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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이 내 가슴을 밀어내는 감촉은 기억나지 않는다.
바닥에 나뒹굴고, 차갑고 거친 현무암이 뺨에 쓸리는 감각과 함께 내 세상이 기울어졌다는 사실만이 선명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가 목구멍으로 역류해 밭은기침을 터뜨렸다. 시야를 가리는 먼지 너머로, 그의 등이 보였다. 나를 등지고, 망설임 없이, 텅 빈 옥좌를 향해 나아가는 카엘의 등이.
그 한순간의 풍경이, 내 영혼에 낙인처럼 찍혔다.
“안 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폐 속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간 듯, 쉰 소리만 새어 나왔다. 몸을 일으키려 바닥을 짚은 오른손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격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갔지만, 심장을 후벼 파는 절망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 길의 끝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그는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러 가는 것이다. 저주가 제국을 갉아먹는 모든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고통받는 산 제물이 되기 위해. 그것이 그가 말한 ‘속죄’의 진짜 의미였다.
“카엘!”
나는 비명을 질렀다. 찢어진 손바닥으로 다시 바닥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는 내 외침을 듣지 못한 척했다. 아니, 들었지만 무시했다. 그의 걸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직 옥좌만을 향해 있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결정했다. 배신자의 아들이라는 족쇄를, 자신의 희생으로 끊어내기로.
그때였다. 홀의 반대편에서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마리아가 움직였다.
“하! 그래, 어서 가라, 배신자의 아들아! 네놈이 그 고귀한 희생을 치르기 전에, 내가 먼저 이 더러운 정원의 뿌리를 뽑아주마!”
그녀는 부서진 지팡이를 내던지고,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제단을 향해 달렸다. 푸른 심장, ‘세상의 눈물’을 향해. 그녀는 우리 모두를, 이 탑과 함께 날려버릴 작정이었다.
경주가 시작되었다.
한 명은 모두를 살리기 위해 영원한 고통의 옥좌로.
한 명은 모두를 죽이기 위해 파멸의 근원으로.
그리고 나는, 그 두 개의 파멸을 모두 막기 위해 버려진 이 자리에서, 미친 듯이 다리를 움직였다.
“멈춰, 카엘! 그건 네가 짊어질 빚이 아니야! 멋대로 내게 빚을 지우고 떠나지 마!”
나는 그를 향해 절뚝이며 달려갔다. 하지만 그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화상 입은 손의 고통과 탈진한 몸이 내 발목에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웠다.
쿠르르르르릉!
또다시 거대한 진동이 탑을 뒤흔들었다. 이번엔 옥좌의 바로 위 천장에서 거대한 암반이 떨어져 내렸다. 카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떨어지는 낙석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마치 정해진 운명을 향해 나아가듯 흔들림 없이 전진했다.
그는 신념에 찬 순교자였고, 나는 그의 뒤를 쫓는 무력한 죄인이었다.
***
“어리석구나….”
먼지 자욱한 폐허 속에서, 옥좌에 묶인 에레보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저 아이는 자신이 ‘심장’이 되면, 저주를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나는 카엘의 등을 쫓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뜻이지! 다른 진실이 또 있어?”
“새로운 심장은 저주를 통제하지 못한다. 그저 낡은 동력원을 대체하여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뿐. 저주는 초대 황제가 설계한 대로, 계속해서 제국을 좀먹어갈 것이다. 저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을 영원히 느끼며, 살아있는 감옥이 되어 고통받게 될 뿐이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심장이 얼음물에 잠기는 듯했다. 카엘의 희생은, 제국을 구원하는 숭고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저 시한폭탄의 시간을 조금 더 늘려놓는, 무의미한 자기 파괴일 뿐이었다.
“카엘! 들었어? 네 희생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멈춰!”
내 절규가 그의 등에 가 닿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희생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라고 믿었기에.
그 바보 같은 고집, 그 미련한 책임감. 그것이 내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머릿속에서 수만 개의 생각이 폭발했다. 방법. 다른 방법이 있어야만 했다. 이대로 그가 옥좌에 앉게 둘 수는 없었다. 마리아가 심장을 파괴하게 둘 수도 없었다. 제3의 길. 나는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저주 그 자체를 파괴하려 했다.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삼아, 저주를 안에서부터 파괴하는 ‘독’을 만들려 했지. 그리고 그 독의 씨앗을… 너의 영혼에 심었다.’
