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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없는 배신자의 자식들을 영원히 가두기 위한, 거대한 무덤이란다.”
마리아의 목소리는 비단결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시체처럼 차가웠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우리를 비추던 수천 개의 별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은하수를 흐르던 장엄한 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독처럼 섬뜩한 붉은빛이 번져나갔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달콤한 라일락 향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코를 찌르는 짙은 피비린내가 우리의 폐부를 후벼 팠다.
쿠우우우웅-!
등 뒤에서, 우리가 들어왔던 아치형 문이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닫혔다. 이제 도망칠 길은 없었다. 별빛이 흐르던 아름다운 천체관은 순식간에 거대한 핏빛 석관으로 변해버렸다.
“네까짓 게….”
내 목구멍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성이 분노의 열기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카엘에 대한 의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롱하는 마리아를 향한 살의가 뒤섞여 내 안에서 폭발했다. 나는 짐승처럼 그녀에게 달려들려 했다.
“전하, 멈추시오!”
카엘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단단한 팔이 내 어깨를 붙잡았지만, 나는 미친 듯이 그를 뿌리치려 발버둥 쳤다.
“비켜! 저년을 내 손으로 찢어 죽여야 해!”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저 여자는… 우리가 알던 그 마리아가 아니오!”
그의 외침이 내 이성을 간신히 붙들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마리아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우리의 꼴을 보며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우아하게 끌어올렸다. 그 상냥하던 얼굴 위로, 이제는 완벽한 경멸과 오만함이 덧칠해져 있었다.
“그래, 그 눈빛. 네 어미와 똑 닮았구나. 자신의 어리석음은 보지 못하고, 언제나 남 탓만 하던 그 가증스러운 눈.”
마리아가 흑요석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톡, 쳤다.
“침묵의 현자는 어디 있지?”
카엘이 나를 등 뒤로 감싸며,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그분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건가?”
“대리인?”
마리아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수정처럼 맑았지만, 듣는 이의 뼛속까지 소름이 돋게 만드는 기묘한 음색이었다.
“가엾은 북쪽 늑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네. 나는 현자님의 대리인이 아니야. 나는 그분의 ‘의지’ 그 자체란다. 너희 어미들이 더럽힌 이 아름다운 정원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려는, 위대한 의지의 집행자지.”
그녀는 우리를 지나쳐, 마치 자신의 정원을 거닐 듯 공간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이 닿는 흑요석 바닥마다 붉은 저주 문양이 피어올랐다가 스르르 사라졌다.
“너희는 현자님께서 선황후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천만에. 그분은 오히려 자비를 베푸셨어.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정원의 심장’을 훔쳐 달아난 그 여자를, 자신의 탑에 ‘보호’해 주셨을 뿐이야. 하지만 네 어미는 그 고마움도 모르고, 미친 짐승처럼 탈출하려다 제풀에 지쳐 죽어버렸지. 그걸 누가 죽였다고 할 수 있을까?”
마리아의 말은 교묘하게 날을 세운 비수였다. 그것은 카엘이 내게 말해주었던 진실을 비틀고, 내 어머니의 죽음을 어리석은 자의 비참한 최후로 격하시켰다. 심장이 얼음송곳으로 찔린 것처럼 아파왔다.
“그럼 네년은 대체 정체가 뭐야! 제국의 궁녀 행세는 왜 한 거지?”
내가 악을 쓰듯 물었다.
마리아는 붉게 물든 별하늘을 올려다보며, 황홀경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보다시피, 이 탑의 무덤지기란다. 그리고 너희 어미들이 저지른 죄를 바로잡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너를 감시하기 위해 궁녀가 되는 것쯤은 아주 사소한 수고였어, 릴리아. 네 안에서 꿈틀대는 그 오염된 힘의 씨앗이 언제쯤 발아할지,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거든.”
그녀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 눈에는 더 이상 인간적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은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한, 차가운 무기질의 시선이었다.
“이제 슬슬 청소 시간이 된 것 같네. 배신자들의 더러운 흔적을 지워버릴 시간 말이야.”
