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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22화: 갈라진 틈 사이로 스며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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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뒤돌아선 채 창가로 두 걸음을 내딛은 카이로스의 등이, 시아에게는 어떤 대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넓은 어깨의 선이,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긴장의 흔적이. 황제의 몸이 마치 자신조차 견디기 어려운 무게를 등짝으로 혼자 받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발 앞으로 나서야 할지, 한 발 물러서야 할지. 그 선택이 지금 이 순간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 오히려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열린 창문의 틈새로 바람이 스며든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방 안에서 잠깐 뒤엉켰다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카이로스의 목소리가 창유리를 향한 채로 흘러나왔다.

"나가거라."

두 글자였다. 명령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끝이 이상하게 떨렸다. 날카롭지 않고,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아프게 들리는 목소리.

시아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 들었지만 따르지 않기로 했다. 황제의 명을 거역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등을 보고 그냥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처음부터 이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첩이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카이로스의 등이 굳었다.

"폐하께서는 마지막으로 편히 주무신 것이 언제입니까."

정적.

창밖 도성의 불빛이 저 멀리서 점점이 깜박였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카이로스가 돌아서지 않은 것이 — 어쩌면 그것 자체가 대답이었다.

시아는 천천히, 소리 없이 발을 옮겼다. 창가를 향해 두 걸음. 세 걸음. 황제의 옆에 나란히 서기 직전에 멈췄다. 그와 한 뼘쯤 거리를 두고. 그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고, 그냥 창밖을 함께 바라보는 자리에.

"신첩도 어릴 때는 잠을 못 잤습니다."

목소리를 낮게, 그러나 또렷하게.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했을 무렵에요. 약 값이 없어서, 내일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눈을 감으면 걱정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서 — 억지로 눈을 떠 있었습니다. 그게 더 피곤한 줄 알면서도."

카이로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가 아주 조금 시아 쪽으로 기울었다. 의식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것 같은 미세한 기울임이었다.

"결국 잠이 드는 건 걱정이 사라져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 너무 지쳐서, 몸이 먼저 항복하는 거더라고요."

시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알았다.

카이로스의 숨이, 아주 천천히 고르게 내려앉았다.

---

다음 날 아침, 시아가 처음 마주친 것은 소윤의 창백한 얼굴이었다.

후궁 쪽 복도에서 뛰어오다시피 한 소윤은, 시아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술부터 움직였다. 그러나 복도 저쪽에 내관 두 명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억지로 말을 삼켰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밤새 잔 것 같지 않은 얼굴.

"어디 갔다 왔어."

내관들이 지나치기를 기다렸다가, 소윤이 낮고 빠르게 속삭였다.

"어젯밤에 방에 없었잖아.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나는 그냥 머릿속이 하얘져서—"

"괜찮아."

시아가 소윤의 손을 잡았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밤새 식은 것처럼.

"걱정시켜서 미안. 정말 괜찮아."

소윤의 눈이 좁아졌다. 그 눈 속에서 뭔가를 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소윤은 영리했다. 시아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디 갔었어."

단언이었다. 물음표가 없는 질문.

"——폐하의 집무실 쪽이었어."

소윤의 손이 시아의 손을 꽉 쥐었다. 악력이 세서 살짝 아팠다.

"지은아."

"소윤아."

"야."

"야."

잠깐의 침묵. 소윤이 먼저 한숨을 내뱉었다. 길고, 지친 한숨이었다.

"나한테 숨기려고 하지 마. 나는 네 편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알지?"

시아는 소윤의 얼굴을 보았다. 부은 눈, 떨리는 입술. 오랜 친구였다. 이 황궁 안에서, 소윤은 시아에게 유일하게 남은 '바깥'이었다. 황궁의 언어가 아닌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알아."

시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나중에 다 얘기할게. 지금은 — 나 자신도 정리가 안 돼서."

소윤이 시아를 한참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정리해. 나 진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심장이 내려앉아."

그러면서도 시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복도를 나란히 걸으면서도.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소윤다웠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 잔소리보다 손을 더 꽉 쥐는 사람.

---

오후 늦게, 시아는 뜻하지 않게 황태자 이준과 마주쳤다.

후원으로 이어지는 회랑에서였다. 시아는 약초 공부를 핑계로 잠시 산책을 나왔다가 — 정확하게는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서 — 회랑 끝에 서 있는 그림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이준이었다. 황태자의 복장을 갖췄지만 관을 쓰지 않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조금 흩어져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는, 그래서 오히려 낯선 얼굴이었다.

이준이 시아를 보았다. 피하지 않았다.

"황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호칭이 단호하고 분명했다. 어제까지 그 호칭에는 어떤 미묘한 거리감이 실려 있었는데 — 오늘은 달랐다.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시아 쪽에서 달리 듣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황태자 전하."

시아가 예를 갖추었다. 이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됐소.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거절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시아는 이준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회랑 끝에는 후원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이 있었다.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아직 앙상했다.

"어제 폐하를 만났소?"

직접적인 물음이었다. 이준의 눈이 시아를 살피고 있었다. 그 눈빛이 — 적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재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예."

시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준이 난간에 두 손을 얹으며 시선을 후원 쪽으로 옮겼다.

"폐하가 어떠셨소."

질문인지 독백인지 모를 어조였다.

시아는 대답을 고르느라 한 박자 늦었다.

