아를 보호하고자 했던 마음이 그녀의 확고한 대답에너지 못지않게 강렬했다.
"네, 폐하. 저는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시아는 그의 눈을 마주 보며 단단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 끝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어떤 두려움도, 어떤 불안도 그녀의 결의를 없애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를 더욱 굳건히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카이로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창밖의 붉어지는 하늘은 그를 압박하듯이 빠르게 색을 더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이 순간이 무언가를 결단지어야 하는 순간임을 알고 있었다.
"시아, 너는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비통하게 들렸다. 그는 이제 시아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 처음 그녀를 바라봤을 때의 차가운 표정은 사라졌다. 대신 연약하지만 강인한, 그녀만의 색이 카이로스를 감싸고 있었다.
"폐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시아는 그의 손을 맞잡고 그 결연한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그 손에 자신의 온기를 전달하며 카이로스를 안정시키려 애썼다. 그 손은 차가웠고, 그 차가움은 이제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너를 방주에 타게 할 수도 있었는데," 카이로스는 낮게 웃었다. "내 선택이 무모했을 수도 있겠군."
"폐하, 어쩌면 폐하의 선택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지도 모릅니다."
시아의 말에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의지는 그녀 스스로를 넘어 황제를 지키고자 하는 결단이었다.
"네 덕분에 내 선택이 바뀌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다. 감사와 미안함, 그리고 조심스러운 존경.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 문이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황궁의 무게를 진 테오가 서재 문 앞에 서 있었다.
"폐하, 대신들이 이미 모였습니다. 남쪽 경계에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듯합니다."
테오가 말을 마치자 카이로스는 다시금 황제의 얼굴로 돌아갔다. 그의 눈빛은 결단의 빛을 띠고 있었다.
"알겠다. 곧 갈 것이다."
카이로스는 시아에게 마지막으로 눈을 맞추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무언가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시아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선택을 했고, 그녀도 그 선택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테오, 시아를 잘 돌봐라. 그녀가 곧 나의 옆자리에 설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이에겐 보이지 않는 결혼 서약과도 같은 의미였다. 테오는 놀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알겠습니다, 폐하."
시아는 카이로스가 떠나는 순간을 바라보았고, 그의 등 뒤로 힘겹게 드리워진 황실의 책임감과 고뇌를 조용히 감싸주는 듯한 경외감을 느꼈다. 오늘의 선택은 단지 그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문이 닫히자, 시아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녀는 결코 이 자리에 안정적으로 남아있을 수 없지만,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이 자리를 지켜내야 했다.
쉬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시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궁전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크고 작은 전쟁들을 기억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자연스레 시아의 손은 여전히 따스하게 식지 않은 그의 온기를 느꼈던 뺨으로 향했다. 그 온기는 그녀에게 강함을 주었고, 결국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새벽이 다가왔다. 그녀는 궁정의 그림자가 걷힐 때까지 그곳에 설 것이며, 그곳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를 그녀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될 것이다.
시아는 자신의 가슴 속에서 깊숙이 타오르는 단단한 불꽃을 느끼며, 이 불꽃의 끝을 너무도 알고 싶어지는 기분에 자신을 맡겼다. 그 끝이 어디일지, 누구와 함께할지를 상상하며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무엇도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그녀가 하나하나 경험하며 만들어갈 여정 그 자체가, 모든 것이 모인 마지막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부드러운 새벽 공기가 그녀의 볼을 스쳐가는 순간, 시아는 그저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짧았던 공백 속에서, 쏟아질듯한 작은 빛조차 소중히 아끼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현안 속에서, 그녀는 이제 내일이라는 새로운 섬광을 사회적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날이 값진 빛으로 반사된다 해도 말이다.
돌아올 허약한 아침은 어느새 이 모든 것을 감싸준 따뜻한 망토였고, 시아는 그것을 충분히 감싸 안았다. 그녀는 카이로스와 함께 걸어갈 긴 여정 속에 자신을 걸려 내리며, 결코 놓치지 않을 노을빛을 보낼 moment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