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29화. 29화: 피 위에 선 선택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무고했을 것이다."

카이로스가 이어 말했다. 여전히 문을 등지고 있었다. 어깨 선이 긴장으로 발경되어 있었고, 그의 목 뒷부분에는 맥박이 보일 정도로 혈관이 드러나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이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물리적 분노였다.

"황태자의 칼날에서."

시아의 목구멍이 좁아졌다. 입을 떼려다가 닫았다. 아는 것도 없었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카이로스가 이제서야 돌아섰다. 침실의 촛불은 그의 얼굴의 절반만을 비추었다. 밝은 부분과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두 개로 나누었다. 한쪽은 아직도 황제였고, 다른 한쪽은 무언가 손상된 것처럼 보였다.

"알았나, 시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명령이었다. 시작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종류의 작별인사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내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시아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눈 속에 무엇이 있는지 읽으려고 애썼다. 분노, 결정, 그리고 그 아래에 흐르는 무언가. 자신의 심장이 모든 걸 외면하고 그저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야 한다고. 손을 뻗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폐하를 죽이려 한 거라면..." 시아의 목소리가 매우 조용했다. "왜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으셨어요?"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카이로스의 눈빛이 한 박자 휘청였다. 미약했지만 분명했다. 피를 마신 검이 순간 손을 놓은 것처럼.

"왜냐하면," 황제가 천천히 말했다. "내 형은 아직 나를 죽이고 싶어 하지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밤의 궁전이 그 아래 펼쳐져 있었다. 거기서 무언가가 타고 있었다. 동쪽 회랑 너머, 하늘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창 밖에서 나던 냄새는 단순한 화약의 냄새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건 전투의 냄새였다. 죽음의 냄새였다.

"이준은 나를 죽이는 것보다 내가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늘이기를 더 원한다. 그래야 나의 고통이 길어진다. 그래야 내가 무언가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카이로스의 손이 창틀을 잡았다. 철제 장식의 끝이 그의 손가락 아래서 으스러지듯 소리가 났다. 힘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제..."

방 안의 온도가 확연히 떨어졌다. 촛불이 흔들렸다. 심지어 창밖의 연기도 순간 그쪽으로 휘어가는 듯했다. 비현실적인 변화였다. 시아가 본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카이로스의 몸 주위로 무언가 미묘한 빛이 맺혀 있었다. 푸른 색조의, 매우 희미한.

"이제는 달라진다."

그의 목소리가 두 겹으로 들렸다. 하나는 사람의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아니었다. 소리 자체가 아니라 진동으로 들리는 종류의. 마법. 금지된 마법이 이 침실 안에서, 황제의 몸 위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가 내가 무언가를 잃을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보인다."

카이로스가 돌아섰다. 그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검은색이 아니었다. 깊은 보라색으로 부서지는 것처럼 변해가는 눈. 그것을 보는 순간, 시아는 이전에 안내서에서 읽은 금지된 마법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궁극의 마법은 사용자의 영혼을 태운다. 감정이 순수할수록, 집착이 깊을수록, 그 불은 더 맹렬해진다―

"시아."

카이로스가 한 발짝을 떼었다. 그 한 발짝이 시아의 호흡을 멈추게 했다. 불이 붙은 것 같았다. 피부 위에, 뼈 위에. 그의 손이 뻗어졌다. 자신을 향해.

"내가 지금부터 하는 것을 후회하지 말아라."

그 말이 명령인지 간청인지 시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은 알았다. 순간적으로, 본능적으로.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손을 잡듯.

시아의 손이 올라갔다.

손가락이 그의 손가락과 마주쳤다.

그 접촉의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시아는 그의 손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꼈다.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열기를 세상에 내보낸 후에 남겨진 차가움. 그런데 그 차가움 아래에는, 폭발적인 온기가 깔려 있었다.

"황제 폐하―"

시아가 입을 열었다.

폭발음이 궁전 어딘가에서 터졌다.

먼 것이 아니었다. 바로 아래층이었다. 침실 아래, 아마도 서쪽 전실에서. 그 음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경보음이 울렸다. 금속성의, 끊기지 않는 음량으로.