"많이 지쳐 계신 것 같았습니다."

이준의 손 등에 힘이 들어갔다. 난간을 쥐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놓여 있던 손이 꽉 쥐어지는 것처럼.

"그렇겠지."

그가 낮게 말했다.

"형은 늘 그랬소. 혼자 다 견디면서, 아무에게도 티를 내지 않는. 어릴 때부터."

시아는 이준을 바라보았다. 황태자의 옆모습이 조금 전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이십대 초반의 얼굴. 권력의 다음 자리에 서 있는 인간이 아니라, 형을 걱정하는 남동생의 얼굴.

"전하께서는 걱정하고 계신 겁니까."

이준이 시아를 돌아보았다. 시아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황후가 황실의 여인치고는 눈을 잘 맞추는구려."

"겁이 많아서 눈을 부릅뜨는 편입니다."

이준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적대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무장이 풀린 것 같은.

"한 가지만 묻겠소. 황후가 형 곁에 있는 것이 — 황후 자신의 뜻이오?"

시아의 발바닥에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여러 겹의 의도가 있었다. 황후가 스스로 원해서 황제 곁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뜻에 의해 심어진 것인지. 이준은 그것을 알고 싶어했다.

"예."

시아가 또렷하게 대답했다.

"신첩의 뜻입니다."

이준이 잠시 시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긴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처럼.

"그렇다면."

그가 난간에서 손을 거두며 몸을 세웠다.

"조심하시오."

그 말이 끝이었다. 이준은 더 덧붙이지 않고 회랑을 걸어 나갔다. 발소리가 고르고 조용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조심하라는 말.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시아는 이준의 뒷모습이 회랑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갔다. 봄이 오기 직전의 바람은 아직 이가 있었다. 시아의 목선을 스치며, 차갑게.

---

저녁 무렵이었다.

시아가 처소로 돌아와 소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혼자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쳐들었을 때였다. 문 앞에서 인기척이 났다. 내관의 발소리와 달랐다. 묵직하고, 규칙적인. 시아가 책에서 눈을 들기 전에, 문이 열렸다.

카이로스였다.

황제복을 갖추고 있었다. 야회복이 아닌, 낮에 집무를 볼 때 입는 정식 복장. 그러나 표정은 조금 달랐다. 뻣뻣하거나 차갑지 않고 — 무언가를 결정하고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굳어 있되, 꽉 막혀 있지는 않은.

소윤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시아도 반응했다.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카이로스가 짧게 말했다.

"됐다."

앉아 있어도 된다는 말이었다. 시아는 반쯤 일어서다가 멈추었다. 어색한 자세로 잠깐 버티다가, 결국 자리에 앉았다.

카이로스가 처소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 공간을 이렇게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이 처음인 것처럼. 평민 출신의 황후가 거주하는 처소는 황실의 다른 공간들에 비해 작고 단출했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정함으로 가득했다. 창가에 약초 관련 서책이 두어 권 쌓여 있었고, 탁자 위에는 소윤이 틈틈이 수를 놓다 만 천이 펼쳐져 있었다.

황제의 시선이 그 책들에 잠깐 머물렀다.

"어젯밤."

카이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아는 숨을 고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네가 한 말."

"예."

"다음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로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눈 안에서 무언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신뢰와 경계, 그 둘 사이의 어딘가.

"내가 허락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황후가 나의 처소에 들어오는 것. 황후가 내 개인적인 일에 관여하는 것. 황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시아가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그 모든 것을 — 내가 멈추지 않았다."

카이로스의 말이 거기서 끊겼다. 그것이 고백인지, 경고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인지. 시아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황제가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처소까지 걸어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시아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처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아니었다. 빠르고, 급하고, 뭔가를 알리러 오는 사람의 발소리. 카이로스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그 눈에 있던 것이 모두 지워지고, 황제의 눈이 돌아왔다.

내관이 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폐하. 급히 아뢸 것이 있습니다."

카이로스가 돌아섰다.

"말하라."

"북부 변경에서 파발이 왔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리고——"

내관의 목소리가 잠깐 흔들렸다.

"변경에서 올라온 파발마가 — 폐하의 인장이 찍힌 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문서가, 신들이 오늘 오전 폐하께 직접 결재를 올린 그 문서와 — 내용이 다릅니다."

방 안이 단단히 얼어붙었다.

카이로스의 어깨가 돌처럼 굳었다. 시아는 그 순간, 황제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이 공간에 있던 무언가가 — 완전히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다. 황제의 눈빛은 더 이상 어젯밤 창가에 서 있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황제의 인장을 위조했다.

시아는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이 황궁 안에 있다는 것도.

카이로스가 처소를 나서기 직전, 그가 문 앞에서 멈추었다. 시아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가 뒤로 흘렀다.

"처소 밖으로 나가지 마라."

명령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실려 있었다. 보호인지,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인지 — 시아는 그 등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말의 무게를 들고 서 있었다.

소윤이 시아의 팔을 잡았다.

"지은아."

소윤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저 말, 그냥 명령이 아닌 것 같아."

시아도 알고 있었다. 황제가 사라진 문 앞을 바라보며, 손을 꽉 쥐었다. 인장 위조. 북부 변경. 오늘 오전의 문서.

그리고 — 이준이 오후에 했던 말.

조심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