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16화. 제16화: 거짓된 구원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선택지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파멸이냐, 소멸이냐. 그 잔인한 저울질 앞에서 루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가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겨울 숲의 마른 나뭇가지처럼 건조하고 단단했다. 하지만 단검을 쥔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한, 가장 위험한 도박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리안의 입가에 걸려 있던 희미한 미소가 만족스러운 곡선을 그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제 뜻대로 장난감을 손에 넣은 것 같은, 순수하기에 더욱 잔인한 표정이었다.

"현명하군, 엘라라의 아이. 사랑은 언제나 죽음보다 강한 법이지. 비록 그 끝이 더 끔찍한 지옥일지라도."

그는 더 이상 손을 내밀고 있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대답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숲의 더 깊은 곳을 가리켰다.

"따라와라. 너의 왕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안내해주지. 물리적인 거리는 무의미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현실과 그의 정신 세계, 그 경계가 가장 얇게 마모된 균열의 틈이다."

리안의 발걸음은 소리가 없었다. 그는 낙엽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둠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루아는 그 기이한 움직임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어떻게... 제가 그의 정신 속으로 들어갈 수 있죠?"

"너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리안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변의 고요한 공기에 스며들 듯 낮게 울렸다.

"너의 핏줄, 그리고 네가 지닌 그 펜던트. 그것은 단순한 증표가 아니야. 태초에 맺어진 용과 인간의 영혼의 계약, 그 자체를 상징하는 열쇠지. 너의 강한 의지가 그를 향할 때, 그 계약이 시공간을 넘어 두 영혼을 잇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그들이 다다른 곳은 숲속의 작은 공터였다. 하지만 평범한 장소는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기묘하게 뒤틀려 있는 듯, 달빛이 땅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해 있었다.

공터의 중앙에는,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검게 그을린 채 쓰러진 거대한 고목이 있었다. 그 주위로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현실의 풍경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기 누워 있군. 너의 가엾은 용이."

리안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루아는 숨을 헙, 들이마셨다. 쓰러진 고목의 뿌리께에 자하르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극심한 고통으로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식은땀이 그의 이마와 관자놀이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곳에 누워있으면서, 동시에 이곳에 없는 자였다.

"가서, 그의 손을 잡아라. 그리고 네 목의 펜던트를 쥔 채, 오직 그만을 생각해. 구하고 싶다는 너의 간절한 사랑이, 잠긴 문을 여는 열쇠가 될 테니."

리안의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했다. 루아는 그를 한번 쏘아본 뒤, 망설임 없이 자하르에게 다가갔다.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목의 초승달 펜던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왕자님...’

그녀는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오직 손끝에서 전해지는 그의 희미한 존재감과, 그를 구하고 싶다는 단 하나의 생각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돌아와요. 제발...’

그 순간, 손안의 펜던트가 희미한 온기를 발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아득해지며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

『네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는 가장 끔찍한 저주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형상을 한 거대한 용의 입에서 울려 퍼지며 정신을 꿰뚫었다. 자하르는 무릎 꿇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자신이 루아를 해하는 끔찍한 환영이 눈꺼풀을 닫아도 사라지지 않고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항할 의지조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랑이, 그녀를 향한 이 마음 자체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독이라면, 차라리 이대로 어둠 속에서 소멸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걸 깨달았다니 다행이군.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라. 그 무의미한 저항을 멈추고, 너의 본질을 받아들여. 우리는 하나가 되어 완벽한 고독 속에서 영원히 잠들 것이다.』

환영 속의 용이 만족스러운 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천천히 자하르에게 다가와, 그의 남은 인간성을 집어삼키려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의식의 끈이 탁,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며, 영혼이 차가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자하르."

어디선가, 아주 희미하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인가. 이미 미쳐버린 것인가. 자하르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왕자님, 정신 차려요!"

