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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제14화: 늑대의 눈물, 그림자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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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가 폐부를 찔렀다. 마르셀이 말한 벽난로 뒤 비밀 통로는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인, 망각된 공간이었다. 우리는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어둠을 헤쳐나갔다. 축축하고 차가운 돌벽이 드레스 위로 맨살처럼 느껴졌고, 코에서는 매캐한 그을음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내 바로 뒤에서, 이안의 거친 숨소리가 동굴 안을 무겁게 울렸다. 그 소리는 단순한 탈진의 신음이 아니었다. 희망의 절벽 끝에서 발을 헛디딘 자의, 영혼이 깎여 나가는 소리였다.

얼마나 기었을까. 마침내 통로의 끝에서 희미한 달빛과 함께 썩은 나뭇잎 냄새가 섞인 밤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저택의 가장 후미진 정원수 아래로 이어지는 출구였다. 나는 먼저 밖으로 몸을 빼내고, 뒤따라 나오는 이안의 팔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는 휘청이며 땅에 주저앉았다. 화려한 연회복은 흙먼지와 그을음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가면 아래로 드러난 그의 턱선은 절망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내 탓이다.”

그가 으깨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놈들의 표적이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솔데를 끌어들일 줄은 몰랐어.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황태자의 곁에 그 아이를 붙잡아두는 게 아니었는데….”

자기혐오가 독처럼 그의 목소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냉철한 겨울의 늑대는 온데간데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무력한 오라비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어나.”

내 목소리에는 한 톨의 동정심도 실려 있지 않았다.

“네 눈물은 해독제가 아니야. 여기서 주저앉아 울고 있을 시간 따위, 네 여동생에게는 남아있지 않아.”

내 말은 채찍이었다. 그의 뺨을 후려치는 소리 없는 채찍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면의 눈구멍 너머로, 그의 푸른 눈동자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이글거렸다. 분노와 원망, 그리고 한 줄기 희미한 애원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는 내게서 위로가 아닌, 냉혹한 현실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 역할을 맡아줄 생각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지옥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마주 보았다.

***

엘리안이 마련한 지하 창고의 공기는 여전히 축축하고 차가웠다. 타다 남은 양초가 우리의 지친 그림자를 벽 위에서 위태롭게 춤추게 했다. 엘리안은 이미 저택에서 벌어진 소동과 황태자의 수색망이 수도 전체로 확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초조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안의 상태를 보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마른 옷과 따뜻한 물을 가져다줄 뿐이었다.

“백작 부인의 행방은?”

나는 드레스의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뜯어내며 물었다.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깨어 있었다.

“연회장에서 소란이 일어난 직후, 마차를 타고 저택을 빠져나갔습니다. 황태자 전하의 봉쇄 명령이 내려지기 바로 직전이었죠. 모든 것이 계획된 움직임이었습니다.”

엘리안의 보고는 간결하고 정확했다.

“수도 밖으로 나가는 모든 관문을 제 정보원들이 주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백작 부인의 마차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수도 어딘가에 있는 ‘황혼의 교단’의 비밀 거처에 숨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땅거미 상단은?”

“그들은 유령과도 같습니다. 실체는 있지만, 잡을 수가 없습니다. 수도의 모든 뒷골목에 그들의 거미줄이 쳐져 있지만, 그 중심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담 엘라라조차 그들의 핵심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막다른 길이었다. 엘레노어는 뱀처럼 교활하게 숨어버렸고, 그녀에게 가는 길은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시간은 이솔데의 편이 아니었다. ‘가시 돋친 입맞춤’ 저주는 하루가 지날수록 그녀의 심장을 옥죄어 올 터였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그는 벽에 걸린 낡은 제국 지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절망에 잠겨 있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듯한,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분노였다.

“수도에 있는 로렌시아 후작가의 저택을 친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계획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엘리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미쳤습니까! 2황후의 본가입니다. 황실 근위대가 24시간 지키는 요새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우리 병력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엘레노어는 로렌시아 후작의 오랜 후원자였다. 2황후가 교단과 손을 잡았다면, 로렌시아 저택이야말로 엘레노어가 숨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지. 분명 그곳에 단서가 있을 거다.”

“단서를 찾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을 겁니다!”

“그럼 어떡하지?”

이안이 몸을 돌려 우리를 쏘아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칼날 같았다.

