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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밤의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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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유리문 너머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네온 불빛을 등지고 섰다. 하은의 손이 차 문을 잡은 채 굳었다. 발소리가 아스팔트를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익숙한 향수 냄새가 차가운 밤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하은, 기다려. 내가… 진짜 파일을 가지고 왔다.”

문이 열리며 중년 여성 하나가 들어섰다. 진우의 전 회사 동료, 이지은이었다. 그녀의 가죽 가방에서 종이 냄새가 새어 나왔고, 하이힐이 바닥을 찍는 소리가 로비를 울렸다. 박 과장이 차 문을 잡아당기며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라고 재촉했지만, 하은은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했다.

진우가 차 안에서 내려와 하은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손바닥이 뜨거웠다. “누구야? 또 새로운 사람?” 그의 목소리는 낮고 날카로웠다. 하은은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은 채 이지은을 바라보았다. “파일이라니… 어떤 파일?”

이지은이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철을 꺼냈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이건 성호가 조작한 게 아니야. 진우 씨, 네가 2년 전 하은 씨를 처음 본 날부터 기록한 거지. 하은 씨가 그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진우 씨 사진을 몰래 출력한 흔적까지.”

민준이 웃으며 로비 벤치에 기대어 섰다. “또 증거? 이제 지겹군.” 수진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손을 떨었다. 성호는 담배를 비벼 끄고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어지네. 이지은 씨, 그 서류를 왜 지금 내놓는 거지?”

하은은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종이 감촉이 손가락 끝을 스쳤다. 그녀는 한 장을 넘기며 진우의 이름을 찾았다. 페이지마다 진우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녀 자신의 필기체 메모가 적혀 있었다. ‘이 남자, 위험해 보이지만… 끌린다.’

진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하은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그게 사실이야? 네가 날 지켜보고 있었다고?”라고 물었다. 그의 체온이 하은의 코트 안으로 스며들었다. 하은은 서류를 내려놓지 않은 채 고개를 들었다. “모르는 일이야. 누군가 내 이름을 도용한 거겠지.”

박 과장이 차 경적을 울렸다. “이제 그만. 사장님 기다리십니다.” 그들은 차에 올랐다. 하은은 진우 옆에 앉았고, 민준과 수진, 성호가 뒤따랐다. 차 안 공기가 답답했다. 엔진 소리가 창문을 울리며 거리를 가로질렀다.

진우가 하은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따뜻한 손길이 얇은 스타킹을 통해 전해졌다. “하은, 솔직히 말해. 그 파일에 네가 날 본 날짜가 진짜라면…”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하은은 그의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아. 회사에 도착하면…”

민준이 앞좌석에서 돌아보며 “그 손 치워. 하은, 너 지금 정신 나갔어?”라고 쏘아붙였다. 수진은 뒷좌석에서 숨을 삼켰다. “민준 씨,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에요.” 성호는 창문을 내리며 담배를 물었다. 연기 냄새가 차 안으로 퍼졌다.

차가 회사 건물 앞에 멈췄다. 24층 사장실 불빛이 밤하늘을 밝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하은은 진우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수진이 “하은아, 그 서류… 진짜 네가 쓴 거야?”라고 속삭였다. 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김 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정장 소매에서 커피 향이 났다. “들어와. 사장님이 직접 심문하신다.” 그들은 긴 복도를 걸었다. 카펫이 발소리를 삼켰다. 사장실 문 앞에서 진우가 멈췄다. “하은, 여기서 끝낼 수 없어.”

문이 열리며 사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 이현수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 화면이 하은의 얼굴을 비췄다. “하은 씨, 이 파일 설명해 보시지. 2년 전부터 진우 씨를 지켜본 이유가 뭔가?”

하은은 테이블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종이 모서리가 손가락을 베듯 날카로웠다.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조작한 거예요.” 진우가 그녀 옆에 섰다. “제가 대신 말하겠습니다. 그 계약은 제 전 회사가 사기를 치려던 거였고, 하은 선배는 검토만 했을 뿐입니다.”

사장이 웃으며 태블릿을 돌렸다. 화면에 새로운 영상이 떠올랐다. 하은이 2년 전 카페에서 진우를 몰래 촬영한 장면이었다. 그녀의 손이 잔을 쥐고 떨리는 모습이 선명했다. “이건… 내가 찍은 게 아니에요.” 하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민준이 앞으로 나서며 “사장님, 이건 하은이 진우를 유혹한 증거입니다. 해고 처리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수진은 뒤에서 손을 꼭 쥐었다. 성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아직 끝이 아니죠. 이지은 씨가 가져온 서류가 진짜라면…”이라고 덧붙였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서울 야경이 펼쳐졌다. “내일 아침까지 두 사람의 해명을 듣겠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복도에서 새로운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벌컥 열리며 강 변호사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 또 다른 USB가 들려 있었다.

“사장님, 방금 새로운 증거가 도착했습니다. 하은 씨가 진우 씨와 2년 전부터 사적으로 만난 기록입니다. 그리고…” 강 변호사가 USB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 안에 하은 씨의 남자친구, 민준 씨가 관여한 흔적도 들어 있습니다.”

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강 변호사를 노려보며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외쳤다. 하은은 진우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사장이 USB를 집어 들며 “열어 보지.”라고 명령했다.

화면이 켜지며 새로운 파일이 떠올랐다. 민준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계약 조작에 관여한 흔적과, 하은을 진우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성호와 공모한 기록이었다. 수진이 숨을 들이마셨다. “민준 씨… 설마.”

진우가 민준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이게 다 네 짓이었어?” 그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하은은 그를 막아서며 “진우, 지금은…”이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손이 그의 가슴에 닿자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민준은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증거가 뭐 어때? 회사에서 너희 둘 다 끝장날 거야.”

사장이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모두 내일 아침 9시까지 대기하라. 그때까지 추가 증거가 나오면…” 그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다가왔다. 문틈으로 보이는 실루엣은 낯선 남자였다. 그의 손에 들린 서류철이 불빛에 번들거렸다.

하은의 심장이 멎을 듯 뛰었다. 진우가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또 누구지?”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들어와.”라고 말했다. 문이 열리며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진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우, 오랜만이야. 네가 날 배신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남자의 이름은 진우의 전 상사, 박철민이었다. 그의 등장에 방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은은 진우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철민 형… 왜 여기 있어?” 박철민이 서류를 테이블에 던졌다. 종이가 흩어지며 새로운 계약서가 드러났다. “이게 끝이 아니야. 하은 씨, 네가 2년 전부터 진우를 이용한 이유를 이제 밝혀야 할 거다.”

진우의 손이 하은의 허리를 감쌌다. 따뜻한 체온이 그녀의 몸을 감쌌지만, 그녀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사장이 웃으며 “계속해. 더 재미있군.”이라고 말했다. 민준은 구석에서 이를 갈았다. 수진은 입을 다물었다. 성호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박철민이 한 걸음 다가오며 “진우, 네가 하은 씨를 처음 만난 날, 그 계약은 이미 조작되어 있었어. 그리고 하은 씨, 네가 그걸 알고도 진우를 끌어들인 이유가 뭔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하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메시지는 익명의 번호였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 모든 게 끝난다.’

진우가 하은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누구야? 또 누가…” 하은은 메시지를 지우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방 안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제 시작이다.”라고 낮게 말했다.

문밖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은, 나야. 수진이 아니야. 진짜 네가 알아야 할 사람이 왔어.” 하은의 손이 핸드폰을 쥔 채 굳었다. 진우의 팔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은 점점 조여들었다. 새로운 위기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