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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제26화: 도둑맞은 태양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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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기울어졌다.

루아의 손에 들린 낡은 양피지가 천 근의 무게로 그녀의 팔을 짓눌렀다. 잿빛 선술집의 탁한 공기, 술과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시장의 소음. 그 모든 감각이 한순간에 멀어지고, 오직 제 귓속을 미친 듯이 울리는 심장 소리만이 현실의 전부가 되었다.

아르테미스.
제국의 ‘태양의 심장’을 훔쳐 달아난 대역죄인.

"…이건, 뭔가 잘못된 거예요."

목구멍에서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힘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뇌가 이 비현실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저는 루아예요. 제국의 땅은 밟아본 적도 없다고요. 이건… 이건 그냥, 저와 닮은 사람이겠죠."

"닮은 사람이라."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정보상, 까마귀가 킬킬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녹슨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것처럼 기분 나빴다.

"이 바닥에서 ‘닮은 사람’이라는 변명만큼 흔해빠진 것도 없지. 하지만 저 초상화를 그린 놈은 제국 최고의 궁정 화가야. 머리카락 한 올, 점 하나까지 기억해서 되살려내는 괴물 같은 놈이지. 저게 너와 닮은 게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라는 데 내 남은 손목을 걸 수 있어."

까마귀는 어둠 속에서 손을 들어 금화 주머니를 가볍게 튕겼다. 짤랑, 하는 소리가 루아의 혼란을 비웃는 듯했다.

"당신이 원하는 정보는 이게 전부야, 아가씨. ‘시원의 심장’, 다른 이름으로는 ‘태양의 심장’. 한 달 전, 제국 황궁의 비밀 보물고에서 도둑맞았지.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된 건, 기록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의 여자. 바로 네 얼굴을 한 여자지. 이제 그 신화 속 물건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거나, 암시장을 떠돌고 있거나. 혹은…."

까마귀는 말을 멈추고, 턱짓으로 루아가 끌고 온 조잡한 썰매를 가리켰다. 로브 아래 잠들어 있는 자하르를.

"네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말도 안 돼…."

루아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모든 것이 거대한 함정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 위해 정교하게 짜놓은 덫.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서?

그때였다.
선술집의 낡은 나무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낮의 빛과 함께 불청객들이 들이닥쳤다. 육중한 갑옷을 입은 세 명의 사내였다. 그들의 몸에서는 피와 땀에 전 비릿한 냄새가 풍겼고, 허리춤에 찬 칼과 도끼는 수많은 싸움의 흔적으로 이가 빠져 있었다. 현상금 사냥꾼. 이 도시의 썩은 물에 사는 하이에나들이었다.

"어이, 까마귀. 혹시 이런 여자를 못 봤나?"

우두머리로 보이는,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가 수배서 한 장을 까마귀의 얼굴 앞에 흔들어 보였다. 루아의 손에 들린 것과 똑같은 양피지였다.

까마귀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시선이 루아와 현상금 사냥꾼들 사이를 오갔다. 그의 눈빛은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이미 받은 금화와, 저 여자와 그녀의 짐을 넘기면 받을 수 있는 막대한 현상금 사이에서.

"글쎄. 이 잿빛 교차로에 드나드는 여자가 한둘이어야지. 얼굴을 가린 손님은 기억 못 하는 게 내 장사 수칙이라서 말이야."

그의 대답은 교활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시간을 벌며, 어느 쪽에 붙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득일지 계산하고 있었다.

루아는 깨달았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저들의 눈이 자신에게 닿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하르가 누워있는 썰매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저기 구석에 있는 년, 얼굴 좀 보자."

우두머리의 눈이 기어이 그녀를 포착했다.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심장이 발밑으로 추락했다. 뇌가 새하얗게 비고, 사냥감을 마주한 짐승처럼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루아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금화 주머니에 꽂혔다. 그리고 그 옆, 희미하게 흔들리는 기름 등잔으로 향했다.
일 초. 영원과도 같은 그 찰나의 순간,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이거나 먹어!"

그녀는 비명과 함께 금화 주머니를 등잔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쨍그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등잔이 깨지고, 뜨거운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불길이 마른 나무 바닥과 테이블 위로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크악! 이 미친년이!"

현상금 사냥꾼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불길을 피했다. 선술집 안은 순식간에 비명과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루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자하르의 썰매를 움켜쥐고, 가게의 뒤편,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저년을 잡아! 놓치면 안 돼!"

