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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말이 아직 방 안에 떠 있었다. 시아가 내뱉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고, 공기 속에 녹아든 채로.
카이로스가 돌아섰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돌아선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그의 눈이 시아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촛불 빛 속에서 그 눈동자는 어둡고, 깊고, 그리고 — 무서울 만큼 선명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황제가 그 말을 되뇌었다. 질문도 아니고 명령도 아닌 어조로. 그냥 그 문장을 입 안에서 굴려보는 것처럼.
시아는 도망치지 않았다. 시선을 내리깔지도 않았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지만, 발은 이상하게도 단단히 바닥을 딛고 있었다.
"예.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형님과의 기억이, 그 손이 — 폐하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카이로스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눈 한쪽에 힘이 들어간 것처럼.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아는 알 수 없었다. 분노인지, 혹은 그보다 더 처리하기 어려운 무언가인지.
"네가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 문장은 짧았다. 그런데 그 짧음 안에 칼날이 있었다. 시아의 피부를 긁고 지나가는 종류의.
"바꾸지는 못합니다."
시아가 인정했다. 거짓으로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다음에 또 다른 것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게 덧씌워지는 게 아니라 — 옆에 나란히 놓이는 것이라면."
침묵이 흘렀다. 카이로스는 여전히 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시아의 뺨이 서서히 열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그러다 황제가 입을 열었다.
"나간다."
그뿐이었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등을 보이며. 어깨선은 평소처럼 반듯하고 차갑게 정돈되어 있었다. 문고리에 손이 닿기 직전, 단 한 박자.
그가 멈췄다.
"시아."
등을 보인 채로 부른 이름이었다. 황후라고도, 그대라고도 하지 않은. 그냥, 이름.
시아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두드렸다.
"오늘 밤의 말은 — 기억하지 마라."
그리고 그는 나갔다.
문이 닫혔다. 소리 없이. 그것이 더 이상했다. 쾅 닫혔다면 차라리 화가 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소리 없이 닫히면, 시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하지 마라.
그 말을 기억하지 말라는 말이, 그 자체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황제는 알고 한 말일까. 모르고 한 말일까.
시아는 한동안 닫힌 문 앞에 서서, 자신의 손목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의 손가락이 감겼던 자리를.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오래전에 식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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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궁 안이 이상했다.
시아는 그것을 식사가 들어오기 전부터 감지했다. 시녀들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빠르고, 눈빛이 어딘가를 피하고 있었다. 그릇을 내려놓는 손이 약간 떨렸다. 누군가가 말을 아끼고 있다는 기색.
"무슨 일이 있느냐?"
시아가 조용히 물었다.
수석 시녀 예린이 잠깐 망설이다가 입술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 오늘 아침 이른 시각에 폐하를 알현하셨습니다."
황태자 이준.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시아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멈췄다.
"무슨 일로?"
"그것은... 소인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대답이 아니라 회피였다. 예린은 능숙하게 시선을 옆으로 비켰다.
시아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찻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낮게 눌려 있었다. 구름이 두껍고, 빛이 탁했다. 마치 비가 오기 직전의 공기처럼 모든 것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느낌.
황태자 이준이 황제를 만났다.
그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시아는 모른다. 하지만 시녀들의 눈빛과 예린의 잠깐의 망설임이 말해주는 것이 있었다. 그게 좋은 내용의 대화는 아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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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소윤이 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만으로도 무언가 급박한 것이 감지되었다. 소윤은 보통 들어오면서부터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문부터 직접 닫고, 시녀들이 방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지은아."
궁 안에서 본명을 부르는 건 소윤뿐이었다. 시아가 아니라 지은. 그 이름이 들릴 때마다 시아는 어딘가 아주 먼 곳에서 자신이 불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들었어? 오늘 아침에 황태자가 움직였다는 거."
"시녀한테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가 아니야." 소윤이 시아 맞은편에 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황태자가 어전에서 네 출신 문제를 다시 꺼냈대. 평민 황후는 제국의 품위를 훼손한다고. 대신들 앞에서."
시아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
"폐하가 뭐라 하셨는데."
"그게..." 소윤이 잠깐 멈췄다. "폐하가 아무 말도 안 하셨대. 자리를 파하셨다고."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시아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두둔도 아니고, 수긍도 아닌. 침묵.
"궁 안 분위기가 지금 많이 이상해. 대신들 중 일부가 황태자 편으로 기울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 소윤이 시아의 손을 덮으며 말했다. "지은아, 조심해야 해. 황태자가 이번엔 단순히 뒷담화 수준으로 끝낼 생각이 아닌 것 같아."
"내 과거를 캐고 있다는 거야?"
소윤이 짧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캐고 있다는 말보다는 —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시아는 손 위에 얹힌 소윤의 손을 가만히 느끼면서 숨을 고르게 다듬으려 했다. 마음 한켠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미 뭔가를 알고 있다.
시아의 과거. 잃어버린 가족.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것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시아가 말했다. 소윤이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황태자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야 해.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어떻게? 황태자 쪽 사람들이 너한테 쉽게 입을 열 것 같아?"
시아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빛 한 줄기가 비스듬히 새어나왔다가 사라졌다.
"소윤아, 네가 도와줄 수 있어?"
"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거잖아." 소윤이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지은아 — 한 가지 물어봐도 돼?"
