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건물 아래, 도시의 어둠은 한층 짙어졌고, 구름의 실루엣이 마치 묵묵한 연주의 베이스처럼 깔려 있었다. 이진호는 분명한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그러나 마음은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망설이고 있었다.
생각을 몰아치는 냉기가 체온을 잠식할 때쯤, 그의 귓가에 여전히 못 잊을 음의 메아리가 언뜻 스쳤다. 그 소리는 머리카락을 삐쭉 세웠고, 그 감각은 불안감 대신 벅차오름으로 가득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다시 이 목소리에... 끌리다니."
중얼거림이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증발했다. 그의 눈은 어느새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요한 도시의 노래는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불끈 솟아올랐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그 선율이 울릴 때마다 끝모를 질문이 되살아났다.
그의 뒷걸음질은 길 위에서 암흑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어딘가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네가 어디에 숨어 있든... 찾을 거야."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다시금 길을 걸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또 다른 낮은 멜로디가 주변에서 파동을 일으켰다. 살짝 굴린 눈빛이 방향을 잡지 못하는 상태에서, 왼편의 낯선 그림자가 걸어 들어왔다.
"이런 밤에 무언가를 찾고 있군요, 진호."
정혜수였다. 그 순간, 그녀의 출현은 마치 익숙한 악보에 예기치 않은 쉼표가 부딪힌 것과 같았다.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매말라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마치 그의 표정을 읽으려는 듯, 은근한 설득력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따금 그녀의 존재는 진호에게 어떤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건 마치 파도가 억누른 음의 파장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건 예사가 아닐까 싶군요."
그의 어깨에서는 불신부터 안도까지 모든 감정이 기어올랐다. 태연한 얼굴 아래에서 진호는 그녀의 눈빛을 맞으며, 다시금 내면 속 물음에 머물렀다.
"혜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역시 음악자의 감각은 속이지 않는군요."
그녀의 웃음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깊이 숨긴 무언가가 형체 없이 춤추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짙어진 어둠 속에서, 그녀는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음악이 우리를 이끌어줄 때도 있고, 반대로 우릴 멈춰세우기도 해요."
그녀의 숨결은 아직도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안엔 분명 치유의 손길이 있었고, 다른 쪽에서 볼 땐 불가사의한 고지가 가득했다. 진호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음미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귓가에 발자국 소리가 닿았다.
다시 한번 머리를 들자, 멀리서 오는 두 그림자가 보였다. 시간은 그녀의 말에 숨을 고르지 않고 급박하게 달아났다. 그 그림자가 하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박선우와 신아린이었다.
"오, 둘 다 여기 있었네. 밤이 깊었지만... 마침 잘 된 것 같아."
선우의 목소리에 진호는 잠시 채근당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의 유쾌한 웃음은 언제나 힘차고, 논리와 감정을 적절히 엉클어 놓을 줄 알았다. 그리고 아린은 여전히 그의 곁에서 고요하게 서 있었다.
"정말이지, 먼저 왔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녀는 밝게 웃으며 진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웠던 밤바람이 미지의 온기로 변하는 듯했다. 아린은 그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주었다.
"이 모든 건 너에 대한 작은 확인일지도 몰라."
아린의 끝말이 낮고 부드러운 신음처럼 들렸다. 그녀는 언제나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이 쎄고, 진호는 그녀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그들은 거리 중앙에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음의 중심이 잡히지 않고 흔들려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네 사람 사이에서 전해진 감각적인 어조가 잠시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곳에 남은 건, 어두운 도시 사이로 울리는 음이었다. 그 음 사이로 흐려지려는 갈등인 듯, 곧장 그들을 더 깊은 미로로 인도할 것이었다.
그리고 저 너머에, 드러난 것이 무엇이든 그들은 지지 않을 전투로 변모해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