이번에는 더 또렷했다. 환청이 아니었다. 이 칠흑 같은 절망의 공간, 자신의 정신 세계 가장 깊은 곳에, 한 줄기 빛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둠 저편에서, 루아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있지도, 그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 얼굴로, 똑바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방해꾼이군.』

용의 형상을 한 자하르가 불쾌한 듯 그녀를 향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루아는 그 거대한 환영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무릎 꿇은 채 절망에 빠진, 인간의 형상을 한 자하르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여기 있었군요."

루아는 그의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그와 눈을 맞추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그의 공허한 푸른 눈동자를 정면으로 담아냈다.

"일어나요.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안 돼요."

"...어째서... 어째서 여기에..."

자하르의 입술이 간신히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쉬어 있었다.

"너는 나를 두려워해야 한다. 나는... 너를 해칠 괴물이다."

"아니요."

루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의 차가운 뺨을 감쌌다. 따뜻한 온기가 피부를 통해 영혼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왕자님은 괴물이 아니에요. 제가 알아요. 왕자님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죠.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 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쐐기가 되어, 그를 옭아매고 있던 절망의 사슬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혼자 싸우려 하지 마세요. 저주가 운명이라면, 그깟 운명, 우리가 함께 바꾸면 돼요. 왕자님이 폭주하려 하면 제가 붙잡아줄게요. 왕자님이 어둠에 잠식되면, 제가 빛이 되어서 길을 비출게요. 그러니까... 제발 포기하지 마세요."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뜨거운 감각에 자하르의 몸이 움찔 떨렸다. 텅 비어 있던 그의 푸른 눈동자에, 아주 희미하게 생명의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온기,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흔들림 없는 믿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붙잡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어리석은 계집! 네놈의 그 같잖은 동정이 그를 파멸시킬 것이다!』

분노한 용이 포효하며 거대한 발톱을 휘둘러 그녀를 찢어버리려 했다.

"사라져."

자하르가 낮게 읊조렸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루아의 손을 잡은 채였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 안에는 루아를 지키겠다는, 강철 같은 의지가 서려 있었다.

"내게서, 그리고 그녀에게서 사라져라. 너는 내가 아니다."

자하르가 손을 내젓자, 그를 위협하던 거대한 용의 환영이 비명과 함께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칠흑 같던 공간이 무너져 내리고, 사방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절망의 감옥이 부서지고 있었다.

"루아..."

그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자신을 구원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의 정신 세계에 리안의 나른한 목소리가 박수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아, 아름답구나. 절망을 이겨낸 그 순수한 희망의 빛이란. 이토록 눈부신 광경은 실로 오랜만이군."

루아는 불길한 예감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리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고맙다, 엘라라의 아이. 네 덕분에 마지막 준비가 끝났어."

"무슨... 무슨 소리지?"

자하르가 경계하며 물었다. 그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는 루아를 자신의 등 뒤로 감싸며 보호했다.

리안의 목소리에는 유쾌한 웃음기가 묻어 나왔다.

"진정한 어둠은 빛이 없을 때가 아니라, 가장 밝은 빛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태어나는 법이지. 너희는 절망을 이겨냈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너희는 그저 더 깊은 절망을 위한 가장 완벽한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냈을 뿐이야."

"헛소리 마라! 네놈의 수작은 끝났다!"

"끝? 하하하. 이제 시작이야, 가여운 용의 왕자여."

리안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그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네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던 저주. 그 저주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단순히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것? 아니. 그것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해. 진짜 저주는..."

리안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자하르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 안에서, 방금 전 사라졌던 용의 힘과는 전혀 다른, 차갑고도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대며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분노나 파괴 충동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려는, 순수한 공허와 허무의 힘이었다.

"네가 방금...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인 그 순간, 저주의 마지막 빗장이 네 손으로 직접 열렸으니."

리안의 마지막 속삭임과 함께, 자하르의 푸른 눈동자 깊은 곳에서부터 잉크가 번지듯 검은 기운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