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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배지가 복도 불빛에 번쩍였다. 금속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민재의 귓가를 스쳤다. 그는 수아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선희가 수아의 팔을 끌어당겼고, 그 힘에 수아의 몸이 한 걸음 비틀거렸다.
“여기 민재 씨 계십니까? 신고 내용 때문에 왔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 좀 하겠습니다.”
경찰관의 목소리는 낮고 딱딱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고,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 미소 뒤로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먼저 말씀해 주시죠.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는데.”
민호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천천히 주워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를 매만지는 모습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준호는 뒤로 물러서며 입꼬리를 올렸다. 태준은 복도 끝에서 걸어 나오며 민재의 어깨를 툭 쳤다.
“형, 지금 여기서 버티면 더 꼬여. 경찰 앞에서 말 조심해.”
수아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선희가 막아섰다.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타일 바닥을 울리며 가까워졌다.
“수아, 너는 뒤로 물러나 있어. 이건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민재는 경찰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민재입니다. 무슨 신고가 들어왔다는 겁니까?”
경찰관이 수첩을 펼쳤다. 펜이 종이를 스치며 소리가 났다.
“익명 신고입니다. 이 집안에서 문서 위조와 관련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민호 씨가 제출한 서류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민호가 웃으며 서류를 흔들었다. 그 종이 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시죠, 경찰관님. 이 안에 모든 게 들어 있습니다. 민재 씨의 입양 기록, 수아 씨 어머니가 관여한 계약서까지.”
아버지가 손을 들어 민호를 막았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민호, 네가 너무 나섰군. 이 서류는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야.”
선희가 수아를 뒤로 밀며 속삭였다.
“수아, 이제라도 도망쳐. 언니가 막을 테니까.”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민재를 바라보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민재는 그녀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반복했다.
준호가 한 걸음 다가오며 민재의 귀에 대고 말했다.
“형, 이 신고 진짜 민호가 한 게 아닐 수도 있어. 태준 형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태준이 준호를 노려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준호, 너 지금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하면 어떻게 될지 알아? 형한테 충성할 줄 알았더니.”
복도 끝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이었다. 그녀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아버지, 경찰이 두 명 더 왔어요.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미소를 지우고 차갑게 명령했다.
“모두 여기 그대로. 아무도 움직이지 마. 민재, 너는 경찰관과 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민재는 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그의 셔츠 자락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 촉감이 뜨거웠다. 그는 속삭였다.
“수아, 기다려. 내가 금방 돌아올게.”
수아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민재, 이 서류… 진짜인가요? 네가 입양됐다는 게?”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민재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관이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함께 내려갑시다. 질문 몇 가지만 하겠습니다.”
민재가 수아의 손을 놓고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뒤에서 수아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선희가 수아를 끌어안고 있었다. 민호는 여전히 서류를 들고 미소 지었다.
아래층 거실은 이미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창문으로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리듬이 방 안을 채웠다. 민재는 소파에 앉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찰관 한 명이 서류를 펼쳤다.
“이 서류에 따르면, 당신은 1996년에 입양됐다고 나옵니다. 생모 관련 기록이 지워져 있군요. 이걸 누가 만들었습니까?”
민재의 손이 소파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는 몰랐습니다. 오늘 처음 본 서류입니다.”
다른 경찰관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 집안에서 문서 위조 혐의가 제기됐습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오해입니다. 이건 오래된 가족 기록일 뿐입니다. 민호 씨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신고한 것 같군요.”
민호가 거실로 내려왔다. 그의 발소리가 카펫을 밟으며 부드러웠다.
“감정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수아 씨의 어머니가 이 기록을 숨기려 했고, 그걸 이용해 민재 씨를 통제하려 한 거죠.”
민재는 주먹을 쥐었다. 관자놀이가 뜨거워졌다. 그는 민호에게 다가갔다.
