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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그림자 속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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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유리문이 찰칵 소리를 내며 열리자, 하은의 손가락이 핸드폰 화면을 짓누르며 미끄러졌다. 낯선 여성의 실루엣이 네온 불빛을 등지고 들어서며, 가죽 부츠가 바닥을 찍는 소리가 사장실 안을 울렸다.

“하은, 나야. 수진이 아니야. 진짜 네가 알아야 할 사람이 왔어.”

그녀는 진우의 전 회사 동료 이지은이 아니었다. 30대 초반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성, 하은의 대학 동기이자 현재 경쟁사 법무팀장인 최유진이었다. 그녀의 향수 냄새가 커피 잔여 향과 섞이며 코를 찔렀고, 서류철을 내려놓는 종이 스치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사장 이현수가 의자 등받이를 기대며 말했다. “또 다른 증인인가. 들어와. 이제 다 모인 것 같군.”

진우의 손이 하은의 허리를 감싸며 당겼다. 그의 손바닥 온기가 코트 안으로 스며들었고,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유진? 왜 네가 여기 있지?” 진우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최유진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이 파일은 성호가 조작한 게 아니야. 하은, 네가 2년 전 그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진우 씨를 개인적으로 만난 기록이야. 그런데 이건… 네가 먼저 접근한 증거지.”

하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진우의 팔을 놓지 않은 채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페이지마다 그녀의 필기체가 적힌 메모가 선명했다. ‘이 남자, 위험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아.’ 진우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이게 뭐야? 네가 날 찾아온 거였어?”

민준이 구석에서 웃으며 말했다. “봐라. 이제 다 드러났잖아. 하은, 이 새끼 때문에 네가 끝장나는 거다.”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손이 코트 주머니를 움켜쥐었다.

수진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최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 언니, 왜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하은을 더 위험하게 만들려고?”

최유진이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 냄새가 사장실을 가득 채웠다. “수진, 너도 알잖아. 하은이 진우를 이용하려던 이유. 그 계약은 단순한 사기가 아니었어. 하은의 아버지가 연루된 거지.”

방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은의 손이 테이블 모서리를 짚었다. 차가운 나무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진우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은, 그 계약서… 네 아버지가 내 전 회사를 이용한 거였어? 내가 속아서 문서 조작한 게…”

박철민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끼어들었다. “그래. 하은 씨 아버지가 진우 씨를 이용해 계약을 조작하려 했고, 네가 그걸 막으려다 오히려 끌려들었지. 그런데 하은 씨, 네가 진우를 지켜본 이유는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어.”

하은은 진우의 손을 놓았다. 그녀의 발이 뒤로 물러섰다. “그럴 리 없어. 아버지는…”

사장이 태블릿을 돌리며 화면을 보여주었다. 영상 속 하은의 아버지가 진우의 전 회사 사장과 만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게 끝이 아니야. 내일 아침, 이 영상까지 공개될 거다.”

진우가 주먹을 쥐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하은, 왜 말하지 않았어? 네가 날 이용한 거였어?”

하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가슴이 조여들며 숨이 가빠졌다. 수진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하은아, 이제 말해. 진짜 이유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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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 하은은 진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차가운 금속 벽에 등이 닿자 서늘한 감촉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민준이 앞에서 말했다. “이제 끝났어. 하은, 너 아버지 때문에 다 망가진 거야.”

진우가 민준의 멱살을 잡았다. “닥쳐. 하은은 몰랐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차 안으로 들어서자, 박 과장이 운전석에서 말했다. “사장님 지시로, 두 사람은 지금 당장 집으로 가지 마.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하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네온 불빛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비췄다. 진우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손가락 사이로 전해졌다. “하은, 그 파일… 네가 날 본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어?”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진우, 믿어줘. 나는…”

차가 한적한 골목에 멈췄다. 그들은 작은 호텔로 들어섰다. 로비의 카펫이 발소리를 삼켰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진우가 문을 잠갔다. “여기서 이야기해. 더 이상 숨길 거 없어.”

하은은 소파에 앉아 USB를 꺼냈다. 노트북 화면이 켜지며 새로운 파일이 떠올랐다. 그녀의 아버지가 계약 조작을 지시하는 녹음 파일이었다. “이게… 진짜였어. 아버지가 날 이용하려고 했던 거.”

진우가 그녀 옆에 앉았다. 그의 무릎이 그녀의 무릎에 스쳤다. “그래서 네가 날 지켜본 거야? 나를 보호하려고?”

하은은 그의 손을 잡았다. “아니야. 처음엔 그랬을지 몰라. 그런데… 너를 만나면서 달라졌어.”

진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하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지금도 그게 중요해? 우리 관계가…”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은아, 문 열어. 성호가 또 다른 파일을 가지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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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으로 들어선 성호는 USB를 흔들며 미소 지었다. “이게 진짜 끝판왕이야. 하은 선배 아버지가 진우 씨를 이용한 이유가… 하은 씨를 회사에서 몰아내기 위해서였어.”

하은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진우의 팔을 붙잡았다. “그게 무슨…”

성호가 파일을 실행했다. 화면에 하은의 아버지가 민준과 통화하는 내용이 나왔다. “하은을 진우와 엮어서, 사내 스캔들로 해고시키라고. 그러면 내 회사가 안전해.”

민준이 벽에 기대어 섰다. “그게… 내가 한 일이야. 하은, 미안해. 하지만 네 아버지가 시킨 거였어.”

진우가 민준에게 다가갔다. “네가 하은을 배신한 거야?”

하은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만해. 이제…”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익명의 메시지였다. ‘아버지가 지금 호텔로 오고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너희 둘 다 끝이다.’

진우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또 누구야?”

하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방 안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문밖에서 새로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그녀의 아버지 목소리가 울렸다.

“하은, 문 열어라. 이제 모든 걸 끝내자.”

진우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나 그녀의 심장은 점점 얼어붙었다. 새로운 위기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