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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12화: 늑대의 여동생, 뱀의 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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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도, 내 심장 소리도,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침묵의 파열음. 5년간 단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던 냉철한 가면 위로, 처음으로 선명한 균열이 번져나갔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더 이상 예리한 전략가의 것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의 목에 칼날이 닿았다는 소식을 들은, 한 마리 절망한 늑대의 것이었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고, 턱 근육은 강철처럼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가 쥔 주먹에서 뼈마디가 하얗게 튀어나왔다.

“……누구라고?”

그의 목소리는 쇳조각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거칠었다.

“이솔데 데 발레리우스.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이자, 북부 발레리우스의 영애. 놈들의 다음 목표입니다.”

엘리안은 감히 이안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젖은 땅바닥을 보며 보고를 마쳤다. 그의 손에 들린 양피지가 빗물에 젖어 눅눅하게 늘어졌다. ‘오늘 밤’이라는 단어가 끔찍한 사형 선고처럼 골목 안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장소는?”

질문은 내가 했다. 지금 이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나였다. 이안은 제 여동생이 얽힌 문제 앞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감정에 휩쓸린 늑대는 무모한 사냥을 할 뿐이다. 판을 짜고, 적의 목을 물어뜯는 것은 냉정한 자의 몫이었다.

“라발틴 공작 저택에서 열리는 가면무도회입니다. 황태자 전하를 비롯한 수도의 모든 거물들이 참석하는 자리죠.”

“경비는?”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진홍의 사자단과 황실 근위대가 저택의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일 겁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야말로 암살을 위한 최고의 무대가 되는 법이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황혼의 교단, 그 미친놈들은 지금 제국 전체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있었다. 황태자의 눈앞에서 그의 약혼녀를 죽이겠다니. 이것은 단순한 암살이 아니었다. 황실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제국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거대한 도발이었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이안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엘리안에게 물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이글거리는 분노가 담겨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다시금 냉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땅거미 상단의 정보 조각을 샀습니다. ‘오늘 밤, 북부의 흰 장미가 붉게 질 것이다’라는 암호였습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수도 귀족들 사이에서 이솔데 영애가 ‘북부의 흰 장미’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엘리안의 정보력은 언제나 신뢰할 만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가면무도회는 이미 시작되었을 터였다.

“가야 해.”

이안이 결심한 듯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저택 주변은 황실 기사들이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을 겁니다. 당신 얼굴은 이미 수배서에 올랐을 테고.”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쥐구멍으로 들어가면 될 일이지.”

나는 말을 끊고, 어둠 저편의 화려한 귀족가를 노려보았다. 라발틴 공작 저택의 찬란한 불빛이 밤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저 가증스러운 위선과 거짓의 향연 속에서, 또 하나의 비극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엘리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저택의 설계도, 그리고 가면무도회에 어울리는 가장 화려한 옷 두 벌. 30분 주지. 할 수 있겠나?”

내 명령에, 엘리안의 눈이 흔들렸다.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였다. 하지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5분이면 충분합니다, 대장.”

엘리안은 대답을 마치자마자 비에 젖은 어둠 속으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골목에는 다시 나와 이안, 단둘만이 남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에서 같은 결의를 읽을 수 있었다. 오늘 밤, 우리는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이 되어야만 했다.

***

엘리안이 마련한 임시 거처는 퀴퀴한 곰팡내와 눅눅한 공기로 가득 찬, 낡은 여관의 지하 창고였다. 그는 정말로 15분 만에 나타났다. 그의 한 손에는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다른 손에는 값비싼 비단과 보석으로 장식된 옷가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지쳐 보였지만, 그 눈은 여전히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설계도입니다. 과거 저택을 증축할 때 일했던 인부에게서 거금을 주고 샀습니다. 이쪽, 북쪽 탑의 하녀 전용 통로가 경비가 가장 허술합니다.”

엘리안이 촛불 아래 설계도를 펼치며 빠르게 설명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가져온 드레스를 혐오스럽게 바라보았다.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짙은 남색 실크 드레스. 가슴팍은 아슬아슬하게 파여 있었고, 등은 거의 드러나 있었다. 지난 5년간 갑옷과 가죽 옷 외에는 입어본 적 없는 내게, 이 얇고 거추장스러운 천 조각은 차라리 고문 도구처럼 느껴졌다.

“이딴 걸 입으라고?”

“가면무도회입니다. 눈에 띄지 않으려면, 오히려 가장 화려하게 보여야 합니다.”

엘리안의 말에 나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나는 등을 돌리고, 젖은 여행자 옷을 벗었다. 차가운 공기가 맨살에 닿는 감촉이 소름 끼쳤다. 드레스를 입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역이었다. 등 뒤의 복잡한 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낑낑거리고 있을 때였다.

“……제가 도와드리죠.”

등 뒤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안은 눈치 빠르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은 자존심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의 차가운 손가락이 내 등 위를 스칠 때, 나도 모르게 온몸이 굳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능숙한 솜씨로 복잡하게 얽힌 끈을 하나씩 제자리에 꿰어 묶었다. 피 냄새와 흙먼지에 익숙했던 내게, 그의 손끝에서 풍겨오는 희미한 비누 향기는 어색하고 이질적이었다.

