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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피로 새겨진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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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이는 헤드라이트가 주차장 바닥의 물웅덩이를 찢으며 다가왔다. 타이어 마찰음이 콘크리트에 스치자 날카로운 고무 냄새가 밤공기를 가득 메웠다. 민재는 USB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유진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드레스 자락이 그의 허벅지에 스치며 미세한 마찰음을 냈다.

“민재, 저 사람… 믿지 마.”

유진의 속삭임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그의 셔츠 단추를 움켜쥐며 살짝 떨렸다. 민재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새로 나타난 실루엣을 향했다. 검은 코트 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낯선 남자의 얼굴이 점차 드러났다.

그 남자는 천천히 걸어오며 담배를 비벼 끄는 소리를 냈다. “오랜만이구나. 네가 이렇게까지 커버릴 줄은 몰랐어.”

민재의 발바닥이 차가운 물웅덩이를 밟으며 튀는 소리가 울렸다. “너는… 대체 누구지? 아버지라 불렀던 그 사람은 또 뭐고.”

남자는 웃음 대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네 진짜 아버지가 아니다. 하지만 유진이 너를 숨겨준 이유는 네가 그녀의 아들이기 때문이야. 그 계약은 처음부터 보호가 아니라, 너를 법조계에서 몰아내기 위한 덫이었지.”

유진의 몸이 민재의 등에 바짝 붙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그의 척추를 통해 전해졌다. “광수, 네가 왜 여기서 그 말을 꺼내는 거지? 그건 네가 꾸민 거짓말일 뿐이야.”

광수가 권총을 다시 들어 올리며 웃었다. “거짓말? 유진, 네가 민재를 계약으로 끌어들인 순간부터 이미 끝난 거다. 그 USB 안에 들어 있는 건 네가 숨긴 입양 서류야. 민재의 피가 네 동생의 것이 아니라, 네가 법정에서 보호하려던 증인의 피라는 걸 이제 알게 될 거다.”

민재의 손톱이 USB 가장자리를 파고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얼렸다. “그럼 지금까지의 모든 게… 거짓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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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차장 뒤편 골목으로 몸을 돌렸다. 유진의 구두가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가 리듬을 만들었다. 민재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좁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축축한 벽돌 냄새가 코를 찔렀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고, 총알이 벽을 스치며 튀는 파편 소리가 귀를 때렸다.

“민재, 여기서 멈춰. 더 이상 도망쳐도 소용없어.”

여검사의 목소리가 골목 끝에서 울렸다. 그녀의 구두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민재는 유진을 벽에 기대게 하고 몸을 돌렸다. “여검사, 너까지 이 판에 끼어든 이유가 뭐지. 네가 원하는 건 USB가 아니라, 유진의 목숨 아니었나.”

여검사는 총구를 내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내가 원하는 건 진실이다. 민재 씨, 당신이 유진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당신 아버지가 죽은 날의 진짜 범인이 드러날 테니까.”

유진이 민재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뜨거웠다. “그날… 네 아버지는 나를 지키려다 죽은 게 아니야. 그는 광수가 보낸 자객이었어. 내가 그를 막으려다 네가 태어난 병원까지 쫓겨났던 거지.”

민재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는 유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럼 계약은 처음부터 복수가 아니라, 네가 날 지키기 위한 거였나.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

유진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네가 진실을 알면, 넌 날 떠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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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오자 낡은 창고 지붕 아래로 들어섰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금속을 두드렸다. 민재는 유진을 상자 뒤로 밀어넣고 USB를 꺼내 들었다. “이걸 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해. 내가 네 아들이라면, 왜 그 계약서를 태우지 않았지.”

유진은 상자 모서리를 움켜쥐며 고개를 들었다. “그 계약은 네가 법조계에 들어선 순간부터 너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패였어. 그런데 광수가 그걸 뒤집어서, 네가 날 죽이게 만들려는 거지.”

바로 그때 창고 문이 열리며 수현이 들어왔다. 그의 향수 냄새가 기름 냄새를 밀어냈다. “늦었어, 민재. 그 USB는 이미 복제됐다. 지금 네가 가진 건 가짜야. 진짜 파일은 내가 가지고 있어.”

민재의 발이 바닥을 구르며 삐걱거렸다. “수현, 너까지… 네가 배신한 이유가 그 파일 때문이었나.”

수현은 웃으며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네 아버지가 죽은 날, 나는 그 장면을 목격했어. 유진이 네 아버지를 총으로 쏘는 걸. 그런데 그 총알은 사실 광수가 쏜 거였지. 유진은 네 아버지를 살리려다 오히려 네가 태어난 걸 숨기려고 했던 거야.”

유진의 몸이 상자에 기대어 흔들렸다. 그녀의 드레스가 젖은 바닥에 스치며 미세한 소리를 냈다. “수현, 그걸 말하면 민재는… 이제 날 믿지 않을 거야.”

민재는 USB를 바닥에 던졌다. 금속이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럼 진짜 계약은 뭐였지. 사랑이었나,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이었나.”

수현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제 선택해. USB를 버리고 유진과 함께 도망치든지, 아니면 파일을 열고 모든 걸 끝내든지. 그런데… 파일을 열면, 너는 네가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관계가 완전히 뒤집힌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창고 뒤편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관료의 낮은 웃음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퍼졌다. “선택은 이미 늦었어, 민재 씨. 이제 네 피가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유진이 너를 왜 끝까지 숨겼는지, 모두 드러날 테니까.”

민재는 유진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손등을 파고들었다. 관료가 천천히 다가오며 손에 든 총을 들어 올렸다. 빗물이 총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가 선명했다.

“마지막 기회다. USB를 내놓든지, 아니면 그녀를 잃든지.”

유진의 눈동자가 민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관료의 총구가 이미 두 사람 사이를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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