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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25화: 독이 든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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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그의 목소리를 찢어발겼지만, 단어 하나하나는 얼음 파편처럼 날아와 내 고막에 박혔다.

“……뭐라고?”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현실을 부정하는, 갈라진 숨소리였다. 눈앞의 거대한 수정 탑이 기우뚱, 하고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화상 입은 오른손의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의 말에 비하면 사소한 통증에 불과했다.

침묵의 현자. 내가 찾아야 할 ‘세상의 눈물’을 가진 자. 이 모든 저주의 실마리를 쥔 마지막 희망. 그가, 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흔들림 없는 잿빛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은 나에게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느냐고, 다시 한번 묻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한 걸음 그에게 다가섰다. 발밑의 눈이 으드득, 비명을 질렀다.

“또 다른 기만인가? 내가 탑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비열한 수작이야? 이제 와서 네 말을 믿으라고?”

의심과 분노가 뒤섞인 내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방금 전 그에게 ‘공범’이 되자고 제안했다. 그 신뢰의 손길 위에, 그는 독을 떨어뜨린 것이다.

“기만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지독하게 지쳐 있었다. 마치 수십 년 묵은 비밀을 처음으로 꺼내놓는 사람처럼.

“그것이 제가 아는 전부이자, 당신이 알아야만 하는 진실이오. 선황후 폐하께서 ‘정원의 심장’을 훔쳐 봉인할 수 있었던 것은, 침묵의 현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자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는 대마법사. 그의 도움 없이는 그 누구도 황실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동력원을 건드릴 수 없었지요.”

“도왔다고? 도왔는데 왜 어머니가 죽게 되는 거지? 앞뒤가 맞지 않잖아!”

“그의 도움은 대가 없는 선의가 아니었으니까.”

카엘의 눈동자가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현자는… 선황후 폐하를 사랑했소. 아니, 사랑을 넘어 집착했지. 그는 폐하를 자신의 탑에 가두어, 영원히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소. 그래서 거래를 제안한 겁니다. ‘정원의 심장’을 봉인하는 것을 돕는 대신, 폐하께서 자신의 곁에 머무르기를. 폐하께서는 제국을 구하기 위해 그 위험한 거래를 받아들이셨지만… 결국 현자의 집착에서 벗어나려다 목숨을 잃으신 겁니다. 황실의 기록에는 그분이 병으로 돌아가셨다 되어 있겠지만, 진실은 달라요. 그분은… 탑에서 탈출하려다 현자의 손에 돌아가셨소.”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다정했지만 병약했던 어머니. 언제나 창밖을 보며 어딘가를 그리워하던 그 눈빛. 그것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나. 나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알려진 것처럼 평온한 병세 악화가 아니라, 끔찍한 사투였단 말인가.

“……증거는.”

내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네 말을 입증할 증거가 있나?”

“없습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오직 제 어머니, 레아께서 선황후 폐하와 마지막까지 비밀을 공유했던 유일한 분이셨기에, 그분에게서 전해 들었을 뿐. 이것이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진실이오. 이제 선택은 전하의 몫입니다. 저주를 풀기 위해 어머니의 원수가 있는 소굴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설 것인지.”

그의 말은 잔인한 진실이었다. 그는 나에게 선택지를 주었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돌아선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붉은 달과 정원의 수호자는 여전히 나를 쫓을 것이고, 저주는 제국을 좀먹어갈 것이다.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나는 이를 악물었다. 화상 입은 손바닥이 터져나갈 듯 아파왔다.

“좋아. 거래는 유효해. 너는 공범으로서, 나를 살아서 탑의 꼭대기까지 데려간다. 그게 네 속죄야.”

나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가자. 현자라는 작자가 내 어머니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으니.”

***

얼음 호수는 살아있는 생물이었다.