***
마리아가 지팡이를 들어 천장을 가리켰다.
그 순간, 핏빛으로 물들었던 수천 개의 별들이 마치 눈물을 흘리듯, 하나둘씩 붉은 빛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뚝, 뚝. 핏방울처럼 떨어진 빛은 흑요석 바닥에 닿는 순간, 소리 없이 스며들어 사라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을 채운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고 있었다. 피비린내는 더욱 짙어졌고, 살갗에 와 닿는 공기는 축축하고 끈적였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내장 속으로 들어온 듯한 끔찍한 감각이었다.
“이게… 뭐지?”
카엘이 단검을 고쳐 쥐며 경계했다. 그의 온몸의 근육이 위험을 감지한 늑대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마리아는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붉은 빛방울 하나가 카엘의 바로 앞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바닥의 흑요석이 잔물결처럼 일렁이더니, 그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북부의 늑대 전사였다. 얼마 전, ‘정원의 수호자’에게 목숨을 잃었던 하르칸의 부하였다.
“카일….”
환영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가 우리를 배신했어. 너 때문에… 우리가 다 죽었어. 검은 늑대… 부족의 수치….”
환영은 비틀거리며 카엘에게 다가왔다. 그의 뒤로, 또 다른 빛방울이 떨어지며 죽은 늑대 전사들의 환영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카엘을 손가락질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카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이것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가장 깊은 죄책감을 끄집어내어 만들어낸 살아있는 악몽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속지 마, 카엘! 저건 가짜야!”
내가 소리쳤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아니야….”
바로 그때, 내 앞에도 붉은 빛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그리워하고, 이제는 가장 증오하게 된 얼굴이었다.
어머니, 아델리아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기억하던 다정한 모습이 아니었다. 환영 속 어머니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 깊은 파란 눈에는 실망과 경멸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너만 낳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비극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텐데. 너는 내 삶의 가장 큰 실수란다, 릴리아.”
“아… 아니야….”
숨이 막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어머니가 레아의 등에 저주를 새기던 모습보다, 지금 이 순간의 잔인한 속삭임이 내 영혼을 더욱 깊숙이 파괴했다.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실수라고. 내 존재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라고.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가엾어라. 고작 이런 환영 하나에 무너지다니.”
마리아의 조롱이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탑은 너희의 가장 깊은 어둠을 먹고 자라거든. 너희의 죄책감, 너희의 슬픔, 너희의 절망이 바로 이 무덤을 이루는 벽돌이지.”
나는 무너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아니야. 이건 진짜가 아니야. 마리아가 만들어낸 환술일 뿐이야. 하지만 머리는 그렇게 외치면서도, 가슴은 이미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저것이, 내가 외면하고 있던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의심이 독초처럼 피어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정신 차리시오, 전하!”
카엘의 거친 외침이 내 귓가를 후려쳤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환영들을 뚫고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그의 눈에는 이전과 다른, 독기 어린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씹어 삼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내 어깨를 거칠게 붙잡아 흔들었다.
“저것은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오!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한 거짓된 망령일 뿐이야! 당신이 여기서 무너지면, 우리 둘 다 죽소!”
그의 말이 얼음물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안쪽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그래.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저 가증스러운 무덤지기의 조롱 속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눈앞의 어머니 환영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 환영 너머, 모든 것을 지휘하며 즐기고 있는 마리아를 노려보았다.
***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내 앞의 환영을 향해, 하지만 실제로는 마리아를 향해 말했다.
“내 어머니는 나를 실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관없어. 진짜 내 어머니는, 적어도 이런 비겁한 환영 뒤에 숨어서 남의 상처를 핥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
내 말에, 마리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내가 그녀의 도발에 넘어오지 않자, 처음으로 그녀의 완벽한 표정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붉은 빛방울은 점점 더 많아지고, 그 속도도 빨라졌다. 바닥은 어느새 우리를 저주하는 망령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등을 맞댄 채, 사방에서 다가오는 악몽들과 맞서야 했다.
“이것들을 벨 수는 없소. 베어도 곧바로 다시 살아나!”