에레보스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독. 파괴. 나는 구원자가 아니라 파괴자였다. 내 존재의의는 이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이 저주를 통제하고 제국을 지키려 했다. 회귀 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 어머니가 내게 바랐던 것은, 수호가 아니라 완벽한 파괴였다.
그렇다면.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폐가 터져나갈 듯 아팠다. 하지만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었다.
에레보스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레아의 등에 새겨진 것은 이 탑의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백도어였다.’
‘그리고 그 백도어의 마지막 열쇠가… 바로 네 안에 있다.’
모든 조각이 하나의 그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백도어. 그것을 이어받은 카엘.
독. 그것을 품고 있는 나.
카엘은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통로’다. 그리고 나는 그 통로를 통해 주입될 수 있는 ‘바이러스’다. 따로 있어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함께라면.
“그래… 그랬구나….”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어머니 아델리아와 카엘의 어머니 레아. 그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희생’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동반자살’을 계획했던 것이다. 시스템의 심장이 되어 그 중심부로 들어간 뒤, 몸 안에 품은 독을 터뜨려 시스템 그 자체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그들이 찾아낸, 유일하고도 가장 끔찍한 제3의 길이었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독을 품었지만, 시스템에 접속할 권한이 없었다. 레아는 권한이 있었지만, 독을 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역할을 자신들의 자식에게 넘긴 것이다. 언젠가 우리 두 사람이 만나, 자신들이 끝내지 못한 마지막 혁명을 완성하기를 바라며.
이 얼마나 잔인하고, 이 얼마나 대담한 계획인가.
“하! 하하하하!”
나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그녀의 거대한 계획에 대한 경외감이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나를 실패작이나 버리는 패로 여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자신과 함께 세상을 불태울 마지막 불꽃으로 여겼던 것이다.
***
“이제 끝이다! 모두 사라져 버려!”
마리아의 광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는 거의 제단에 도달해 있었다. 그녀의 손이 ‘세상의 눈물’을 향해 뻗어 나갔다. 카엘 역시 옥좌를 불과 서너 걸음 앞에 두고 있었다. 그의 손이 옥좌의 팔걸이를 향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다시 달렸다. 이번에는 카엘의 등이 아닌, 옥좌와 제단 그 사이의 공간을 향해서.
“카엘! 나를 봐!”
내가 소리쳤다.
그 순간, 기적처럼 그가 고개를 돌렸다. 옥좌에 앉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보기 위해 돌아선 것이다. 먼지와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본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그의 눈빛은 나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미안함, 그리고… 그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다른 모든 감정들.
“혼자 가게 두지 않아!”
나는 외쳤다.
“네가 심장이 되면,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네가 통로가 되면, 내가 네 심장을 통해 저주를 공격할 거야! 네 어머니와 내 어머니가 끝내지 못한 마지막 계획을, 우리가 끝내는 거다!”
내 외침은 무너지는 홀의 굉음 속에 위태롭게 울려 퍼졌다. 그가 내 말을 이해했을까? 이 짧은 순간에, 이 미친 계획을 믿어줄까?
그의 잿빛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내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큰 절망과, 나를 향한 애원이었다. 그는 내가 자신과 함께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 돼, 릴리아!”
그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전하가 아닌, 릴리아라고.
하지만 그의 거절은 너무 늦었다.
내가 계획을 외치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지켜보던 에레보스가 움직였다. 그는 옥좌에 묶인 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자신의 손목을 묶고 있던 마력의 사슬 하나를 끊어냈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사슬이 끊어지자, 그에게서 폭풍과도 같은 마력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파괴의 마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중력이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속죄다!”
에레보스의 외침과 함께, 중력의 파동이 나와 카엘, 그리고 마리아를 동시에 덮쳤다.
마리아의 몸이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단의 ‘세상의 눈물’을 향해 튕겨 나갔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푸른 심장에 부딪혔고, 그 순간 그녀의 몸은 산산조각 나며 푸른 빛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녀 자신이 불완전한 제물이 되어, 심장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버린 것이다.
동시에, 나와 카엘의 몸 역시 거대한 힘에 이끌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그리고 옥좌를 향해 무섭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것은 운명이었다.
에레보스는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카엘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체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하려는 필사적인 의지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허공에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나 역시, 너덜너덜해진 내 오른손을 뻗어 그의 손을 향해 뻗었다.
마침내, 우리의 손끝이 허공에서 마주 닿으려는 바로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