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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26화: 불이 붙기 전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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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렸다.

시아가 나간 것이 아니었다. 카이로스가 돌아서기도 전에, 침실 문이 안에서 밀려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낯선 냄새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쇠붙이와 기름, 그리고 밤 공기 — 하지만 그 아래에 무언가 더 날카로운 것이 섞여 있었다. 연기.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카이로스의 등이 굳었다.

시아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황제가 몸을 틀었다. 한 순간이었다. 방금까지의 고요함이, 창가에 선 남자의 침묵이, 그 모든 것이 한 번의 움직임으로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빛이 달라졌다. 창 너머의 어둠을 보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 황제의 눈이었다. 차갑고 날카롭고, 조금의 틈도 없는.

문 앞에 근위대장 세렌이 서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그 자세가 예의범절로 꿇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아는 직감으로 알았다. 갑주의 어깨 부분에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촛불 빛에 반짝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시아는 잠시 후에야 알아챘다. 핏자국이었다. 마른 것이 아니라 아직 젖어 있는.

"폐하."

세렌의 목소리는 낮고 눌려 있었다. 숨을 고르느라 끊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동쪽 회랑입니다. 황태자 전하의 처소 쪽에서 불이 났습니다."

침묵.

단 한 마디였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방 안의 공기를 전부 바꾸어 놓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아니면 시아의 눈이 흔들린 것인지.

"사상자."

카이로스가 입을 열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현재로는 셋입니다. 시위 병사 둘과……."

세렌이 잠깐 멈추었다.

"황태자 전하의 시종장이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

카이로스가 움직였다.

시아는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가 없었다. 황제가 옷을 걸치고, 검을 집어 들고, 세렌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사이, 시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발이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감각이 발끝까지 뻗어 있었다.

불이 났다.

동쪽 회랑. 황태자 이준의 처소 쪽에서.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돌아갔다. 조각들이 맞추어지는 소리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 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간 낯선 시녀들의 얼굴. 이유 없이 비어 있던 황제의 서재 앞 복도. 그리고 — 세 번의 나가라는 말 사이사이에 들렸던 먼 곳에서 오는 바람 소리 같은 것들.

바람이 아니었다.

"시아."

카이로스가 불렀다.

처음이었다. 이름으로.

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황제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준비를 마친 얼굴이었다. 단단히 닫힌 눈빛이었다. 그런데 그 눈빛 어딘가에, 아주 잠깐, 아까 창가에서 보았던 그것의 잔흔이 남아 있었다. 시아가 이름을 붙이지 못한 그것.

"움직이지 마라."

명령이었다. 이름을 부른 것이 명령을 위해서였다는 것처럼.

"네."

시아가 대답했다.

카이로스가 돌아섰다. 세렌이 일어서며 황제를 따랐다. 문이 닫혔다. 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그 뒤에 남은 정적이 너무 깊어서 시아는 잠시 귀가 먹먹했다.

---

홀로 남은 방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카이로스가 나간 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시아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두 걸음 옆으로 비켜서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아까 황제가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조금 비껴선 위치에서 창 너머를 내다보았다.

동쪽 하늘이 붉었다.

불꽃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지평선 근처도 아니고, 성벽 너머도 아닌, 바로 저 궁의 깊은 쪽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기운이 밤하늘 아래쪽을 물들이고 있었다. 연기가 있었다. 시아는 이제야 그것을 확인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있었던 것을,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손이 차가웠다.

창틀을 잡은 손이, 창가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에 젖어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차가움이, 아까 카이로스의 소매 끝을 붙잡았을 때의 감각과 겹쳐졌다. 그때도 차가웠다. 황제의 옷감은. 그런데 그 아래에 있는 것은 — 차갑지 않았다.

시아는 손을 창틀에서 떼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머리속에서 그 말이 맴돌았다. 황제의 명령이었다. 지금 이 궁 안에서 그 말을 어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성이 그렇게 말했다. 발바닥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심장이 —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황태자 처소 쪽.

이준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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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어두웠다.

