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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의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다시 한 번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드레스를 고쳐 입으며 스스로를 다잡으려 애썼다. 오늘 밤 또 중요한 자리가 있다는 오준혁의 말. 그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어젯밤 그의 방에서 있었던 일, 그의 손길과 눈빛, 그리고 나를 흔들리게 만든 그 말들. ‘도망치지 마. 나도, 너도, 이미 이 경계를 넘고 싶어 하는 거 알잖아.’ 그 말은 여전히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강아린, 정신 차려. 이건 계약이야. 더 이상 흔들리지 마.’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 그의 시선, 그의 손길. 모든 것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다. 오늘 입은 드레스는 깊은 네이비 컬러로, 어깨선이 드러나는 디자인이었고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실루엣이 몸매를 강조했다. 오준혁이 준비해 둔 옷이었다. 이 드레스를 입고 그의 옆에 서는 순간, 또다시 그의 시선에 갇히게 될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불안을 애써 외면하며 방을 나섰다.
거실에 서 있는 오준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블랙 수트를 입고 있었고, 셔츠의 첫 단추를 살짝 풀어 놓은 모습이 어쩐지 더 날렵하고 위험해 보였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의 눈빛은 한순간 나를 훑더니 다시 평소의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나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읽었다. 아니, 내가 착각한 걸까?
"준비됐나? 가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의 체취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나와 그 사이의 거리는 겨우 몇 발자국. 하지만 그 짧은 거리마저도 숨이 막힐 만큼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오늘 밤은 그냥 그의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 끝내자. 더 이상 흔들리지 말자.’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차 안에서의 침묵은 더 무거웠다. 오준혁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손에 쥔 작은 클러치를 만지작거리며 긴장을 풀어보려 애썼다. 차는 강남 한복판의 고급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 우리는 곧장 최상층에 위치한 프라이빗 라운지로 안내되었다. 그곳은 연회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낮은 조명 아래, 부드러운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테이블마다 비즈니스맨들과 고위층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었다. 권력과 돈이 얽힌, 더 은밀하고 위험한 자리였다.
"오늘은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거야.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마. 알겠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에 붙어 섰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얹히는 순간,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손길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지며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그의 옆에서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의 소개에 따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그의 손길에 집중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작은 접촉에도 내 몸이 반응하는 걸까? 나는 계속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건 계약이야. 감정은 없어야 해.’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중년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와 오준혁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대표, 이번엔 참 예쁜 분을 데리고 오셨군. 이런 분이 옆에 있으면 일이 더 잘 풀릴 것 같아요."
그 말에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준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군요. 강아린 씨는 내 비서이자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그의 말은 사무적이었지만, ‘중요한 파트너’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묘한 울림을 남겼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남성의 시선이 계속 나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표정을 감추며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오준혁은 그 남성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뒤, 나를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이런 자리는 늘 이런 식이야."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그의 눈빛 속에서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내가 착각한 걸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내 허리를 살짝 더 강하게 끌어당기는 순간,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심장이 조여왔다.
자리가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더 긴장감 속에 빠져들었다. 그의 손길, 그의 시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잠시 자리를 떴다. 거울 앞에 서서 차가운 물로 손을 씻으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강아린, 정신 차려. 이건 계약일 뿐이야. 그의 손길에, 그의 눈빛에 흔들리지 마.’ 하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오자마자 오준혁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괜찮나? 얼굴이 안 좋아 보여."
"아… 그냥 좀 더워서요. 괜찮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에 다시 서며 그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자리는 점점 더 깊어졌고, 술잔이 오가며 분위기는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그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자리가 끝날 무렵,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펜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의 침묵은 더 무거웠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의 존재를 외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그 침묵을 깨뜨렸다.
"오늘 힘들었지? 잘 버텨줘서 고맙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강렬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그냥 옆에 있었을 뿐이에요."
"그게 충분해. 네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어."
그 말에 내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건 계약일 뿐인데, 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이렇게 흔드는 걸까? 나는 손을 꼭 쥐며 대답했다.
"그냥… 계약에 따른 일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계약이지. 하지만 강아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통제되지 않아.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걸, 점점 더 느끼고 있어."
그의 말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날렵한 턱선, 그리고 깊은 눈빛. 나는 왜 이렇게 그에게 끌리는 걸까? 이건 계약일 뿐인데, 왜 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펜트하우스에 도착한 후, 나는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멈추게 했다.
"강아린, 잠깐. 오늘 밤, 한 잔 하면서 얘기하지 않겠나?"
그 말에 내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한 잔 하면서 얘기하자니.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방에서 있었던 대화, 그의 손길, 그리고 나를 흔들리게 만든 그 눈빛. 나는 문 앞에서 망설였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문을 열면, 정말로 계약의 경계를 넘게 되는 걸까? 아니, 이미 나는 그 경계를 넘어버린 걸까?
"늦었어요.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 볼게요."
나는 겨우 그 말을 내뱉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강아린, 도망치지 마. 나도 너도, 이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그 말에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조여왔다. 도망치지 마라니. 피할 수 없다니. 그 말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강렬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을 떨며 말했다.
"이건 계약이에요. 감정은 없어야 한다고요. 당신도 그걸 알잖아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나는 숨을 죽였다. 그의 손이 내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래, 계약이지. 하지만 강아린, 네 눈빛은 이미 다른 말을 하고 있어. 나처럼, 너도 이 경계를 넘고 싶어 하지 않나?"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이건 위험하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길이 내 턱을 스치며 내려갈 때, 나는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결국 그의 손을 뿌리치고 한 걸음 물러섰다. 숨이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이만 들어가 볼게요. 정말 피곤해서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그래, 들어가. 하지만 강아린, 이 대화는 끝난 게 아니야. 언젠가, 너도 나처럼 이 경계를 넘고 싶다는 걸 인정하게 될 거야."
그 말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지만, 심장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 그의 손길, 그의 눈빛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다. ‘강아린, 정신 차려. 이건 계약이야. 6개월만 버티면 돼. 감정 따위, 절대 개입시키지 마.’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방에서 나왔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이 집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의 체취, 그의 목소리, 그의 눈빛. 나는 계속 그를 떠올리며 밤을 보냈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 창문 너머로 해가 떠오를 때, 나는 알았다. 오준혁이라는 남자는, 내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음 날, 또 어떤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의 눈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계약, 정말로 단순한 비즈니스로 끝날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의 유혹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예감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