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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제24화: 가장 눈부신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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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 그룹의 파티를 망치고 싶습니까? 당신이 그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초대장’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기계로 변조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한강의 칼바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내 주변의 모든 소음이 저 음산한 속삭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적의 적은 친구. 진부한 문장이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지옥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누구지?”

내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잠겨 있었다. 의심과 경계, 그리고 한 줌의 희망이 뒤섞인 탁한 음성이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김태준과 강한서가 무너지는 것을 나 역시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이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내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휴대폰 화면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QR코드가 담긴 모바일 초대장이었다. 이름: 김민지. 소속: TPA 통신. 직책: 취재기자.

“보안 요원들은 얼굴까지 확인하지 않을 겁니다. 명단과 코드만 일치하면 들여보내주겠죠. 행사장 입구 옆, 기자들을 위한 프레스룸 라커 C-7에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당신이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단 3분. 강한서 상무의 연설이 끝나는 그때를 노리십시오.”

일방적인 통보였다. 내가 동의하기도 전에, 전화는 소리 없이 끊겼다. 손에 들린 휴대폰이 차가운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력자. 그가 파놓은 또 다른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뱀처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나? 없었다. 나는 이미 벼랑 끝에 서 있었고, 그가 내민 것이 썩은 동아줄이라 할지라도 잡아야만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오토바이의 스로틀을 다시 감았다.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는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외길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

SJ 그룹 본사 로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과시였다. 바티칸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높은 천장, 수억 원을 호가할 것이 분명한 현대 미술 작품, 그리고 값비싼 향수와 샴페인, 인간의 욕망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불쾌한 소음. 나는 영수가 구해준 낡은 운동화와 찢어진 드레스 차림 그대로, 이 모든 허영의 풍경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경멸과 의혹이 담긴 시선이 사방에서 날아와 온몸에 비수처럼 박혔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내 안은 이미 모든 감정이 타버린 잿더미였으므로. 나는 오직 프레스룸이라는 표지판만을 좇아 기계처럼 걸었다.

역시나,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경호원의 딱딱한 손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초대장 보여주시죠.”

나는 말없이 휴대폰의 QR코드를 내밀었다. 그가 스캐너로 코드를 찍자,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불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 스쳤던 의심이 아주 희미하게 걷혔지만, 여전히 내 행색을 위아래로 훑는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소속과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TPA 통신, 김민지입니다.”

나는 미리 외워둔 이름을 내뱉었다. 내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경호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길을 비켜주었다. 나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 프레스룸으로 향했다. 등 뒤로 그의 찜찜한 시선이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프레스룸은 행사장 바깥의 소란과는 달리 묘한 긴장감과 열기로 가득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가장 구석에 있는 라커 C-7로 향했다.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돌려 비밀번호 ‘0707’을 맞추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는 단정한 검은색 바지 정장과 프레스 카드, 그리고 작은 무선 마이크와 수신기가 들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내가 영수에게 맡겼던 바로 그 디지털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아마도 영수가 그 의문의 인물과 접촉한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낯선 옷에서 나는 희미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찢어진 드레스와 흙투성이 운동화를 쓰레기통 깊숙이 쑤셔 넣는 순간, 나약했던 과거의 강하린도 함께 버려지는 기분이었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프레스 카드를 목에 건, 그럴듯한 기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짙은 화장으로 창백한 얼굴을 덮고, 붉은 립스틱으로 핏기 없는 입술에 색을 입혔다. 독을 머금은 꽃처럼,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파멸하기 위한 마지막 단장이었다.

나는 녹음기와 무선 마이크 수신기를 허리춤에 숨기고, 송신기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

행사장은 거대한 오페라 극장 같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거짓된 미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기자들 무리에 섞여 그들 사이를 유령처럼 빠져나갔다. 내 목표는 단 하나, 무대 바로 앞이었다.

마침내 저 멀리,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 있는 두 남자가 보였다. 회색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채, 재계의 거물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태준 비서. 그리고 그의 옆에서, 세상 가장 부드러운 미소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강한서. 그들은 이 파티의 왕이었고, 나는 그들의 화려한 대관식을 망가뜨리러 온 역적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잿더미만 남았던 심장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준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저들의 저 위선적인 미소 뒤에, 얼마나 많은 피와 거짓이 숨겨져 있을까.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위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바쁘신 와중에도 저희 SJ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 후원의 밤에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어서 SJ 그룹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 강한서 상무님의 비전 선포 연설이 있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한서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수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며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는 마치 세상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라도 된 듯, 두 팔을 벌려 청중의 환호에 답했다.

그의 시선이 객석을 훑다가, 기자들 무리 속에 서 있는 나와 아주 잠깐 마주쳤다. 그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혹은 알아보았더라도 무시하기로 한 듯, 곧바로 시선을 돌려 준비된 연설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SJ 그룹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나는 재킷 안주머니 속, 차가운 마이크 송신기를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지난 50년, 저희 SJ 그룹은….”

그의 거짓된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천천히 무대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경호원들의 시선을 피해, 음향 장비가 놓인 어두운 구석으로. 나의 조력자가 말한 ‘3분’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연설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저희 SJ 그룹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다가올 50년, 100년을 향한 위대한 도전을 시작하려 합니다! 바로 여기 계신 여러분과 함께!”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숙이며 연설을 마무리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나는 숨겨둔 무선 마이크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듯, 무대 위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회자와 경호원들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향해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내 목소리가 더 빨랐다.

“아주 감동적인 연설이네요, 오빠.”

내 목소리가 행사장의 모든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장내의 모든 소음이 칼로 자른 듯 멎었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강한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눈이 경악과 분노로 물드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무대 아래, 김태준의 얼굴은 차가운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 위대한 도전의 첫걸음이, ‘살인’과 ‘거짓’ 위에서 시작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나는 그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는 핏기 가신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친년. 여기서 뭘 어쩌자는 거야.”

“뭘 어쩌긴. 오빠의 그 역겨운 가면을,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앞에서 벗겨주려고.”

나는 허리춤에서 디지털 녹음기를 꺼내 높이 쳐들었다. 모든 카메라의 플래시가 일제히 내 손에 들린 작은 기계를 향해 터졌다.

“이 안에는, 모든 진실이 담겨 있어요. 26년 전, 이 집안에서 벌어진 비극의 시작과 끝. 그리고 당신이… 강한서가 아니라는 증거까지.”

장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경악 어린 탄성과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경호원들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덮치기 전,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딱 한 가지만 묻죠. 준서 오빠… 지금 어디 있어요?”

내 질문에, 강한서의 입가에 잔인한 비웃음이 걸렸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혹은 이 상황을 즐기기로 작정한 악마처럼 나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찾고 있었어? 그는 지금… 아주 편안한 곳에 있어. 네년이 곧 가게 될 바로 그곳에.”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호원들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았다. 몸싸움이 벌어지며 녹음기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이제 끝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으려던 순간이었다.

“그 손, 당장 치워.”

행사장의 모든 소음을 꿰뚫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나와 경호원들, 심지어 강한서와 김태준의 시선까지도 한 곳으로 향했다. 행사장 뒤편, 활짝 열린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역광을 등지고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한쪽 팔을 감싼 엉성한 붕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셔츠 가슴팍을 붉게 물들인 선명한 핏자국.

내 숨이 멎었다. 시간도, 공간도,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 지옥의 밤, 김태준의 명령 한마디에 내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던 바로 그 남자.

준서 오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