“그 애는… 제 유일한 가족입니다.”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깊은 불안과 연약함이 섞여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제가 지켜야 할 유일한 빛이었죠. 언제나 밝고, 순수하고… 이 더러운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입니다. 만약 그 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뒷말이 무엇인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손길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위로나 동정의 말은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런 값싼 감정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가 끈을 다 묶자마자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채워진 단검집의 가죽끈을 단단히 고쳐 매주었다. 그는 놀란 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죽게 두지 않아.”

그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맹세이자, 거래였다. 그의 여동생을 구하는 것은 내 복수의 여정에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에서 같은 불꽃을 보았다. 모든 것을 잃은 자들이 품는, 지독하고도 절박한 불꽃이었다.

***

라발틴 공작 저택의 담벼락은 거대하고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엘리안이 찾아낸 하녀들의 통로는 낡고 비좁아, 순찰을 도는 기사들의 눈을 피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소리 없이 벽을 타고, 넝쿨로 뒤덮인 작은 창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잠입했다. 복도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우리는 하인의 복장을 훔쳐 입고, 가면을 쓴 채 연회장으로 향했다. 거대한 황금 문이 열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숨을 삼켰다. 수백 개의 샹들리에가 대리석 바닥을 대낮처럼 밝혔고, 제국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은 온갖 보석과 비단으로 치장한 채 춤을 추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값비싼 와인과 향수, 그리고 허영과 기만이 뒤섞인 냄새가 진동했다.

“이솔데를 찾아야 해.”

이안의 목소리가 가면 아래에서 낮게 울렸다. 그의 눈은 춤추는 인파 속에서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흩어져서 찾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저 발코니에서 신호를 보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인파 속으로 몸을 섞었다. 낯선 남자들이 내 허리에 손을 얹으며 춤을 청해왔지만, 나는 그들의 손을 차갑게 쳐내며 군중 사이를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내 눈은 춤추는 귀족들의 화려한 가면이 아닌, 그들의 허리춤에 감춰진 무기나 손에 든 술잔을 훑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잠재적인 적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회장의 가장 높은 단상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잔을 채워라! 오늘 밤, 내 약혼녀의 아름다움을 축복하기 위해!”

황태자 아서였다. 그는 진홍색 제복을 입고, 모든 이를 압도하는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눈처럼 흰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수줍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과 맑은 하늘을 담은 듯한 푸른 눈. 이안과 꼭 닮은,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분위기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솔데 데 발레리우스. 북부의 흰 장미.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위태로워 보였다. 수많은 늑대와 여우들이 득실거리는 이 연회장에서, 그녀는 마치 길 잃은 아기 사슴 같았다.

나는 이안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이미 단상 근처 기둥 뒤에 서서, 한시도 제 여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서의 축배 제안에, 시종들이 은쟁반에 샴페인 잔을 받쳐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저 순간이 위험했다. 수많은 잔이 오가는 혼란 속에서, 독이 든 잔 하나를 건네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내 모든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섰다. 이솔데에게 다가가는 모든 시종들의 손과 눈빛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쫓았다.

그때였다. 낯익은 인영 하나가 이솔데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우아한 자태, 값비싼 보라색 드레스, 그리고 자애로운 미소. 황실의 원로이자, 죽은 내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사람.

엘레노어 백작 부인이었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그녀가 왜 저기에?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시종이 들고 있던 쟁반에서 직접 잔 하나를 집어 이솔데에게 건넸다.

“이렇게 기쁜 날, 이 늙은 대모가 주는 축배를 받아주지 않겠니, 아가.”

이솔데는 활짝 웃으며 그녀가 건네는 잔을 받아 들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바로 옆에 서 있는 아서조차 이 상황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솔데의 대모이자, 황궁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로가 건네는 축배를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엘레노어 백작 부인의 소매 아래, 아주 잠깐 스치듯 보였던 문신을.

초승달을 물고 있는 뱀.

함정이었다. 놈들은 처음부터 시종 따위를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가장 의심받지 않을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용해 독을 건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에, 내 어머니를 배신했던 저 여자가 이토록 완벽하게 들어맞을 줄이야.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안도 저 멀리서 이 광경을 목격한 듯, 기둥 뒤에서 뛰쳐나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늦었다. 그가 단상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이솔데는 독이 든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찰나에 일어났다. 아서가 다른 귀족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고개를 돌린 사이, 엘레노어는 이솔데에게 눈짓했다. 이솔데는 고개를 끄덕이고, 잔을 높이 들어 모인 군중에게 화답했다.

안 돼.

나는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나는 반역자로 몰려 사자단에게 쫓기게 될 것이다. 이안과 나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이안의 여동생이 죽는다. 그의 유일한 빛이, 내 눈앞에서 꺼져버린다.

엘레노어의 입가에 뱀처럼 교활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군중 속에 서 있는 나와 마주친 것 같았다. 마치 이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조롱이라는 듯이.

이솔데가 축배를 들기 위해, 붉은 독이 담긴 잔을 입술로 가져가는 그 찰나. 나는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