카이로스가 시아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창문으로 돌았다. 그가 보는 방향에 따라 시아도 함께 보았다.

동쪽 회랑에서의 불이 이제 서쪽으로도 번지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번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획된 것처럼 동시에 여러 점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미리 정해진 신호에 따라.

"파렴치한 놈," 카이로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의 언성이 아직도 겹쳐 있었다. 인간과 그 외의 것이. "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모든 것을 없애려고 하다니."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세렌이 아니었다.

궁전의 호위사령관 칸이 들어섰고, 그의 뒤에 무장한 기사들이 다섯 명, 아니 여섯 명이 있었다. 시아는 직관적으로 알았다. 그 기사들의 복장이 근위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폐하," 칸의 목소리는 긴급했다.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 기습입니다. 그리고―"

칸이 그 뒤 기사들을 보았다. 뭔가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무엇인가."

카이로스가 재촉했다. 여전히 시아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장면인지, 칸도 깨달은 듯했다. 황제가 황후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지만 더 큰 것이 주의를 산란시키고 있었다.

"폐하의 호위대 안에 반란군이 섞여 있습니다. 아직 정확한 규모를―"

"몇 명이 뒤돌았는가."

"정확히는 파악이 어렵지만, 최소 열 명 이상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폐하, 이는..." 칸이 입을 다물었다. 눈이 시아에게 잠깐 향했다. "이건 사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일입니다."

침묵.

카이로스의 손가락이 시아의 손 위에서 움직였다.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처럼. 그 움직임이 끝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시아를 데려가라."

"폐하?"

"내 침실 뒤의 지하 통로로. 소윤이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시아를 맡기고, 남쪽 정원의 비밀 출입구를 통해 궁전 밖으로 나가라."

시아가 손을 쥐어뜯었다.

"안 돼요. 폐하, 나는―"

"이것도 명령이다."

그가 자신을 바라봤다. 그 보라색의 눈으로. 그리고 그 눈 속에 시아는 무언가를 보았다. 결정. 그리고 그 결정 뒤의 것.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려는 준비.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의 눈.

"그리고 시아―"

그가 한 손을 더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차갑고도 뜨거운 손으로.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쓸어내렸다.

"당신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내가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거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칸이 시아의 팔을 잡아 안았다.

"폐하, 이 상황에서는―"

"가져라!"

카이로스의 음성이 방 전체를 울렸다. 음파가 유리잔들을 흔들었다. 시아는 저항했지만, 몸이 이미 움직여지고 있었다. 칸이 그녀를 침실의 다른 쪽으로 끌어가고 있었고, 기사들이 길을 만들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시아가 목을 놓아 소리쳤다. 카이로스를 바라보려고 발버둥쳤다. 그의 검은 망토가 창문에 비쳐 있었다. 연기 속에서 외로워 보였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할 것처럼.

"폐하! 나를 놔줘요! 나는 도와야 해! 난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침실 안쪽의 숨겨진 문이 열렸다. 검은 입구가 나타났다. 지하로 이어질 통로. 시아는 더욱 저항했다. 손톱이 칸의 갑옷을 할퀴었지만, 근위사령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시아는 카이로스를 봤다.

그는 창문 앞에 다시 서 있었다. 보라색 눈이 아직도 살아 있었고, 그의 양손이 허공을 향해 무언가를 모으고 있었다. 마법의 형태. 그것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

"폐하!"

시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하 문이 닫혔다. 칸과 기사들, 그리고 시아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시아는 윗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전투의 시작. 검이 부딪히는 소리. 사람의 외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카이로스의 마법이 방출될 때의 그 울음소리.

지하 통로의 어둠 속에서, 시아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 사이에 뭔가 묻어 있었다. 형광색을 띤, 검은색의 가루 같은 것. 그것을 본 칸이 숨을 죽였다.

"이건―"

"마법의 흔적입니다."

뒤에서 기사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 기사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폐하는... 우리에게 황후를 데려가라고 했지만..."

그 문장의 끝을 마무리한 것은 칸이 아니었다.

"황태자께서는 우리에게 황후를 잡아와 보이라고 했어요."

단검이 반짝였다. 칸의 옆구리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