카엘이 자신의 단검으로 환영 하나를 꿰뚫으며 외쳤다. 그의 말대로, 칼에 꿰뚫린 환영은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곧바로 다시 형체를 갖추었다. 물리적인 공격은 소용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이 공간, 이 공격의 본질은 무엇인가. 마리아는 말했다. 이 탑은 우리의 어둠을 먹고 자란다고. 그렇다면 힘의 근원은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의 기억, 우리의 죄책감. 그렇다면 이 환영들을 없앨 방법은 단 하나. 이 공간의 법칙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방금 전 우리를 이곳으로 이끈 과거의 환영을 떠올렸다. 내 어머니가 레아의 등에 핏빛 저주를 새기던, 그 끔찍하지만 선명했던 장면.
‘때로는 가장 끔찍한 독이, 다른 독을 막는 유일한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카엘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저주를 저주로 막는다. 미끼로 더 큰 미끼를 던진다. 어머니가 레아의 등에 새긴 그 문양. 그것은 단순한 저주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탑의 시스템에 개입하기 위한, 일종의 열쇠이자 바이러스였을지도 모른다.
“카엘!”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네 어머니 등에 새겨졌던 문양! 똑똑히 기억하나? 그 모양, 순서, 모든 것을!”
내 갑작스러운 외침에 카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지금 왜….”
“저 붉은 별들을 봐! 무작위로 빛나는 게 아니야. 저것들은 별자리야! 그리고 빛방울은 정해진 별에서만 떨어지고 있어! 저 패턴이, 문양과 관련이 있을 거야!”
내 말에, 카엘과 마리아의 시선이 동시에 천장으로 향했다. 카엘의 눈에는 혼란이, 그리고 마리아의 눈에는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그녀는 우리가 이 공간의 비밀을 이렇게 빨리 간파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젠장… 너무 복잡하고 빨라서… 전부 기억나지 않소!”
카엘이 고통스럽게 외쳤다. 그 찰나의 순간에 본 기괴한 문양을 완벽하게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는 것만이라도 말해! 시작이라도! 뭐든!”
우리를 향해 망령들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카엘은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그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시작은… 뱀의 눈! 그리고… 꺾인 창! 그 다음은… 제기랄, 그 다음이…!”
그 순간, 마리아가 더 이상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어리석은 짓은 거기까지.”
천장의 모든 붉은 별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더니, 그 빛이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의 머리 위, 천장 중앙에서 이전에 보았던 빛방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붉은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쿵, 쿵, 하고 불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저것이 떨어지면 끝이었다.
“마지막은… 부서진 왕관이었소!”
카엘이 필사적으로 마지막 조각을 외쳤다. 뱀의 눈, 꺾인 창, 그리고 부서진 왕관. 하지만 그 사이의 순서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불완전한 열쇠였다.
나는 불완전한 단서들을 손에 쥔 채, 머리 위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협적으로 맥동하는 붉은 심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하지? 이 단서들로 뭘 할 수 있지? 패턴을 완성해야만 이 상황을 멈출 수 있는 건가?
아니, 기다려.
어머니의 방식.
저주를 저주로 막는다. 패턴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패턴을 어지럽히는 거야.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키는 거야.
나는 결심했다. 나는 카엘이 외친 세 개의 별자리를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그 별자리들을 잇는 가상의 선, 그 정중앙에 위치한, 지금껏 단 한 번도 빛방울을 떨어뜨리지 않았던 이름 모를 별을 찾아냈다.
“카엘! 나를 저곳으로 던져!”
나는 그 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내 무모한 요구에 카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전하, 그게 무슨…!”
“잔말 말고! 어서!”
거대한 붉은 심장의 맥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단 몇 초도 남지 않았다. 카엘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내 눈 속의 결의를 읽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내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온 힘을 다해, 나를 공중으로 던져 올렸다.
내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눈앞으로 붉은 심장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화상으로 너덜너덜해진 오른손을 뻗어, 내 쇄골 아래의 낙인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서져라. 너를 만든 이 거짓된 하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