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16화. 슬픔의 미각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공기가 무거웠다. 숲의 냄새가 모두 응축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가느다란 빛마저 생기를 잃고 흐릿해졌다. 그들은 먹구름처럼 어둡게 내려앉은 공기로 인해 천천히 가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그곳인가?" 마틴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그곳은 어느 정도의 음침함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가 말을 마칠 때마다 적막한 어둠이 깊어지는 듯했다.

유진은 조용히 땅바닥을 밟으며 공간을 살폈다. 그녀의 신경이 온몸에 퍼져 기민하게 감각을 쫓았다. 요리로 기억을 되살리는 여정의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녀는 그저 떨리는 손끝으로 다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발 뒤꿈치가 대지에 붙어 있는 한,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리라.

"맞는지 모르겠어." 유진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위태로운 빗소리에 묻혀갔다. 속삭이는 듯,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사라는 그녀의 옆에서 몸을 낮추며 바닥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가 맞다고 느껴져." 사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에게도 무언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멀리서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미지의 경계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니는 남은 힘을 한데 모으며 조용히 물었다. "이 지구본에 답이 있다는 거지?"

가죽 파티로 덮인 그의 주머니에서 빛바랜 지구본이 손에 들려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그에게로 스쳐 지나가면서 이따금 불빛은 흐트러 떨어졌다.

"맞아." 유진이 간단히 대답했다. 그들은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지구본의 경계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녀는 그저 무언가 오를 듯한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람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목덜미를 가로질렀다. 사방에서 찾아드는 소리, 그리고 냉기가 스며들어 어렴풋한 시야를 덮기 시작했다. 긴 숨을 고르며 모두가 순간적으로 주변의 흐름을 멈춰 바라보았다. 그 순간, 모든 살아있던 것들은 전부 그 자리에 가라앉아 있었다.

"여기서 어떤 요리를 해낼 수 있을까?" 사라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그 말은 그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것들이 담긴 채, 스쳐가는 바람의 찬란함과 함께 조용히 사라진다.

유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떠올리듯 미향을 머금은 추억들을 안에 담았다. 그동안의 요리를 추억하며,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를 탐색하는 일은 그녀에게 있어서 적지 않게 두려운 일이었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유진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말끝에 남겨진 여백이 그녀의 시선을 절로 멀어지게 했다.

마틴은 그녀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주었다. 그 손길은 온기를 전해 주려는 따스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피하지 않을 거라 약속하듯, 그들은 다시금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땅이 훅 꺼지며 발끝이 불안하게 떨렸다. 그 이상하고 불길한 느낌은 그들이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의심스러웠다.

"무슨 일이야?" 대니가 즉각 물었다. 이내 어디선가 거칠고 날카로운 충격이 몰려와 뒤흔들렸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모양새는 남대서양 너머 저 편에서 왔다고만 할 수 있을 만큼이나 생소한 모습이었다. 그 일렁임은 단순히 지구본에서 흘러나온 금선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유진이 속삭이며 눈을 크게 뜨고 그 밀려드는 실체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웅장한 소리가 공간을 진동시켰다. '기억의 세계'를 열듯 조심스럽게 확인해가야 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마틴이 유진의 손을 쥐어잡아 꾹 눌렀다. 그의 안에서 전해지는 손의 떨림은 그들 내면에도 어지러움을 감돌게 했다. 그들은 함께 그 공간을 넘어 새로운 것을 향할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몰려오는 슬픔의 미각이 그 안에 녹아든 진실과 세심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다시 걸어온 세상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을 바랐다.

"보자. 이건 답이 아니야. 더 찾을 게 남아 있어." 유진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때, 다시금 전체 공간이 일렁이며 경계를 넘어 다가오는 또 다른 파동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펼쳐질 것은 여전히 미궁 속에 숨어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했다.

풀어야 할 실마리는 계속해서 그들의 발치에 깃드는 듯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행운이 되어줄지, 아니면 더 큰 도전이 될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을 때.

그들과 함께 바람은 불어왔고, 짙은 어둠 속에서 낯선 감각이 그들 사이에 자욱하게 엔진을 다루듯 솟구쳤다. 바로 그 순간, 그들 사이에 스쳐 지나가던 진실이 밝혀질 찰나까지 더 많은 수수께끼와 마주할 각오를 다짐했다.

그리고, 그들 곁에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나면서 한껏 당겨진 팽팽한 실타래 속에 남아 있다.

차가운 방울이 점점 더 크게 심연 속으로 떨어질 때, 그들의 발걸음은 다시 한 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미지의 경계를 넘을 준비를 하려던 찰나, 그들의 시선을 마주한 그 인물은 똑같이 드러난다.

안개 너머로 스미는 그녀의 눈빛이 붉게 타올랐다. 아직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의문의 단서가 그곳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미각의 끝에, 그들이 잠시 머물렀던 어둠 속에서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깨닫기 전까지. 그리고, 어딘가에 그와 같고도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