그저 단단하게 얼어붙은 물웅덩이가 아니었다. 우리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호수 깊은 곳에서부터 섬뜩한 신음 소리가 울려왔다. 끼이익, 끄으응. 마치 거대한 짐승이 잠결에 뒤척이는 소리 같았다. 칼날 같은 바람은 쉴 새 없이 불어와, 뼛속까지 냉기를 밀어 넣었다. 사방은 온통 눈과 얼음뿐이라, 방향감각마저 흐릿해졌다. 거대한 수정 탑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다가도, 한참을 걸어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제가 밟는 곳만 정확히 밟으시오. 한 걸음이라도 어긋나면, 그대로 호수 아래로 끌려 들어갈 겁니다.”

내 앞에서 길을 이끌던 카엘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명확하게 들려왔다.

나는 대답 없이, 그의 발자국을 그림자처럼 따라 밟았다. 아이러니했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판단에 내 목숨을 온전히 맡겨야만 했다. 그가 멈추면 나도 멈췄고, 그가 방향을 틀면 나도 따라 틀었다.

얼음은 투명한 곳도 있었고, 짙푸른 빛을 띠는 곳도 있었으며, 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카엘은 짐승 같은 감각으로 그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고, 가장 안전한 길만을 골라 나아갔다. 그는 이따금씩 허리를 숙여 얼음 위에 귀를 대고, 한참 동안 호수의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내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굶주림과 피로, 그리고 끔찍한 손의 통증이 내 정신을 갉아먹었다. 비틀거리는 내 모습을 본 것인지, 카엘이 걸음을 멈췄다.

“잠시 쉬어가야 합니다.”

그가 거대한 얼음 기둥 뒤, 바람이 덜한 곳을 가리켰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 기둥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탈진한 몸이 제멋대로 떨려왔다.

카엘은 품속에서 마지막 남은 육포 조각과 작은 물주머니를 꺼내 내게 건넸다.

“드시오.”

나는 아무 말 없이 받아들었다. 화상 입은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왼손만으로 간신히 육포를 뜯었다. 질기고 딱딱한 고기 조각이 입안에서 겉돌았지만, 어떻게든 삼켜 넘겼다. 살아야 했다. 살아서 탑에 가야 했다.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아, 그저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잿빛 눈동자에는 더 이상 숨기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깊은 피로와, 연민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만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지?”

나도 모르게 질문이 흘러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가 아닌, 그가 아는 어머니의 모습이 궁금했다.

카엘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제가 뵌 선황후 폐하께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으셨지만, 그 눈빛은 강철보다 단단했지요. 그분은 저주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에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하셨소.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의 말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이전의 날카로운 침묵과는 달랐다. 그것은 차라리, 공유된 고통과 슬픔에 가까운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어머니를 가졌지만, 결국 ‘배신자’라는 똑같은 이름을 짊어진 어머니를 둔, 닮은꼴의 자식들이었다.

“일어나야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호수를 건너지 못하면, 밤의 추위를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울프가르의 폭로 이후, 한 번도 잡지 않았던 손이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왼손을 들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단단했다. 그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나는 그의 눈에서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안도감을 보았다.

***

마침내, 우리는 탑의 입구에 도달했다.

호수의 정중앙, 거대한 수정 탑의 기슭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지독하게 불어대던 바람마저 이 구역에서는 숨을 죽인 듯 잠잠했다. 탑의 벽은 이름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수정 덩어리였다.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끄러웠고, 그 표면에는 우리 주변의 설경이 거울처럼 비치고 있었다.

“문이 없어.”

나는 탑의 벽을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얼음보다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냉기가 스며들지는 않았다.

“하르칸의 말이 맞다면, 탑이 스스로 길을 열어줄 겁니다.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카엘이 내 옆에 서서 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자격이란 게 대체 뭐지? 힘인가? 혈통인가?”