시아가 문을 열고 한 발 내디뎠을 때, 복도에는 평소보다 훨씬 적은 수의 내관들이 있었다. 아니, 적은 것이 아니었다. 없었다. 복도가 텅 비어 있었다. 촛대마다 불이 켜져 있었지만, 그 아래에 있어야 할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바닥이 시아의 발소리를 너무 또렷하게 돌려보내 주었다.

뭔가 이상하다.

궁이 이렇게 비는 일은 없었다. 화재가 났다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했다. 내관들이 뛰고, 시녀들이 불안에 떨며 처소로 돌아가고, 근위 병사들이 구역마다 배치되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아가 지금 서 있는 이 복도는, 마치 미리 비워놓은 것 같은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발소리를 줄여서 걸었다.

이유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발이 먼저 알았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다. 지금 이 복도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꺾어진 모퉁이에서 멈추었다.

사람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지만, 궁의 돌벽이 소리를 잘 전달했다. 시아는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참았다.

"지금 황제는 동쪽 회랑에 갔습니다."

모르는 목소리였다. 낮고 서두르는 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없습니다. 전하."

그리고 두 번째 목소리.

시아의 폐가 닫혔다.

"알고 있다."

황태자 이준이었다.

---

소리가 멈추었다.

시아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발이 돌처럼 굳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 목소리가 발에 사슬을 걸어 놓은 것인지. 벽에 닿은 등을 통해 궁의 냉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심장은 너무 빠르게 뛰어서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박동이 시아 자신을 흔들고 있었다.

황태자 이준.

복도 모퉁이 너머에 그가 있었다.

시아는 숨을 고르려고 했다. 조용히, 입을 열지 않고. 코로만. 그런데 다음 말이 들려왔다.

"그분을 데려왔느냐."

이준의 목소리가 다시, 아까보다 한층 더 낮아져서 물었다.

"예. 서쪽 별궁에 대기 중입니다."

"결함은 없어야 한다. 이번엔."

"없습니다, 전하. 이번엔 본인도 알고 왔으니까요."

잠깐의 침묵.

"오지은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젯밤부터 그녀가 황제의 처소를 드나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아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 자신의 이름이었다.

황태자가,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어젯밤부터. 아니면 그보다 더 전부터.

다리가 떨렸다.

무서운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시아 자신도 몰랐다. 그저 무릎 안쪽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벽이 없었다면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발소리가 들렸다.

멀어지는 쪽이었다. 이준과 낯선 목소리가 복도 깊은 곳으로 사라져가는 소리였다. 시아는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세었다.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다섯을 더 세었다. 그런 뒤에야, 벽에서 등을 떼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서쪽 별궁.

본인도 알고 왔다.

그리고 — 결함은 없어야 한다.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낱낱이 분리해서 뜯어보려 해도, 전체적인 의미가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 시아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 황제는 동쪽 회랑에 가 있었다.

그 불이 미끼였다면.

시아는 뛰었다.

복도가 어두웠지만 방향은 알고 있었다. 아니, 방향이 아니었다. 발이 먼저 알았다. 황제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그 등이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는지. 시아는 그것만을 따라갔다. 숨을 참지도 않았다. 발소리를 줄이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뛰었다.

두 번의 계단을 내려가고, 좁은 회랑을 빠져나가고, 경비가 없는 문을 밀고.

그리고.

멈추었다.

문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근위 병사였다. 숨은 붙어 있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갑주에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아까 세렌의 어깨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얼룩이.

황제가 간 방향이었다.

시아는 쓰러진 병사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들었다.

복도 끝이 어두웠다.

아니,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 이쪽을 향해 서 있었다. 시아가 알아볼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촛불이 너무 멀리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윤곽만 보였다. 키가 컸다. 어깨가 넓었다.

그 사람이 시아를 보고 있었다.

시아도 그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그 인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을 때, 촛불이 겨우 그 얼굴의 절반을 비추었다.

시아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사람은 지금 이 궁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시아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촛불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그 얼굴이 시아를 향해 또렷하게 말했다.

"오래 기다렸다, 지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