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준호의 주먹이 테이블을 내려치자 서류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종이들이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는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세민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차가운 미소를 유지했다. 그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하늘 대표, 이 파일이 네가 준 게 아니라고? 그럼 누가 준 거지?”
하늘은 복도에 선 채로 세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긴 흑발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하늘의 입술 끝을 스치듯 지나갔다.
“세민, 그 파일 출처를 지금 당장 밝혀.”
준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세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났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하늘을 향했다.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겠군. 이서연… 아니, 하늘. 3년 전 그날 밤, 네가 내 사무실에 온 이유가 뭐였지?”
하늘의 손가락이 소영의 팔을 놓쳤다. 피부에 남은 따뜻한 감촉이 점점 식어갔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구두 소리가 바닥에 울렸다.
“그 파일, 내가 준 적 없어. 세민 씨가 어떻게 입수했는지부터 말해 봐.”
세민은 웃으며 태블릿을 하늘 쪽으로 돌렸다. 화면 속 파일명 이 선명했다. 준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의 넓은 가슴이 셔츠 아래로 팽창했다.
“그럼 이 서명이 뭐지? 네가 직접 넘겼다고 세민이 주장하는데.”
준호가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늘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뜨겁고 축축한 감촉이었다.
“그 서명은 가짜야. 준호 씨, 지금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거야?”
세민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재미있군. 그럼 이 파일이 진짜라면, 내일 아침 신문에 실리는 건 시간문제겠어. 하늘 대표, 준비 단단히 해.”
세민이 사라지자 방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준호는 하늘을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그의 체격이 가까워질수록 우디 향이 코를 찔렀다. 땀에 젖은 피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너, 정말 그 파일 준 적 없어?”
준호의 입술이 하늘의 귓가에 닿을 듯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을 밀쳤다. 손바닥 아래로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믿지 않겠지만, 난 준 적 없어. 대신… 소영이 그 파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확인해 봐.”
준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하늘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따뜻한 손가락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소영이라니. 네 조력자 말이야?”
하늘은 대답 대신 준호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복도로 나가 소영을 찾았다. 소영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밝은 미소가 사라진 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세민 씨. 파일은 제가 넘겼습니다. 하늘은 모르게 해 주세요.”
하늘의 발이 멈췄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소영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소영의 눈이 커졌다.
“소영,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소영은 전화기를 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하늘, 오해하지 마. 세민 씨가 협박해서…”
“협박? 네가 준호 쪽 데이터까지 건드린 이유가 그거야?”
하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소영은 고개를 떨구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밝은 표정이 무너졌다.
“하늘, 미안해. 세민이 3년 전 사건을 파헤치겠다고 해서… 네 비밀을 지키려고 한 거야.”
하늘은 소영의 손을 놓았다. 복도 조명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준호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의 눈이 소영을 향했다.
“소영 씨, 방금 세민과 통화한 거 들었어.”
준호의 말에 소영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준호 씨, 하늘을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뭐예요? 당신도 그 파일 원본을 가지고 있잖아요.”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그는 소영을 지나 하늘 쪽으로 다가왔다.
“그 파일, 내가 감춰둔 이유가 있어. 하늘, 네가 3년 전 그날 밤 내게 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
하늘은 준호의 셔츠 깃을 잡았다. 천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그녀의 숨결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증명? 준호 씨, 지금 날 시험하는 거야?”
준호는 하늘의 허리를 감쌌다. 따뜻한 팔이 몸을 조였다. 두 사람 사이 거리가 사라졌다. 소영이 복도 끝에서 소리쳤다.
“둘 다 멈춰! 세민이 진짜 파일을 신문사에 넘기기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세민이 다시 나타났다. 그의 손에 들린 또 다른 태블릿 화면이 번쩍였다. 새로운 데이터 그래프가 떠 있었다. 12퍼센트 차이의 원본이 아니었다.
“준호, 네가 숨긴 게 이거였군. 하늘 대표의 과거 보고서, 사실은 네가 조작한 거였어.”
세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하늘은 그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세민의 태블릿을 향했다. 소영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늘, 이게 다… 내가 한 일이야. 세민이 시켜서…”
준호는 세민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걸음이 무거웠다. 하늘은 복도에 홀로 서서 두 남자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하늘 대표님, 이 파일 진짜 원본 맞습니까? 내일 아침 신문에 실리기 전에 답해 주시죠.”
세민이 건넨 전화기 너머로 낯선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호의 손이 하늘의 손목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세게였다. 뜨거운 열기가 피부로 스며들었다.
“하늘, 이제 진짜 선택해야 해. 날 믿을 건지, 아니면…”
준호의 말이 끝나지 않은 채, 복도 불이 깜빡였다. 정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세민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하늘은 준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심장 박동이 빠르게 느껴졌다. 소영의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미안해, 하늘. 이게 끝이 아니야.”
어둠 속에서 새로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낯선 남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세민에게 태블릿을 건넸다. 화면 속 파일명이 바뀌어 있었다.
하늘은 준호의 팔을 놓았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준호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세민이 낮게 속삭였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하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