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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대체 무슨 꿈같은 상황이지?" 날카로운 발소리가 나의 의식을 흔들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차갑게 살아 도는 공기가 뺨을 스쳐갔다.
복도의 끝에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미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제안의 실루엣은 야수처럼 서늘하고 당당했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아리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 다가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제안은 짙은 어조로 말씀하셨다. "모든 진실을 직면하고 선택을 해야 할 명분 때문이지요."
아리안의 눈에서 마치 스멀거리는 불꽃이 타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은 함구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던 라에르 공작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우린 이미 선택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이제 당신들의 결정만이 남았을 뿐."
그의 목소리는 녹쇠처럼 꽉 쥐어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제안을 응시했다. 그의 손끝에서 작은 떨림이 잠시 보였으나, 이내 단호하게 멈추었다.
"폐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도중에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제안은 빠르게 흐름을 잡았다.
"세아 공녀, 함께 할 수 있다면 오늘의 결말은 달라질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경계의 바깥에서 마구잡이로 터져나오는 고함 소리가 우리를 휩쌌다. 복도를 휘감는 얼어붙는 공포. 심장은 긴장으로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결단을 내릴 시간이야," 아리안이 한걸음 다가와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새로운 결심이 떠올라 있었다.
"네 결정으로 이 모든 것이 결정될 거야."
그녀의 말에 내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두려움과 불안이 점차 확신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때,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복도의 어둠 속에서 아련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여전히 무리를 두르셨군요, 제안. 끝내 내 예상대로 됐네요."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불현듯 복도에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이는 제안의 오래된 친구이자 한때 라이벌이었던 칼루였다. 그의 등장이 불러온 놀라움에 모든 이들이 일시적으로 멍해졌다.
아리안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공작은 표정없는 얼굴로 칼루를 주시했다. 제안의 입꼬리에는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돌아왔군, 칼루."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이 예상한 대로, 아니, 조금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죠," 칼루가 말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그로 인해 일어날 변화를 이제 밝히고자 한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할 겁니다."
그의 말에 내 심장은 쫄깃하게 움켜쥐어진 듯했다. 낯익지만 아찔한 기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 선택의 순간이 우리 모두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 같았다.
제안은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시간이군요, 세아 공녀."
심연 같은 고요한 순간, 나는 내 앞에 놓인 모든 것에 기꺼이 발을 내딛기로 했다. 가슴팍으로 올라오는 진한 감정이 모든 것을 삼켜내며, 이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가길 기대했다.
그들의 선택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엉키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되려 길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복도에 울리는 단호한 외침과 함께 문이 기운차게 닫히며 소음이 퍼져나갔다. 우리 모두는 이 선택의 끝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어떤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이제 찾아올 것은 우리가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고, 그곳에서 드러날 진실이었다. 우리의 앞에 놓인 막다른 앞길, 그 속에서 밝혀질 운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 선택에서 비롯될 일들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모든 것의 균형추가 서서히 이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움켜쥔 손, 그 손에 맞닿은 미래는 아직 촉촉한 안개 속이었다.
마지막 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젖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 모든 것이 얼마 지나지 않는 순간에 이어질 사건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를 메우는 긴장감, 마침내 마주할 진실. 과연 그 결말이 무엇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