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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4화: 엇갈린 시선 속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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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새벽은 어둠과 빛이 뒤섞인 모호한 경계에 있었다. 어젯밤, 정원에서 보았던 그 그림자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낯익은 체격, 날렵한 움직임. 설마 카엘이었을까? 그가 벌써 황궁에 발을 들였다면, 내가 아는 과거와는 너무 달랐다. 이전 생에서 카엘은 이 시기에는 아직 북부 변경에 머물며 변방의 작은 영주에 불과했다. 황궁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내가 16살이 되던 해, 북부 반란이 본격화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14살의 나이에 그가….

내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것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었다. 이미 과거는 뒤틀리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변수가 있었던 걸까?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는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미래의 기억이다. 그 기억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집중해야 했다.

릴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는 이미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은 황비 마마와 함께 식사를 하신다고 하셨지요? 어떤 드레스를 준비해 드릴까요?”

릴리의 목소리는 평화로웠지만, 내 안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릴리, 최근 황궁에 특별한 손님이 왔니? 아니면 중요한 인사가 미리 입궁한 일은 없었고?”

내 질문에 릴리가 잠시 눈을 깜빡였다.

“특별한 손님이라… 황궁은 늘 바쁘게 돌아가니 제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지난밤에 북부에서 온 전령이 있었던 것은 들었습니다. 황태자 전하께 급한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하더군요.”

북부 전령. 그것뿐인가? 카엘은 전령이 아니다.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오늘 입을 드레스는… 짙은 푸른색으로 준비해 줘.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것으로.”

릴리는 내 말에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짙은 푸른색은 냉정하고 강인한 인상을 주기에 좋았다. 아직 어린 나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나를 드러내야 할 때였다. 이전의 나는 너무 순진했고, 너무 감성적이었다. 이번 생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서궁으로 향하는 길, 내 발걸음은 어제보다 더 신중했다. 황비 마마는 이미 식탁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아침 식사는 언제나 소박하면서도 우아했다. 신선한 과일과 가벼운 수프, 그리고 향긋한 차. 나는 그녀 맞은편에 앉아 인사를 건넸다.

“마마, 좋은 아침입니다.”

황비 마마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레나. 오늘도 일찍 일어났구나. 어젯밤에는 잘 잤니? 혹시 정원에서 이상한 소리라도 듣지는 않았니?”

그녀의 질문에 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정원에서의 그림자. 그녀는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떠보는 걸까? 나는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별다른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마마. 밤새 편안히 잠들었습니다.”

황비 마마의 시선이 잠시 내 얼굴에 머물렀다. 그녀는 내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는지, 이내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구나. 궁정은 밤에도 늘 조용해야 하는 법인데 말이다. 레나, 네 생일 연회 초대 명단을 내가 어제부터 계속 살피고 있었단다. 네가 원하는 대로 간소하게 준비하려 했지만, 황녀의 생일은 제국의 경사이니 마냥 소홀히 할 수는 없더구나.”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둔 듯한 초대 명단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로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명단을 받아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익숙한 귀족 가문의 이름들 사이에서, 나는 한 이름을 발견했다.

‘카엘 드 로안.’

역시. 그의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앞쪽에, 주요 인사들과 함께 적혀 있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감추고 명단을 내려놓았다.

“마마께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 명단은 마마의 뜻대로 진행해 주십시오.”

황비 마마가 내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런데 레나, 네가 지난번에 로안 가문의 카엘 경을 언급해서 말인데… 그는 생각보다 젊지만, 최근 북부 변경에서의 활약이 대단하더구나. 황태자 전하께서도 그를 눈여겨보고 계시는 듯해. 어쩌면 이번 연회에서 그를 불러 정식으로 황궁의 임무를 맡길지도 모르겠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은근한 자랑스러움과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자신이 카엘을 발탁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녀의 미소 뒤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녀는 카엘과 어떤 관계일까? 그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걸까?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마마께서는 카엘 경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젊은 나이에 그런 활약을 보여주었다니 대단하네요.”