등 뒤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루아는 썩은 음식물 쓰레기와 하수구가 뒤섞인 악취가 진동하는 뒷골목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자하르를 등에 고쳐 업었다. 썰매는 좁은 골목을 통과하기에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성인 남자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그의 희미한 온기가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좁고 미로 같은 골목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상금 사냥꾼들은 그녀가 도망칠 만한 길목을 훤히 꿰고 있는 듯,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태양의 심장.
머릿속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메아리쳤다.
나는 누구지?
내가 정말 그걸 훔쳤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잿빛 숲에서 사냥을 하던 나날들이었다. 그 이전의 삶은, 마치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희미했다. 부모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사냥꾼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낡은 칼 한 자루와 생존 기술만이 그녀의 전부였다.

그때, 흐릿한 기억의 파편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대리석 기둥. 사방이 온통 금으로 장식된, 너무나도 거대한 방.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눈을 멀게 할 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
그것은 태양의 조각처럼 뜨겁고, 동시에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아윽!"

루아는 머리를 감싸 쥐며 비틀거렸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야. 스트레스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 거야. 하지만 그 감각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그녀가 잠시 주춤한 사이, 위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휙! 쇠 갈고리가 달린 밧줄이 날아와 그녀의 발치에 단단히 박혔다. 루아가 몸을 피하기도 전에, 다른 밧줄이 날아와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자하르의 몸을 옭아맸다.

"크윽…!"

강한 힘이 그녀를 뒤로 잡아끌었다. 그녀는 자하르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흙먼지가 입안으로 왈칵 들어왔다. 고개를 들자, 골목의 양쪽 지붕 위에서, 그리고 그녀가 달려온 길의 끝에서 현상금 사냥꾼들이 포위망을 완성한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

"이제 항복하시지, 아르테미스."

우두머리 흉터 남자가 어깨에 맨 거대한 도끼를 고쳐 메며, 음습한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로 부하 둘이 따라붙으며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 쓰레기 더미가 쌓인 벽.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루아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품속에서 낡은 사냥용 단도를 꺼내 들었다. 거대한 도끼와 날카로운 장검 앞에서, 그것은 아이의 장난감처럼 초라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등 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하르를 어떻게든 감싸려 애썼다.

"나는 아르테미스가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지만, 눈빛만은 꺾이지 않았다.

"사람 잘못 봤어."

"하! 이 상황에서도 발뺌이라니, 배짱 한번 두둑하군."

흉터 남자가 비웃었다. 그는 루아의 손에 들린 단도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그 꼬맹이는 누구지? 네 정부라도 되나? 꼴을 보니 약에라도 취한 것 같군. 아니면 병든 건가? 뭐, 상관없지. 제국에서 원하는 건 ‘태양의 심장’뿐이니까. 그걸 내놓으면, 고통 없이 보내주도록 하지."

그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자하르를 감싼 낡은 로브를 향했다. 그는 그 안에 값비싼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저 사람에게서 떨어져!"

루아가 비명을 지르며 단도를 고쳐 쥐었다.

"건드리면, 죽여버릴 거야!"

"죽여? 네가? 이걸로?"

남자는 박장대소했다. 그의 부하들도 낄낄거리며 그녀를 조롱했다. 그들에게 루아는 이미 잡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남자는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부하에게 턱짓했다. 덩치 큰 부하 하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루아를 지나쳐 자하르에게로 다가갔다.

"안 돼!"

루아가 그를 막아서려 했지만, 흉터 남자가 휘두른 도끼 자루에 옆구리를 강타당했다. 억, 하는 신음과 함께 그녀는 벽에 처박혔다. 눈앞이 번쩍이고, 숨이 멎었다.

"얌전히 있어, 계집. 네 차례는 그 다음이니까."

덩치 큰 남자가 쓰러진 자하르의 로브를 거칠게 잡아챘다. 그의 더러운 손가락이 자하르의 뺨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서늘.

골목 안의 온도가 급강하했다. 한여름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극한의 냉기가 사방을 지배했다. 현상금 사냥꾼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들은 본능적인 위협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모두가 보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죽은 듯 미동도 없던 남자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을.

그의 눈은 더 이상 텅 빈 유리구슬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는 빛조차 집어삼키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분노도, 증오도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려는, 순수한 허무의 의지 그 자체였다.

자하르의 시선이, 자신의 뺨에 닿으려던 남자의 손가락에 고정되었다.
그의 입술이 아주 천천히, 기괴할 정도로 느리게 열렸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 안의 모든 존재는,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지독한 공포의 언어를 들었다.

「사라져.」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자하르의 몸을 건드리려 했던 남자의 몸이 모래처럼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명조차 지를 시간도 없었다. 그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붕괴는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그는 한 줌의 검은 먼지가 되어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