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겨울 바람이 철거된 건물의 틈 사이를 파고들며, 한수민의 옷깃을 매섭게 간지럽혔다. 그녀는 숨을 가다듬으며 곧 데워질 주방의 창문에 손을 대었다. 유리 너머로 어느덧 돌아온 빛이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마당을 덮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묵은 이상하게 두드러져, 고요한 동화 속 오래된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외부의 모습은 잔잔하면서도 불안정한 심기를 자극했다. 고요 속에서 불현듯 들려오는 귓가의 속삭임이 무엇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심호흡을 한 뒤, 주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여기서 두려움은 사치일 뿐이야, 수민." 스스로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흩날렸다.
주방 안에는 이미 김재훈과 이소라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의 비장함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재훈은 날카롭게 서 있는 쿨톤의 스프레이 색감을 뿜어내며 등받이에 기대어 있었다.
이소라는 주위의 어둠을 헤치고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고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마치 지평선을 넘어 유유히 떠오르는 태양을 목도할 순간을 기다리는 듯한 기대감이 어린 기운이 돌았다.
"잘 잤어?"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새어나왔다.
수민은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왔으니 시작해야겠지."
김재훈의 눈빛이 한순간 강렬해졌다. 그의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그러게. 이제 진짜 시작이군."
그들의 말이 서로 얽히는 순간, 박수철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폭넓은 지식과 실험적인 비평으로 유명한 그는 그들 모두에게 방향키가 되어 줄 존재였다.
"모든 준비는 제자리에 있는 것 같군," 그는 짧고 은밀하게 말했다. "하지만 요리에는 합류하기 전까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지, 그걸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
그 고요함 속에서 특별한 감각이 일렁였고, 그것은 주방 깊숙이 자리잡은 대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송민지는 함박눈처럼 퍼지는 조리법을 기록 중인 책을 펼쳐놓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묘한 흥분이 깃들고, 두 눈은 태백산맥처럼 쌓여 있는 페이지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은 정작 약간의 두려움에 까닥였다.
"이제 정말 시작하는 거구나," 그녀의 속삭임은 무겁지 않으나 그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거운 기대감에 찬 소리와는 달리, 바로 그 순간, 새로운 긴장이 주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문 쪽을 바라본 바로 그때였다. 문이 다소 거칠게 열리며, 변신이라도 한 듯 재킷을 움켜쥐며 들어온 송민지의 정체불명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들어왔다. 그녀는 등 뒤에서 무언가를 움켜잡으며 차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지막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음을 알거야. 하지만," 그 존재는 천천히 주방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여기엔 한 가지 비밀이 있어."
그 순간, 주방의 공기는 이전과 달리 완전히 정체된 듯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방 안의 모든 이들이 응시한 그녀의 말에, 수민은 가시밭길을 마주하듯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비밀이 뭔데?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데?" 김재훈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송민지의 그림자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요리는 단순히 요리로 끝나지 않아요. 그것은 사람들의 기억과 실제를 엮어주는 힘이에요.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그 말을 마치자, 모든 이의 시선이 장차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쏠려 있었다. 마음 속 으슥한 그 어딘가에는 어떤 끝내야 할 여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수민은 강렬한 직감을 억누르고 앞으로 나섰다. 곧 시작될 그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들이 설령 그 요리의 비밀을 전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집단적이고 은밀한 긴장의 흐름이 그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들은 불꽃 같았고, 레시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그들의 발걸음은 더욱 단단해져갔다. 그들은 계속해서 주방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그림자를 교차시켰다. 그들은 곧이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이뤄낼 전설의 끝은 어디까지일지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발견해야 하는 비밀이 얼마나 어두울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