황비 마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흥미로운 젊은이다. 야심이 강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듯해. 황실에 충성심도 깊다고 하니, 제국을 위해 크게 쓰일 인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심이 강하다는 것,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 황실에 충성심이 깊다는 것. 모두 카엘을 설명하는 말이었지만, 이전 생에서의 그의 최종 목적이 제국의 심장을 찢는 것이었기에, 그녀의 평가는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식사를 마친 후, 황비 마마는 내게 황궁 내의 중요한 문서들을 정리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명목은 황녀로서 실무를 배우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감시하고, 어쩌면 나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순순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중요한 문서들을 살피는 과정에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고, 동시에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 오후, 나는 황비 마마의 서재에서 그녀가 건넨 문서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주로 귀족 가문의 정보와 영지 현황, 그리고 제국의 재정 상황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나는 한 단어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그때였다. 서재 문이 노크도 없이 스르륵 열렸다.

“황비 마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익숙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고개를 들자, 문가에 서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어젯밤 정원에서 보았던 바로 그 실루엣. 카엘 드 로안이었다.

그는 짙은 남색 제복을 입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은색 검이 매달려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냉정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내 눈과 그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적과 함께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그는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아주 미세하게 눈썹을 찡그렸다. 마치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예상 밖이라는 듯이. 그리고는 이내 황비 마마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마마, 북부 국경 방위에 관한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황비 마마는 그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오, 카엘 경. 벌써 오셨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황녀 전하께서는 지금 제 실무를 돕고 계셨답니다.”

그녀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나를 가리켰다. 카엘은 황비 마마의 말에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묘한 호기심과 함께 어렴풋한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전 생에서 내 심장을 꿰뚫었던 그 칼날을 휘두른 남자. 그에 대한 증오가 내 안에서 끓어올랐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눌러 담았다.

카엘은 황비 마마에게 북부의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작은 반란의 조짐이 보이며, 일부 귀족들이 이에 동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보고는 간결하고 정확했으며,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모든 말이 비수처럼 들렸다. 그가 바로 그 반란을 이용해 황궁에 입성하고, 결국 제국을 파괴할 인물이 아니었던가.

보고를 마친 카엘은 황비 마마에게 질문했다.

“마마, 이 사안에 대해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요? 그리고 황녀 전하께서는…”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왜 그가 나에게 의견을 묻는 거지? 이전 생에서는 내가 어리고 정치에 무관심했기에 그는 나를 철저히 무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의 눈빛 속에는 나를 시험하려는 듯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황비 마마는 그의 질문에 대신 대답했다.

“레나는 아직 어린아이다.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논하기엔 경험이 부족하지.”

하지만 카엘은 황비 마마의 말을 끊으며 내게 물었다.

“황녀 전하께서는 제국의 미래를 책임지실 분입니다. 저는 황녀 전하의 현명함이 이미 어른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이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의 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 속에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음을 알았다. 그는 나를 떠보고 있었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는 침착하게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카엘 경의 보고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북부의 반란은 단순한 귀족들의 동요를 넘어, 더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음모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내 말에 카엘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의 눈빛 속에서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황비 마마 또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서재 안의 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내가 너무 나간 걸까?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카엘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낮고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녀 전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너머의 진실을 파헤쳐야 할 때입니다.”

그의 대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는 내 의견에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조했다. 심지어 그의 눈빛에는 나를 향한 이해와 존경 같은 감정까지 엿보이는 듯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것이 그의 새로운 가면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황비 마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두 분 모두 깊이 생각하는군요. 과연 젊은 황녀와 촉망받는 기사의 대화로군요. 좋아요, 그럼 카엘 경. 이 문제는 황태자 전하와 의논하는 것이 좋겠소. 레나, 너는 계속 서류 정리를 도와주렴.”

카엘은 내게 짧게 고개를 숙이더니 서재를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복잡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태도는 이전 생의 그와 너무 달랐다. 나를 죽였던 그 차가운 살의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나를 이해하는 듯 보였고, 나의 발언에 동조했다. 왜 그는 내 편에 서려는 걸까? 아니, 정말로 내 편인 걸까? 아니면 이것이 더욱 교묘한 함정일까?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카엘의 등장과 그의 예상치 못한 반응은 내 모든 계획을 뒤흔들고 있었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내 손이 잠시 멈췄다. 그의 등 뒤에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쳤을 때, 내가 마주하게 될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서류 더미 위로 손을 얹으며, 다음 만남에서는 반드시 그의 가면을 벗겨낼 것이라 다짐했다. 이 새로운 게임에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레나가 아니었다. 혼란 속에서도 나는 나의 길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