“이대로 내 동생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라고? 방법이 없다면, 내가 직접 길을 만들겠다. 저택을 피로 물들여서라도, 놈들의 목을 비틀어서라도 해독약을 찾아내겠어.”

그의 눈은 진심이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늑대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나는 그의 무모한 계획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내게도 옮겨붙는 것 같았다.

“정면으로 들어가는 건 멍청한 짓이야.”

내가 입을 열자,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하지만 쥐구멍은 언제나 존재하지. 로렌시아 후작은 탐욕스러운 늙은 돼지다. 분명 저택 어딘가에 세금을 빼돌린 비자금을 숨겨두었을 테고, 그곳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없을 리 없어.”

“그걸 어떻게 찾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땅거미 상단’이 필요한 거야.”

나는 엘리안을 돌아보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정보를 사 와. 로렌시아 저택의 약점, 비밀 통로, 경비 교대 시간. 무엇이든 상관없어. 놈들과 거래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아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돈이든, 다른 정보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내 명령에, 이안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자신의 분노가 아닌, 나의 차가운 계산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리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군데, 짚이는 곳이 있습니다. ‘속삭이는 시장’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온갖 금지된 물품과 비밀 정보가 거래되는 암시장이죠. 그곳의 정보상인 ‘귀 없는 자’라면 땅거미 상단과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곳은…”

“위험하겠지.”

내가 그의 말을 잘랐다.

“가장 달콤한 꿀은 언제나 독사 옆에 있는 법이야. 당장 안내해.”

***

‘속삭이는 시장’은 이름과 달리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수도의 가장 깊고 어두운 하수구, 버려진 지하 공동묘지를 개조해 만든 그곳은 침묵과 의심의 공기만이 가득했다. 입구에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초 냄새와 피비린내가 역겹게 뒤섞여 코를 찔렀다. 모두가 두건이나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가 곧 죽음으로 이어질 터였다.

엘리안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좁고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 시장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귀 없는 자’의 좌판은 해골 몇 개와 정체 모를 동물의 뼈로 장식된, 음산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좌판 뒤에는 이름처럼 두 귀가 잘려나간 흉측한 몰골의 사내가 앉아, 촛불 아래에서 양피지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무엇을 원하지?”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뱀이 모래 위를 기어가는 것처럼 스산했다.

“땅거미 상단과 연결해 줄 정보를 산다.”

이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 ‘귀 없는 자’는 그제야 펜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텅 빈 눈구멍 같은 눈이 우리를 훑었다.

“땅거미라… 아주 비싼 이름을 입에 담는군. 그 이름을 들을 자격이 있다는 걸 뭘로 증명할 텐가?”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

“하! 이곳에서 돈은 휴지 조각보다 가치가 없지. 정보는 정보로 거래하는 법. 당신들이 가진 가장 값비싼 비밀을 내놓는다면, 생각해 보지.”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의 비밀은 곧 우리의 목숨이었다. 함부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를 제지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그의 좌판 위에 소리 나게 박아 넣었다.

‘귀 없는 자’의 눈이 처음으로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의 시선은 단검의 손잡이에 새겨진 희미한 문양에 고정되었다. 그것은 내가 용병 ‘그림자’ 시절, 암살 의뢰를 완수하고 받았던, 오직 극소수만이 아는 지하 세계의 증표였다.

“내 이름은 그림자다.”

내 목소리는 얼음 조각처럼 날카로웠다.

“이걸로 자격이 증명됐나?”

‘귀 없는 자’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그… 그림자…! 당신이 살아있을 줄이야…. 알겠습니다. 원하는 정보를 드리죠. 하지만 상단과 직접 연결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제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대신, 그들이 지금 가장 목마르게 찾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뭐지?”

“엘레노어 백작 부인. 그 여자의 행방이 아닙니다. 상단은 이미 그 여자를 손에 넣었거나, 필요 없어져서 버렸을 겁니다.”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엘레노어는 로렌시아 저택에 없는 건가? 우리의 모든 계획이 틀어진 것인가?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상단이 진짜로 원하는 건… 그 여자와 관련된 더 뜨거운 물건입니다. 얼마 전,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그는 몸을 앞으로 숙여, 우리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내 심장을 그대로 꿰뚫는 얼음 송곳과도 같았다.

“선황후 폐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품.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그분의 비밀 일기장. 특히,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밤에 쓰셨다는 마지막 페이지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