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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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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 마마의 서재를 나서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카엘 드 로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나를 죽인 반역자다. 내 제국을 찢어발긴, 차갑고 잔혹한 남자.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나를 향한 경멸과 무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오늘 내게 동조했을까? 왜 나를 시험하려는 듯한 질문을 던졌고, 내 대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걸까? 그리고 그 이해와 존경 같은 감정은 또 무엇이었을까?

방으로 돌아온 나는 망연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이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황궁을 덮기 시작했다. 내 계획은 카엘을 철저히 경계하고, 그가 황궁에 발을 들이기 전에 그의 모든 음모를 파헤쳐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황궁에 들어와 있었고, 심지어 황비 마마와 황태자 오라버니 모두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는 듯했다. 더욱이 그는 내게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아는 과거와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의 새로운 전략인가?’

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는 교활한 남자다. 이전 생에서는 나를 완벽하게 속여 넘겼다. 그의 모든 행동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어쩌면 오늘 그의 행동 또한 나를 흔들기 위한, 혹은 나를 이용하기 위한 정교한 수작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가면을 벗겨내야 한다. 그가 가진 진짜 의도를 알아내야 한다.

릴리가 따뜻한 물을 준비해 방으로 들어왔다.

“전하, 피곤하시지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시면 한결 나아지실 겁니다.”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잠시 평온을 되찾았다. 릴리는 이전 생에서 내가 죽는 순간까지 내 곁을 지켰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나는 물속에 몸을 담그며 릴리에게 물었다.

“릴리, 최근 궁정 내에서 카엘 드 로안 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것 같니?”

릴리는 수건으로 내 머리를 말려주며 대답했다.

“네, 전하. 최근 북부 반란의 소식이 들려오면서, 로안 가문의 카엘 경에 대한 소문이 파다합니다. 젊은 나이에 비범한 재능을 가졌다고들 하더군요. 황태자 전하께서도 그를 크게 신뢰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황태자 오라버니의 신뢰. 그것이 문제였다. 이전 생에서도 오라버니는 카엘을 믿었고, 결국 그 신뢰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이번 생에서는 그를 지켜야 한다.

“그럼, 카엘 경이 황궁에 머무는 동안, 혹시 황비 마마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니? 마마께서 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구나.”

내 질문에 릴리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것은… 제가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전하. 다만, 황비 마마께서 카엘 경을 매우 아끼신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며 자주 칭찬하시고, 황궁의 여러 중요한 사안을 그에게 맡기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황비 마마의 신뢰, 그리고 그녀가 카엘을 이용하려는 움직임.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황비 마마는 이전 생에서도 카엘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결국 성공했다. 나는 그녀가 이번에도 그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할 것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카엘은 황궁 깊숙이 파고들겠지.

다음 날 아침, 황비 마마는 내게 새로운 임무를 주었다. 북부 반란과 관련된 귀족 가문들의 동향을 조사하고, 그들의 과거 행적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황녀로서 제국 실무를 익히게 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뒤에 숨겨진 황비 마마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감시하고, 동시에 카엘과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나는 며칠 동안 황궁 서고에 파묻혀 지냈다. 수많은 문서와 오래된 기록들을 뒤지며 북부 귀족 가문들의 역사를 훑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북부의 한 작은 영주 가문이 과거 로안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었고, 그들은 로안 가문의 충성심을 맹목적으로 따랐다는 기록이었다. 이 작은 단서가 어쩌면 카엘의 배신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사흘 후, 나는 황태자 오라버니로부터 긴급한 호출을 받았다. 동궁의 서재로 향하자, 오라버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카엘 드 로안도 함께 있었다. 그는 짙은 녹색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눈빛은 어제보다 더욱 날카롭고 단단해 보였다.

“레나, 와주어서 고맙다. 북부 반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이제는 단순히 동요를 넘어 조직적인 반역으로 발전할 조짐이 보인다.”

오라버니의 목소리에는 깊은 걱정이 묻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엘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침묵하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라버니.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무력을 동원하실 건가요?”

황태자는 한숨을 쉬었다.

“섣불리 무력을 동원했다가는 오히려 제국의 내분이 심화될 수 있어. 반란 세력의 우두머리를 파악하고, 그들의 명분을 무너뜨리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카엘 경과 함께 전략을 논의 중이었다.”

그는 카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엘 경,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카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북부의 반란은 단순한 불만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뿌리내린 불온한 세력이 제국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배후를 밝혀내고,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고,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전 생에서 그가 황궁에 들어올 때 내세웠던 명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역시, 그는 이번에도 이 반란을 이용하려는군.’

그 순간, 카엘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꿰뚫어 보려는 듯 깊었다.

“황녀 전하께서는 이 사안에 대해 특별히 염두에 두신 것이 있으신지요? 황궁 서고에서 북부 관련 문서를 검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그의 눈빛. 나는 그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는 내가 조사한 것을 알고 있었다. 황비 마마가 그에게 알려준 것일까? 아니면 그 스스로 내 동향을 살피고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그는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엘 경의 말씀대로, 북부 반란은 단순한 불만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서고에서 발견한 바로는, 북부 일부 영주들이 오랜 시간 특정 가문과 깊은 유착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그 관계는 제국에 대한 충성심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 말에 황태자 오라버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카엘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흥미와 함께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어떤 가문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황녀 전하?”

카엘의 목소리는 낮고 무게감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황태자 오라버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오라버니. 하지만 제가 추적하고 있는 몇몇 가문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로안 가문과 오래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내 입에서 ‘로안 가문’이라는 말이 나오자, 카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굳건했던 표정에서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미세한 동요를 포착했다.

황태자 오라버니는 내 말에 놀란 듯 카엘을 바라보았다.

“카엘 경, 레나가 말하는 가문들이 혹시 자네 가문과 연관이 있는가?”

카엘은 자세를 고쳐 잡고 오라버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하, 로안 가문은 오랜 시간 북부 변경을 지켜왔기에, 많은 북부 귀족들과 교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에 대한 충성심은 단 한 번도 의심받은 적이 없습니다. 황녀 전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저 또한 그 가문들을 파헤쳐 배신자를 색출할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완벽했다.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며,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자세. 그는 너무나 능숙하게 상황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의 교활함에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황태자 오라버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카엘 경. 자네의 충성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레나가 찾아낸 단서와 자네의 능력이 합쳐진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오라버니의 말에 놀라 카엘을 바라보았다. 함께? 그와 함께 일을 처리하라니? 내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다. 카엘 또한 잠시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그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 이전 생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제안이었다.

“오라버니…!”

내가 반대하려 하자, 카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의 명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황녀 전하와 함께 제국의 위협을 막아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기회를 잡았다. 나와 함께함으로써 내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동시에 황실의 신임을 더욱 확고히 할 작정일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테지만, 동시에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감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황태자 오라버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역시 두 사람이라면 능히 해낼 것이라 믿는다. 카엘 경, 레나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게.”

서재를 나오며 나는 카엘과 나란히 걸었다. 그의 옆에서 나는 그의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그는 나를 스쳐 지나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황녀 전하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다음에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는 나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를 떠보는 것일까? 그의 말 뒤에 숨겨진 진의가 무엇이든, 나는 그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복수의 칼날이 점차 예리해지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나는 그를 파헤칠 것이다. 이 위험한 게임의 시작점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함께 묘한 설렘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