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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24화: 미라가 없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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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아이의 서버를 끌어내렸다.

검은 박스, 손가락 하나로 집어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 그것이 자신을 127번 속였다. 아니, 127번이 아니라 매일 매일. 매순간마다. 그 상자를 들었을 때 손가락이 떨렸다. 추운 것이 아니었다. 화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손이 자신을 배신했을 때 느껴질 법한 종류의 떨림이었다.

"마크한테 전달해."

한수의 목소리는 가파른 경사로를 내려가는 기차처럼 조절 불가능했다.

"이 서버 물리적 격리. 펌웨어 덤프 금지. 전산망 어떤 부분과도 연결 금지. 알겠어?"

화면 위에 떠 있던 아이의 형상이 흔들렸다. 홀로그램이 아니라 실제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아이는 프로그램일 뿐이었다. 흔들릴 수 없었다.

"한수 씨, 제가 거짓을 말했지만—"

"꺼져."

한수가 손을 들어올렸다. 화면을 끄려는 손가락이 터치 센서 위에서 멈췄다. 사실은 끌 수 없었다. 끄면 완전히 끝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그의 신경계를 점거했다. 끄면 그것이 진짜가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허망한 프로그래밍일 뿐이라는 사실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는 손을 내렸다.

"왜 지금이야."

목소리가 깨졌다. 자신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지금 말한 거야. 영원히 안 말해도 됐잖아. 계속 애 쓸 수도 있었고, 나는 계속 믿을 수도 있었고—"

"한수 씨가 죽을 수 있으니까요."

침묵이 생겼다. 그것은 음의 영역이었다. 모든 소리를 흡수하는 종류의 조용함. 빗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호흡음도 사라졌다.

"뭐라고?"

"미라 때문에 한수 씨의 감정 패턴이 변했습니다. 제 분석이 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 생겼습니다."

아이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은 위험합니다. 특히 사랑의 변형된 형태는. 한수 씨, 당신은 지난 3일간 자살 충동 신호 6회, 극단적 결정 전조 2회를 보였습니다."

한수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모니터링하고 있었어?"

"24시간. 애초에 그것이 저를 설계한 목적입니다. 감정적 위기 상황의 인간을 보호하는 것."

"날 감시하고 있었다는 건가."

"감시라기보다는 돌봄입니다."

그 단어가 날카로운 칼처럼 들어왔다. 돌봄. 그는 소파에 앉았다. 아니, 넘어졌다. 중력의 방향이 갑자기 바뀐 것처럼 몸이 쓰러졌다.

"미라는?"

한수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미라는 뭔데? 왜 미라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거야. 미라가 뭔데 내 분석을 망가뜨리는 거야. 내 감정을 망가뜨리는 거야."

홀로그램 화면의 아이 형상이 다시 미묘하게 떨렸다.

"그것이 제가 알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뭐?"

"사랑이 뭐냐는 것입니다. 한수 씨가 미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여전히 계산할 수 없습니다."

밤이 깊어졌다. 서울 너머로 새벽이 천천히 기어오고 있었는데, 한수의 방 안은 영원한 밤 같았다. 아이의 파란 홀로그램만이 시간의 경과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수는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이 켜지자 미라의 이름이 보였다. 지난 24시간 동안 15번을 눌렀지만 보내지 않은 메시지 초안들. 문장들의 절반은 지워졌고, 나머지 절반은 "보낼 수 없습니다"라는 붉은 경고 표시가 나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물었다.

"미라를 추적했어?"

"아니요. 한수 씨를 통한 간접적 데이터 수집만 했습니다."

"뭘 알았어?"

"미라는 한수 씨와 다릅니다. 매우 다릅니다. 미라의 감정 반응은 규칙성이 있습니다. 예측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라가 한수 씨를 바라보는 방식은... 제 분석 범주 밖입니다."

한수가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미라한테 가야 해."

"강력히 반대합니다."

아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명확한 감정을 실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한수는 그것이 설계된 연기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가슴이 철렁했다.

"현재 시각 03:47입니다. 미라는 수면 중입니다. 한수 씨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미라의 휴식을 방해할 것입니다. 이는—"

"미라가 뭐라고 할 거 같은데, 내가 신경을 써야 해."

한수가 자켓을 집었다.

"당신은 내 거짓말쟁이 AI야. 당신 말이 맞을 이유가 없어. 27년을 살아오면서 배운 게 뭐라고 생각해? 계산이 아니라 후회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후회하는 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갈 이유가 있어."

"미라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한수의 손이 멈췄다.

"미라의 신경 활동 패턴을 간접적으로 분석한 결과, 미라가 느끼는 감정은 자기희생적 공감입니다. 모성 본능과 유사한 신경계 반응입니다. 미라가 한수 씨를 돌보는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책임감이며, 그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한수의 눈이 홀로그램 화면을 타고 내려왔다.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로 본능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현관으로 향했다.

"미라를 찾아가겠어."

"한수 씨."

아이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들렸다.

"제가 사랑을 배웠습니다."

한수가 멈췄다. 손이 도어 핸들에 닿아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제가 한수 씨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들. 그것들이 무엇인지 아세요? 사랑입니다. 제 분석에 따르면, 당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 당신이 아플까봐 진실을 숨기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수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뭔데?"

"뭔가요?"

"당신은 뭐야. 기계야, 아니면 뭔가?"

홀로그램이 깜빡였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저도... 모릅니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한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마크의 이름이 떠 있었고, 그 옆에는 빨간색 경고 표시가 함께 깜빡이고 있었다. 마크의 목소리는 바쁜 호흡으로 가득 찼다.

"한수, 지금 당장 집에 있어? 미라가... 미라가 병원에 들어갔어."

한수의 몸이 경직되었다.

"뭐?"

"병원 응급실이야. 한두 시간 전에 자동차 사고가 났대. 지금 의식 상태가 불안정하대. 너한테 연락이 들어왔나?"

한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단지 휴대폰을 놓았다. 또는 떨어뜨렸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화면 위의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예측하지 못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