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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19화: 황제의 밤, 황후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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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카이로스의 말이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문장은 짧았지만, 그 짧음 안에 담긴 무게가 시아의 가슴을 눌렀다. 마지막. 그 단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삼켜버릴 수 있는지, 시아는 오늘 처음으로 뼈저리게 알 것 같았다.

카이로스의 손이 시아의 손목을 놓았다.

아무 예고도 없이.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천천히, 손가락 하나씩 펴지며, 그 온기가 사라졌다. 시아는 손목 위에 그의 체온이 남긴 자국처럼 감각이 느껴지는 것을 알아챘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데, 피부가 그 부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황제는 창가로 향했다. 등을 보이며. 두 손을 등 뒤로 모으지도, 창틀을 짚지도 않고, 그저 서 있었다. 검은 야경이 그의 윤곽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도성의 불빛이 저 아래로 멀리 퍼져 있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그런데 그것과 황제 사이에는 두꺼운 유리 한 장이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원해도 닿을 수 없는 것들.

시아는 그 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카이로스가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경직되는 것이 촛불 빛 속에서 보였다.

"형님은 폐하의 손을 거부하신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형님도 두려우셨던 것 아닐까요. 손을 잡으면, 그게 끝이라는 걸 아셨던 거 아닐까요. 폐하의 손을 잡는 순간, 자신이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걸."

"...그것이 무슨 위로가 됩니까."

카이로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날을 세운 차가움이 아니라, 빈 그릇처럼 텅 빈 차가움이었다.

"위로가 아닙니다."

시아는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무릎이 떨렸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저는 지금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폐하는 살인자가 아니십니다. 폐하는 그저, 혼자 남겨진 사람이십니다."

---

침묵이 길었다.

카이로스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도성의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듯 일렁이고 있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야경꾼이 외치는 소리도. 궁 밖의 세상은 아무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아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대답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하고 싶었다. 그것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한 번쯤은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말해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마지막으로 본 날, 저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었어요. 사소한 일로. 다음에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카이로스의 등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저도요."

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래서 저는 알아요. 마지막은,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 마지막이 어땠든,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요."

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달랐다. 전의 침묵이 무게를 가진 것이었다면, 이것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침묵이었다.

카이로스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시아는 심장이 턱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황제의 표정은 여전히 단단했다. 딱딱하게 굳은 석고처럼. 하지만 그 눈이, 눈만이, 방금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을 담고 있었다. 폭풍이 막 지나간 하늘처럼. 텅 비었지만 아직 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당신은."

카이로스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이상한 것이 섞여 있었다. 의문도 아니고 판단도 아닌, 처음 보는 무언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합니까."

"...폐하께서 들으셔야 할 것 같아서요."

"황후 자리가 탐나서가 아니라?"

시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이 자리도, 폐하도. 지금도 솔직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그런 이유로 하는 게 아닙니다."

카이로스는 그녀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얼굴을 훑고, 눈을 들여다보고, 무언가를 헤아리려는 것처럼 움직였다. 시아는 도망치고 싶었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그 시선 아래에서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가십시오."

카이로스가 마침내 말했다.

시아의 가슴이 뭔가 쑤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문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오지은."

시아가 멈추었다. 그가, 성이 아니라 이름을 불렀다. 황제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처음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이상하게 크게 들렸는지, 시아는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예?"

카이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아가 고개를 돌리자, 그는 이미 다시 창밖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등. 또 등. 그 등이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좁아 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

복도는 서늘했다.

시아는 황제의 침전 문이 닫히자마자, 벽에 등을 기댔다. 무릎에 힘이 풀렸다. 지금까지 버텼던 긴장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처럼, 손끝이 떨렸다.

'오지은.'

그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낮고, 무겁고, 그런데 왜인지 그 안에 뾰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 황제의 목소리는 언제나 명령과 위압을 담고 있었는데, 지금 그 한 마디에는 그것이 없었다. 대신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시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복도 저편에서 인기척이 났다.

시아가 반사적으로 몸을 곧추세웠다. 야경 내관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림자가 멈추지 않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촛불 빛이 닿는 거리까지 그것이 들어왔을 때, 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황태자 이준이었다.

새벽에 가까운 이 시각에, 황제의 침전 복도를. 수행원 하나 없이, 단독으로.

이준은 시아를 발견하고 잠깐 걸음을 늦추었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낮에 마주쳤을 때와 같은, 부드럽고 단정한 미소. 그런데 이상했다. 이 시각에, 이 장소에서 마주쳤는데, 그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여기서 시아가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황후 마마."

