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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제19화: 검은 맥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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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삼킨 것이다. 자신의 안에... 가둔 것이야."

발레리우스의 절망적인 속삭임은 숲의 정적을 가르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하르는 미친 듯이 루아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울부짖는 본능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안 돼! 당장 벗어, 루아! 그걸 네 몸에서 떼어내야 해!"

그는 거의 기다시피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펜던트의 검게 물든 부분에 닿는 순간,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그의 신경을 태웠다. 단순한 차가움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온기를 증오하고 빨아들이는, 순수한 허무의 냉기였다.

"큭!"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다. 그의 손바닥에는 검은 동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기분 나쁜 자국이 새겨졌다. 펜던트는 이제 더 이상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갇힌 공허가 펜던트의 주인이 되어, 외부의 모든 접촉을 거부하고 있었다.

"왕자님, 손이...!"

루아는 그의 손을 보고 경악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펜던트를 잡아 뜯으려 했다. 쇠사슬을 끊어내려는 듯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펜던트는 그녀의 피부에라도 달라붙은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왜... 왜 안 되는 거지! 제기랄!"

자하르의 어깨가 절망감에 무너져 내렸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차올랐다. 자신이 저지른 죗값이, 자신이 받아야 할 형벌이, 왜 그녀에게로 향하는가. 심장을 통째로 도려내는 것 같은 무력감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꼴사납군. 결국 네놈의 저주는 주변의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것뿐인가."

카엘이 경멸 어린 목소리로 뱉어냈다. 그는 한심하다는 듯 자하르를 내려다보며 워해머를 고쳐 쥐었다.

"그 펜던트는 이제 저주 그 자체다. 저 계집의 심장에서 독을 퍼뜨리기 전에, 목을 쳐서라도 떼어내야만 해!"

그의 살기 어린 말에, 무너져 있던 자하르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상처 입은 맹수처럼 몸을 돌려 루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직 마력이 회복되지 않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의 등은 결코 굽혀지지 않았다.

"네놈의 더러운 손을... 그녀에게 갖다 대기만 해봐라. 내 이빨로 네놈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릴 테니."

"하! 용의 힘도 제대로 못 쓰는 주제에, 아직도 입만 살았군!"

일촉즉발의 상황. 카엘이 워해머를 들어 올린 바로 그 순간, 육중한 강철 소리와 함께 그의 무기가 튕겨 나갔다. 발레리우스가 자신의 건틀릿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이성을 찾게, 카엘!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비켜, 발레리우스! 저 계집이 살아있는 한, 왕자 전하께서는 영원히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이다!"

"자네 눈에는 저것이 단순한 저주로만 보이나!"

발레리우스의 일갈이 숲을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카엘의 분노를 압도하는 깊은 위엄과... 그리고 공포가 서려 있었다.

"저것은 '공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려는 태초의 의지라고! 저 펜던트는 지금, 위태로운 균형 위에서 그 공허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펜던트의 신성력과 공허의 마력이 서로를 집어삼키려 들고 있어! 만약 지금 우리가 섣불리 저 펜던트를 파괴하거나, 저 아가씨의 심장이 멎기라도 한다면...!"

발레리우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펜던트의 검은 점이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불길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저 위태로운 감옥이 부서지는 날, 해방된 공허는 가장 먼저 이 주변 일대를, 그리고 마침내는 이 세상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

싸늘했다.
심장 바로 위, 쇄골 아래에서부터 기분 나쁜 냉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라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감각. 루아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감싸 쥐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지켜주었던 따스한 성물은, 이제 그녀의 생명력을 좀먹는 차가운 기생충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세 남자를 보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자하르.
자신을 죽여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노에 찬 카엘.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의 무게에 짓눌려 고뇌하는 늙은 용, 발레리우스.

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의 사랑이, 그를 구하려 했던 간절함이, 결국 모두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왔다.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제가... 직접 해보겠습니다."

루아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하르의 어깨를 가만히 붙잡고, 그를 옆으로 비켜서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두 용족 수호자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 펜던트는 제 것입니다. 제 의지로 떼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눈을 감고, 모든 정신을 목에 걸린 펜던트에 집중했다. 마음속으로 '떨어져, 제발 떨어져'라고 수없이 외쳤다. 하지만 펜던트는 그녀의 의지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오히려 목을 조르는 쇠사슬처럼, 더 깊숙이 그녀의 존재에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피부와 영혼이 하나로 엮여, 분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확신이 들었다.

