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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혈맥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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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끝에서 나타난 남자의 목소리가 공기를 찢으며 울렸다. “민재 씨, 당신이 제 아들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네요.” 그 한마디에 민재의 손가락이 수아의 팔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수아의 몸이 순간 굳었고, 그녀의 숨소리가 민재의 귀에 닿았다.

민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쉰살쯤 되어 보이는 회색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녔다. 정장 소매가 불빛에 반사되며 차가운 금속처럼 빛났다. 민재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누구십니까.”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남자는 한 걸음 다가오며 미소를 지었다. “이영수라고 하네. 네 생모와 함께 일했던 사람이지. 이제부터 네 아버지라고 불러도 되겠군.”

수아의 손이 민재의 셔츠를 놓쳤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허공을 더듬었다. “그럴 리 없어요. 민재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희가 복도 벽을 짚으며 몸을 지탱했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수아, 저 남자 말 믿지 마.” 선희의 하이힐이 타일 바닥을 찍는 소리가 리듬처럼 반복됐다.

준호가 어둠 속에서 웃음을 흘렸다. “이영수 씨, 드디어 나타나셨네요. 태준 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계산적이었다. 민호는 계단 난간을 두드리며 말했다. “재미있군. 이제 민재 씨의 진짜 혈통이 드러나는 순간이로군.” 경찰관 두 명이 계단을 올라오며 수첩을 펼쳤다. “민재 씨, 추가 질문이 있습니다. 이 남자와의 관계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민재는 수아를 뒤로 밀며 몸을 돌렸다. “아버지라고요. 증거를 대보시죠.” 그의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졌다. 이영수가 서류를 꺼내 흔들었다. 종이 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안에 네 생모와의 DNA 기록이 들어 있어. 수아 씨 어머니가 숨겼던 그 기록 말이지.”

수아의 무릎이 다시 꺾였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입을 막았다. 꽃향기 대신 비에 젖은 흙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민재… 우리 이제…”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민재는 그녀를 부축하려 팔을 뻗었으나 선희가 먼저 수아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수아, 정신 차려. 이 남자들 말에 속지 마.”

태준이 계단에서 내려오며 또 다른 종이를 흔들었다. “형, 이 서류도 봐. 네가 입양된 이유가 수아 씨 가족과 연결된 계약 때문이었어. 아버지가 그걸 이용해 협박하려 했지.”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끝에 날이 서 있었다. 준호가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태준 형, 너무 빨리 말하면 재미없잖아요. 민재 형이 직접 확인하게 두죠.”

경찰관 중 한 명이 민재에게 다가왔다. “민재 씨, 이영수 씨와 함께 조서 작성이 필요합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시죠.” 민재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는 수아의 손을 다시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손바닥에 전해졌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수아, 기다려. 내가 곧 돌아올게.”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민재,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복도 저편에서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정장 차림으로 서서 모두를 둘러보았다. “이영수, 네가 왜 여기 있지. 이건 우리 가족 문제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영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가족? 민재 씨는 이제 내 아들이야. 네가 숨겼던 진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선희가 수아를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수아, 여기서 벗어나자. 언니가 도와줄게.” 수아는 민재의 팔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이 민재의 셔츠 소매를 적셨다. 민호가 전화기를 들고 말했다. “아버지, 경찰이 더 올 겁니다. 민재 씨를 데려가려는 움직임이 보이네요.”

민재는 이영수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왜 지금 나타난 거죠. 왜 지금까지 숨겼습니까.” 이영수의 눈이 반짝였다. “네 생모가 죽기 전에 내게 부탁했어. 네가 수아와 가까워지면 진실을 알려달라고. 그런데 네가 그걸 어겼군.”

준호가 민재의 귀에 대고 말했다. “형, 이 서류를 보면 더 충격적일 거야. 수아 씨와 민재 형이 실제로 혈연이 아니라는 내용도 있어. 하지만 아버지가 그걸 왜곡했지.” 민재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준호의 멱살을 잡았다. “너, 지금 장난해?” 준호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진심이야. 태준 형이 알려준 거야.”

태준이 서류를 내밀었다. “형, 읽어봐. 네가 선택할 순간이 왔어.” 민재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잉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첫 줄에 적힌 내용이 그의 눈을 파고들었다. ‘민재와 수아의 관계는 혈연이 아닌 계약으로 연결된 상태.’

수아가 몸을 일으키며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 그게 진짜야?”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민재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관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제 내려갑시다.” 민재는 수아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수아, 믿어. 내가 끝까지 지킬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민호가 따라왔다. “민재 씨, 이제 끝났어. 수아 씨는 당신을 떠날 거야.” 민재는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민호가 웃었다. “최 이사가 수아 씨에게 유언을 전달했어. 너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거지.”

복도 끝에서 새로운 그림자가 움직였다. 최 이사가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수아야,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 있어. 민재를 포기하면 네가 가진 모든 걸 지킬 수 있다고.” 수아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그녀는 민재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선희가 막아섰다.

민재는 경찰관을 뿌리치고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수아!” 그의 외침이 복도를 울렸다. 수아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민재, 나… 선택할 수 없어.”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이었다. 그녀는 전화기를 들고 차갑게 말했다. “아버지, 민재 씨가 도망치려 해요.”

아버지가 계단을 올라오며 명령했다. “모두 멈춰. 이영수, 네가 더 이상 개입하면 안 돼.” 이영수가 서류를 흔들었다. “이미 늦었어. 민재 씨는 내 아들이야. 이제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민재는 수아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그의 손바닥에 전해졌다.

준호가 뒤에서 낮게 말했다. “형, 사실 하나 더 있지. 네가 입양된 이유가 수아 씨의 어머니가 네 생모를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보호가 이제 독이 됐어.” 민재의 손이 떨렸다. 그는 준호를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태준이 또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형, 이걸 보면 알게 될 거야. 수아 씨와 네가 실제로 남매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어. 하지만 아버지가 그걸 숨겼지.” 수아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 우리 이제…”

복도 끝에서 사이렌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추가 인원을 불렀다. 민재는 수아를 끌어안았다. “수아, 도망치자.”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민재, 나… 너를 믿을게. 하지만 이 비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그때 새로운 그림자가 문턱에 나타났다. 낯선 여자였다. 그녀는 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아, 네가 선택할 시간이야. 민재를 지킬 건지, 아니면 네 과거를 버릴 건지.”

민재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는 수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러나 최 이사가 전화기를 들어 말했다. “수아야, 이제 결정해. 네 어머니의 유언을 따를 건지.” 수아의 입술이 벌어졌다. “민재…”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경찰이 들어왔다. “민재 씨, 이제 가시죠.” 민재는 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새로운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