나는 쇄골의 낙인이 새겨진 곳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심장석을 파괴했던 그 힘이라면, 이깟 문 하나쯤은 억지로 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내 안의 힘을 끌어내려 애썼다. 쇄골 아래가 희미하게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바닥을 수정 벽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정 벽은 내 힘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죽은 돌멩이처럼 차갑고 잠잠할 뿐이었다.

“……소용없군.”

허탈감에 숨을 뱉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전부 헛수고였단 말인가.

“저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카엘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손바닥을 벽에 댔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탑은 그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망연자실하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설마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어머니의 원수와 저주의 진실을 코앞에 두고, 이 문 앞에서 돌아서야 한단 말인가.

분노와 무력감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화풀이라도 하듯, 주먹으로 수정 벽을 내리쳤다. 화상 입은 손으로 내리친 탓에, 끔찍한 고통과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하!”

카엘이 놀라 내게 다가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나와 카엘의 몸이 동시에 닿아있는 수정 벽이, 낮은 공명음과 함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푸른빛도, 붉은빛도 아닌, 순수한 백색의 빛이었다. 빛은 벽의 한 지점에서 시작되어, 거대한 문 모양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건…….”

카엘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깨달았다. 탑이 요구하는 자격. 그것은 나 혼자의 힘도, 카엘 혼자의 혈통도 아니었다.

선황후 아델리아의 딸. 그리고 배신자 레아의 아들.
두 개의 ‘배신자의 흔적’이 함께 있어야만 열리는 문이었던 것이다.

눈앞의 빛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졌다. 빛이 잦아들었을 때, 우리 앞에는 문이 있었다. 아니, 문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어둠의 통로였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불길한 침묵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나는 카엘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다. 우리는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열쇠이자, 족쇄임을 깨달았다.

“거래의 조건이 하나 더 늘었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눈에서 대답을 읽었다. 우리는 함께 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내가 먼저 통로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카엘이 바로 내 뒤를 따랐다. 어둠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도 없이 세상의 모든 빛과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은 탑의 내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바로 그 탑의 입구였다. 하지만 풍경은 미묘하게 달랐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지독했던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두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내가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 아델리아였다. 그녀는 우아한 드레스 대신 활동적인 여행복을 입고 있었고, 그 얼굴에는 병약함 대신 강인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잿빛 머리카락을 길게 땋아 내린, 차갑고 아름다운 북부의 여인이 서 있었다. 카엘과 똑 닮은 잿빛 눈동자를 가진, 그의 어머니 레아였다.

그것은 과거의 환영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우리를 보지 못하는 듯,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레아의 손에는 푸른빛을 발하는 작은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정원의 심장’의 조각인 듯했다.

“이것을 봉인하면, 너는 돌아갈 수 없게 돼, 아델리아. 현자는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

레아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깊은 걱정이 묻어 있었다.

내 어머니, 아델리아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상관없어. 내 딸만, 내 제국만 구할 수 있다면. 너야말로, 네 부족을 배신했다는 오명을 평생 짊어지게 될 텐데. 괜찮겠어?”

레아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심장의 조각을 아델리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속에서 날카로운 흑요석 단검을 꺼내 들었다.

“말했잖아. 우리는 같은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단검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선혈이 흘러내려 하얀 눈밭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피 묻은 손을, 아델리아가 들고 있는 심장의 조각 위에 덮었다.

“내 피로, 저주 위에 또 다른 봉인을 건다. 수호자가 이 힘을 쫓지 못하도록. 이것이 내가 너에게, 그리고 네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나는 숨을 삼켰다. 카엘의 어머니는 부족을 배신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피를 제물로 바쳐, 내 어머니와 나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환영 속의 아델리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피로 물든 심장의 조각을 펜던트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자신의 드레스 자락을 찢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어머니는 찢어낸 옷자락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피를 냈다. 그리고 그 피로, 눈처럼 새하얗던 레아의 옷 등판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복잡하고 기괴한 문양이었다.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끔찍한 문양.

그것은, ‘정원의 저주’의 근원을 이루는 저주식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