"역시... 안되는군."

발레리우스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펜던트는 공허를 봉인하기 위해, 아가씨의 생명력과 영혼을 '자물쇠'로 삼은 것이다. 아가씨가 살아있는 한, 봉인은 유지되겠지만... 동시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떼어낼 수 없게 되었어. 아가씨는 이제... 걸어 다니는 재앙의 감옥이 된 셈이야."

그의 잔인한 진단에 카엘조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복잡한 눈으로, 작은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을 짊어지게 된 인간 여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방법이... 정말 없는 겁니까?"

자하르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함이 묻어 나왔다.

"이졸데 님께 돌아가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발레리우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분께서는 왕자 전하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저 아가씨의 심장을 도려내 펜던트만 분리하려 드실 분이야. 설령 그 과정에서 봉인이 깨져 세상의 절반이 사라진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겠지."

그 말은 이졸데라는 존재가 얼마나 냉혹하고 무자비한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용족의 땅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이었다. 모두가 절망적인 해결책만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발레리우스가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잊혀진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용족의 정치와 왕가의 다툼,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유일한 존재. 태초의 마법과 고대의 지식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자."

"누... 누군데?"

"혹한의 어금니 산맥 가장 깊은 곳, 만년설이 녹지 않는 빙하의 심장에 산다고 알려진... '백색의 마녀'."

백색의 마녀. 그 이름이 나오자, 거칠 것 없던 카엘의 얼굴에조차 미세한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용족에게조차 그 이름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용의 왕이 세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다고 전해지는 신화 속의 존재. 그녀가 실존하는지조차 의심받는, 그런 이름이었다.

"그녀라면... 공허를 봉인한 태초의 계약을 이해하고, 아가씨의 영혼을 훼손하지 않고 펜던트를 분리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만이 유일한 희망이야."

***

결정은 순식간에 내려졌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 리안이라는 미지의 위협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몰랐고, 펜던트의 검은 맥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저주받은 용의 왕자와, 그 저주를 대신 품게 된 인간 사냥꾼,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는 동시에 이끌어야 하는 두 명의 용족 수호자.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백색의 마녀'라는 단 하나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위태로운 여정이었다.

발레리우스가 앞장서서 길을 이끌었고, 카엘은 보이지 않는 위협을 경계하며 맨 뒤를 맡았다. 자하르와 루아는 그들 사이에 갇힌 죄수처럼 나란히 걸었다.

자하르는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반쯤은 루아에게 기대어 걸었다. 하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그녀의 목에 걸린 펜던트에 쏠려 있었다.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심장에서 퍼져 나와, 그녀의 체온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자하르는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파랗게 질려가고 있다는 것을.

"미안하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그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내가 너를..."

"왕자님 탓이 아니에요."

루아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그를 부축한 팔에 힘을 주며, 오히려 그를 위로하려 애썼다.

"이건 제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후회하지 않아요. 왕자님이 돌아왔잖아요. 그걸로 됐어요."

그녀의 담담한 위로가,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그의 심장을 헤집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자신보다 그를 먼저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그 숭고한 마음이 자신을 구원했고, 동시에 그녀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이 끔찍한 모순을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숲의 경계에 다다라, 희미한 달빛이 비치는 평원으로 나왔을 때였다. 루아가 순간 휘청이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자하르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요. 그냥... 잠시 현기증이..."

루아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단순한 현기증이 아니었다. 방금, 아주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전혀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춥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감정의 파편이었다.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와, 모든 것을 갈망하는 텅 빈 굶주림. 그녀 자신의 생각이 아닌, 펜던트 안에 갇힌 '공허'가 그녀의 의식에 흘려보낸 첫 번째 속삭임이었다.

루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헛것을 들은 것이라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 바로 위에서, 펜던트의 검은 맥박이 이전보다 한층 더 강하게 뛰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공포를 양분 삼아, 더욱 기뻐하며 날뛰는 것처럼.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자하르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절박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다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맹세하듯 속삭였다.

"내가... 반드시 너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설령 내 안에 남은 마지막 빛 한 조각마저 전부 태워버리는 한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