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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림자 속의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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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가 서류를 흔드는 순간, 복도 공기가 찬 칼날처럼 스며들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종이 모서리를 살짝 찢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수아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고, 그녀의 손바닥이 차가운 타일 위를 더듬었다. 민재는 그녀를 일으키려 팔을 뻗었으나, 선희가 먼저 수아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수아, 정신 차려. 이 남자 말 믿지 마.”

선희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매끄러운 장미 향이 코를 찔렀다. 민재는 민호를 노려보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리자, 민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민재야, 읽어보지 않을래? 네 아버지가 왜 수아를 데려왔는지, 네가 누구 아들인지 전부 여기 적혀 있어.”

민호는 서류를 흔들며 다가왔다. 종이 끝이 민재의 가슴을 스쳤다. 그 촉감이 거칠고 차가웠다. 민재는 서류를 낚아채려 했으나, 준호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민재, 지금은 아니야. 여기서 읽으면 다 끝장나.”

준호의 말투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눈빛이 흔들렸다. 수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흑발이 얼굴을 가렸고,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리듬과 함께 그녀의 숨소리가 섞였다.

“민호 씨… 그 서류, 어디서 났어요?”

수아의 질문이 공기를 갈랐다. 그녀의 손이 선희의 팔을 밀어냈다. 민재는 수아의 옆으로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

“수아, 저 남자 믿지 마. 우리 둘 다 속고 있을 수 있어.”

그때 복도 저편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모였군. 이제부터 진실을 들을 시간이다.”

아버지는 정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의 눈이 민호의 서류를 향했다. 방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앉는 듯했다. 민재는 수아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졌다.

“아버지, 이게 무슨 일입니까?”

민재의 목소리가 거칠게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민호, 네가 먼저 움직였군. 좋아, 이제 모두에게 알려주지.”

아버지가 손을 들어 서류를 가리켰다. 그 순간 민재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수아가 그의 팔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선희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수아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선희의 말에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준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준호, 너도 알고 있었지? 이 집안 비밀을.”

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주머니 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또 다른 종이였다.

“사실 저도 어제 밤에 받았습니다. 민호 씨가 준 게 아니라… 태준 형이 준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의 시선이 준호에게 집중됐다. 민재는 준호의 멱살을 잡았다. 두 사람의 몸이 복도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태준이 왜? 너 지금 우리를 농락하는 거야?”

민재의 질문에 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농락? 아니, 민재. 너도 알아야 해. 수아 씨가 아버지의 비서가 된 진짜 이유는 네 과거를 숨기기 위해서였어. 네가 입양됐다는 사실, 그리고 수아의 어머니가 그걸 알고 있었다는 걸.”

수아의 몸이 다시 주저앉았다. 그녀의 무릎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선명했다. 민호가 그 틈을 타 서류를 민재에게 내밀었다.

“읽어봐. 네가 누구인지, 수아가 왜 너를 피했는지.”

민재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종이의 잉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첫 줄이 눈에 들어왔다. ‘민재는 1996년 입양된 아이로, 생모는…’

그 순간 복도 끝에서 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이제 그만 읽어. 더 이상 파고들면 우리 모두 끝장나.”

태준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 또 다른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는 수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수아, 너도 이제 선택해야 해. 민재를 지킬 건지, 아니면 네 과거를 숨길 건지.”

수아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눈이 민재를 향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물어졌다. 민재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한 걸음 다가오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이제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민호, 서류를 공개해.”

민호가 웃으며 서류를 펼쳤다. 그 안에는 민재의 입양 기록과 수아의 어머니가 연루된 계약서가 있었다. 수아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꽃향기가 민재의 코를 스쳤다.

“민재… 미안해. 내가 다 말할게.”

수아의 속삭임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새로운 그림자가 움직였다. 지은이었다. 그녀는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 경찰이 도착했어요. 누군가 신고했다는데… 민호 씨가 한 짓인가요?”

지은의 말이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민호의 얼굴이 굳었다. 준호는 다시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민재는 수아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그의 가슴에 전해졌다.

“수아, 이제 도망쳐야 해.”

민재의 말에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물이 민재의 셔츠를 적셨다. 빗소리가 점점 더 세차게 창문을 두드렸다. 아버지는 전화기를 받아들며 차갑게 명령했다.

“모두 여기 그대로 있어. 아무도 움직이지 마.”

그 순간 민호가 서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종이가 흩어지며 민재의 발밑으로 날아왔다. 수아가 그것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선희가 먼저 가로막았다.

“수아, 이건 네가 감당할 일이 아니야.”

선희의 말투가 날카로웠다. 준호는 조용히 민재의 귀에 속삭였다.

“형,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야. 네가 입양된 이유가 수아의 가족과 연결돼 있다는 걸 알아?”

준호의 속삭임이 민재의 머리를 울렸다. 민재는 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복도 끝에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민호가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늦었어, 민재. 이제 네 선택이 모든 걸 결정할 거야.”

민재는 수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러나 새로운 그림자가 문턱에 나타났다. 낯선 남자였다. 그는 경찰 배지를 들고 서 있었다.

“여기 민재 씨 계십니까? 신고 내용 때문에 왔습니다.”

그 남자의 등장에 방 안의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수아의 손이 민재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민재는 그녀를 다시 붙잡으려 했으나, 아버지가 먼저 나섰다.

“경찰 분,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설명해 주시죠.”

아버지의 말에 민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준호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며 민재에게 눈짓을 보냈다. 선희는 수아를 끌어당겼다. 민재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문 너머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이었다.

“형, 이제 진짜 끝장날지도 몰라.”

태준의 마지막 말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민재는 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새로운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 누구도 다음 순간을 예측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