이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 깍듯한 예의.

"이 늦은 시각에 폐하의 침전 앞에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시아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황태자 전하야말로, 이 시각에 이곳을 어인 행차이십니까."

이준의 입가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는 대답 대신 시아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 눈빛이 어딘가 탐색적이었다. 무언가를 읽으려는 것처럼.

"폐하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신 것 같군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마마는."

이준이 말했다. 그 표현이 묘했다. 칭찬인지, 경계인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폐하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말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분인데."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천천히 덧붙였다.

"그것이 마마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요."

시아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려 했지만, 이준의 표정은 이미 다시 무난하고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 늦은 시각에 복도에 계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어서 처소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는 멈추지 않고 지나쳤다.

시아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가 황제의 침전 쪽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 시각에, 이 복도에서, 목적지도 없이.

아니면.

처음부터 목적지가 시아 자신이었던 것일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시아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처소로 돌아온 시아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소윤과 마주쳤다. 소윤은 탁자 앞에 기대어 앉아 졸고 있다가, 문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언니!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미안해."

시아는 걸상에 털썩 앉았다. 소윤이 그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금세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 있었어요?"

"..."

"언니."

시아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낮게 말했다.

"소윤아, 황태자 전하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

소윤의 눈썹이 올라갔다.

"황태자 전하요? 갑자기 왜요?"

"방금 황제 폐하의 침전 복도에서 마주쳤어. 이 새벽에. 혼자서."

소윤의 눈이 좁아졌다. 그녀는 몇 가지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는 사람처럼 잠시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들은 게 있기는 한데."

"말해봐."

"궁 안에서 은밀히 도는 이야기예요. 황태자 전하가 황제 폐하의 곁에 두는 내관 중 하나가 사실은 전하의 사람이라는 거."

시아의 등줄기가 다시 한 번 차갑게 조여들었다.

"확실해?"

"확실하다면 이미 숙청이 일어났겠죠. 그냥, 속닥이는 말이에요. 증거는 없는."

소윤이 시아의 손을 꽉 잡았다.

"언니, 조심해야 해요. 황태자 전하가 황후 마마에게 친절한 건, 진짜 친절이 아닐 수 있어요. 언니가 폐하와 가까워질수록, 전하에게 언니는 변수가 되거든요. 이용하거나, 아니면 제거해야 할."

시아는 그 말을 천천히 삼켰다.

이용하거나. 제거해야 할.

새벽의 복도에서 이준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그 미소 뒤에서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던 눈빛. 그리고 그가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

'그것이 마마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요.'

경고였다.

혹은 선언이었다.

시아는 손끝이 얼어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소윤의 손을 되잡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황제의 방에서보다 더 빠르게. 이상한 일이었다. 카이로스는 두렵지 않았는데. 그의 손이 손목을 잡고 있을 때, 그 눈이 자신을 들여다볼 때, 두려움보다 다른 감각이 더 컸는데.

지금 이 두려움은 달랐다. 더 구체적이고, 더 현실적이었다.

"소윤아."

"응?"

"황태자 전하의 사람이라는 그 내관, 누군지 알 수 있어?"

소윤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천천히 열었다.

"알아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언니, 이건 우리가 섣불리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잘못 건드리면—"

"알아. 그래도."

시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어둠이었지만, 동쪽 끝이 어렴풋이 달라지고 있었다. 곧 아침이 오겠지. 그리고 또 하루가 시작되겠지.

그 아침이 오기 전에.

시아의 머릿속에 다시 한 가지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황태자의 눈빛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황제의 목소리가.

'오지은.'

왜. 그 이름을 부르고 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일까.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했지만, 그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혹은.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을까.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황제가 있는 침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창에 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것이 이 거리에서도 보였다. 카이로스는 여전히 잠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시아도,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소윤이 갑자기 시아의 팔을 세게 붙잡았다.

"언니."

목소리가 달랐다. 아까의 걱정 섞인 어조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담은, 낮고 절박한 목소리.

시아가 소윤을 바라보았다. 소윤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 눈이 시아의 어딘가를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시아는 그것이 자신의 손목이라는 걸 깨달았다.

손목.

카이로스가 잡았던 손목.

시아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소매가 걷힌 손목 안쪽에, 카이로스가 손가락을 대고 있었던 그 자리에, 희미하게 빛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눈에 보이다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촛불 빛 아래서만 겨우 드러나는, 아주 옅은 빛의 문양이.

이 제국에서, 마법이 금기시되는 이 세상에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시아의 피부에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