“왜 이러는 겁니까? 수아를 끌어들여서 뭐가 얻고 싶은 거죠?”
민호가 웃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수아의 어머니가 네 생모와 연결돼 있다는 걸.”
그 말이 떨어지자 거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빗소리가 더 커졌다. 아버지가 민호를 노려보았다.
“민호, 이제 그만해. 더 이상 말하면 네가 다칠 거야.”
민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가슴이 부풀었다. 손이 떨렸다.
“아버지, 저한테 숨기고 있던 게 또 있습니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사 끝났으면 이제 나가 주시죠.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변호사를 통해 연락하겠습니다.”
경찰관들이 서류를 정리하며 물러섰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한 명이 문 앞에서 지켜보았다.
민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복도가 어두웠다. 수아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흑발이 빗물에 젖은 듯 반짝였다. 그는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수아, 괜찮아?”
수아가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이 붉었다. 손이 민재의 가슴에 닿았다. 그 열기가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민재, 네가 입양됐다는 게… 진짜야? 그리고 내 어머니가 그걸 알았다는 게?”
민재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이 그의 품 안에서 작게 떨렸다.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는 속삭였다.
“모르겠어. 하지만 너와 나 사이에 더 이상 비밀이 없었으면 해.”
그때 복도에서 선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아, 그만해. 이제 그 남자랑 떨어져.”
선희가 나타났다. 그녀의 실루엣이 불빛에 길게 드리워졌다. 수아는 민재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민재가 그녀를 붙잡았다.
“선희 씨, 이제 그만하세요. 수아는 제 선택입니다.”
선희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차가웠다.
“네 선택? 민재, 너는 아직 네가 누구인지 모르는구나. 그 서류에는 네 생모가 수아의 어머니와 같은 회사에서 일했다는 내용도 있어.”
수아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민재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다물어졌다.
“그게… 무슨 뜻이야?”
민재는 선희를 노려보았다. 그의 손이 수아의 허리를 감쌌다. 따뜻한 감촉이 전해졌다.
“더 말해 보시죠. 숨기고 있던 게 또 뭐가 있습니까?”
선희는 대답 대신 준호를 불렀다.
“준호, 너도 여기 있었지? 이제 다 말해.”
준호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사실 저도 오늘 아침에 태준 형한테서 또 다른 서류를 받았습니다. 민재 형의 생모가 사실은… 수아 씨의 어머니와 혈연 관계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말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수아의 무릎이 다시 꺾였다. 민재는 그녀를 부축했다. 그의 심장이 크게 울렸다. 빗소리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세차졌다.
태준이 계단에서 나타났다. 그는 서류 한 장을 흔들며 말했다.
“형, 이제 선택해야 해. 이걸 공개하면 우리 모두 끝장나. 하지만 숨기면… 수아가 더 다칠 거야.”
민재는 수아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졌다. 그는 태준을 바라보았다.
“그 서류, 나한테 줘.”
태준이 서류를 내밀지 않았다. 대신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아직 아니야, 형. 다음에 보여줄게. 지금은 경찰이 아래층에 있으니까.”
민호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민재, 이제 끝났어. 아버지가 너를 버릴 준비를 하고 있어.”
민재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수아의 눈물이 그의 손등을 적셨다. 선희는 팔짱을 낀 채 차갑게 바라보았다. 준호는 여전히 미소 지었다. 태준은 서류를 품에 숨겼다.
그때 아래층에서 사이렌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추가 인원을 부른 것 같았다. 민재는 수아를 끌어당겼다.
“수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수아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민재, 나… 너를 믿을게. 하지만 이 비밀,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 같아.”
민호가 웃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늦었어. 이제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복도 끝에서 새로운 그림자가 움직였다. 낯선 여자였다. 그녀는 수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수아, 너 오랜만이네. 네 어머니가 보고 싶어하시더라.”
그 여자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수아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민재는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나 새로운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 누구도 다음 순간을 예측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