"응."
"폐하는 지금 네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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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이 오후 내내 시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폐하는 지금 네 편이야.
기억하지 마라, 라고 했던 그 사람이. 아무 말도 않고 자리를 파했다는 그 사람이. 어제 밤 가장 깊은 곳에 있던 말을 꺼내어 시아의 손목 위에 얹어두었다가, 아무 설명 없이 가져간 그 사람이.
시아는 서쪽 회랑으로 향했다. 대신들의 집무 공간과 황제의 집무처 사이에 있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통로. 그녀가 한 달 전 처음 우연히 발견한 길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정원이 보이고, 바람이 조금씩 유리를 흔드는 소리가 나는 곳.
그곳에서 시아는 혼자 걷다가.
멈췄다.
회랑 끝, 그늘진 기둥 옆에 인물 하나가 서 있었다.
황태자 이준이었다.
시아는 그를 몇 번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현우와 비슷하게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눈빛이 달랐다. 카이로스의 눈이 차갑고 공허하다면 — 이준의 눈은 차갑고 살아있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눈.
그가 시아를 보고 미소 지었다.
"황후 마마."
그 호칭이 이상하게 비틀려 들렸다. 공경인지 비아냥인지, 두 가지가 섞인 것 같은 발음.
시아는 예를 갖추었다. 그러면서 심장박동을 억지로 안정시켰다.
"황태자 전하."
이준이 천천히 걸어 다가왔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여유. 그 여유가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종류의.
"이런 곳에 혼자 계십니까? 황후의 처소에서 꽤 먼 곳인데."
"산책을 좋아합니다."
"그렇군요." 이준이 시아의 옆에 서서, 유리창 너머 정원을 바라보았다. "저도 산책을 즐기는 편입니다. 생각을 정리할 때 특히."
시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기다렸다. 섣불리 먼저 물어서는 안 되었다.
"황후 마마는 궁에 잘 적응하고 계십니까?"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민 출신으로 이곳에 오신 것이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 이준의 시선이 정원에서 벗어나 시아에게로 옮겨왔다. "더욱이 과거가 — 복잡한 분이시니."
그 한마디에 시아의 손이 소맷자락 안에서 살짝 오그라들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그녀는 호흡을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과거가 복잡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허허." 이준이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눈까지 닿지는 않았다. "그렇습니다. 없지요. 다만 어떤 복잡함은 — 황제의 품위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지요. 황후의 과거는 곧 황실의 과거가 되는 법이니."
시아가 이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하께서는 제 과거에 대해 무언가 알고 계십니까."
이준이 다시 한번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더 의도적으로.
"알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면 — 저는 언제든 마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도울 준비.
그 말이 칼처럼 들어왔다. 도움이 아니라 거래의 냄새. 시아는 그 말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의 윤곽을 느꼈다. 아직은 흐릿하고,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준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좋은 산책 되십시오, 황후 마마."
그리고 돌아섰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시아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유리창 밖으로 바람이 정원의 나뭇잎을 흔들었다. 흐린 하늘이 더 낮아진 것 같았다. 이제 비가 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준은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것이 — 단순히 시아의 출신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훨씬 더 깊은 어딘가까지 닿아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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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 예상치 못한 전갈이 왔다.
황제의 직인이 찍힌 봉투였다. 시아는 예린이 내밀어 손에 들고,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양피지. 가장자리를 매끈하게 눌러 봉한 밀랍. 봉투를 열기 전부터 심장이 제멋대로 속도를 올렸다.
내용은 짧았다.
단 두 줄.
*오늘 밤 서재로 오라. 나 혼자다.*
글씨는 필사관이 쓴 것이 아니었다. 힘이 고르게 담긴, 그러나 평소 공문서와는 다른 느낌의 필체. 시아는 그것이 황제가 직접 쓴 글씨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챘다.
예린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시아는 봉투를 접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 서재. 나 혼자.
기억하지 마라고 했던 사람이. 아무 말도 않고 자리를 파했던 사람이. 지금 이 봉투를 직접 써서 보낸 것이다.
시아는 무언가가 오늘 밤을 경계로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을 느꼈다. 좋은 쪽으로인지, 아닌지 —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준의 그 미소와, 황제의 이 두 줄이, 같은 하루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아주 무겁게 그녀의 발목 위에 쌓여 있었다.
"가야지."
시아가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예린에게 하는 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예린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때였다.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 않은 리듬의. 시아의 처소로 향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이렇게 급박했던 적은 없었다. 예린이 먼저 문 쪽으로 눈길을 던졌고, 시아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렸다.
황제의 근위대장 류성이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장을 열두 번 누빈 사람이, 그 단단한 얼굴이.
"황후 마마."
목소리까지 긁혀 있었다.
"폐하께서 — 지금 서재에 계십니다."
"알고 있다. 전갈을 받았——"
"마마."
류성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황후의 말을 끊을 사람이 아닌데. 그가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서재 안에 폐하 혼자가 아닙니다."
시아의 손에서 봉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가 있다는 것이냐."
류성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런데 말이 나오기 전에 멀리서 — 황제의 집무처가 있는 서쪽 전각 방향에서.
그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것인지, 혹은 더 큰 무언가인지. 그리고 그 직후.
완전한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