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햇살은 전날의 빗물을 증발시키며 그라운드를 덮고 있었다. 김민재의 매만진 머리카락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마치 뜨거운 용암이 끓는 듯한 격정이 고동치고 있었다. 그때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날렵하게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져지를 입은 두 사람이 그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마치 끈끈한 마력에 빠져버린 듯, 민재는 그들을 응시했다.
“민재, 오늘 기세 좋네!” 이서진의 발랄한 목소리가 등에 닿아왔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었고, 그 평상적인 모습 덕에 민재는 잠시나마 안정을 찾았다.
“응. 좋은 날이 될 것 같아.” 민재가 회답하면서도, 시선은 방금 전 눈앞을 스친 인물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였다. 언덕 저편에서 라커룸 방향으로 걸어가던 이민호 코치가 느린 보폭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성난 늑대 같은 눈빛은 민재의 안일함을 꿰뚫고 있었다.
“김민재, 몇 마디 할 시간이 있겠나?” 이민호 코치가 건조하게 물었다.
민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내면에서는 불안감과 호기심이 뒤엉키며 모순된 감정이 덜컹거렸다. 이민호 코치는 더없이 중후한 태도로 눈을 뗐다.
---
라커룸의 문이 닫히면서 이내 고요가 자리잡았다. 텅 빈 공간에 둘러앉은 이민호 코치와 민재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민호 코치는 숨을 고르며 말을 꺼냈다.
“민재, 내 눈에는 네 안에 아직 미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려면 좀 더 색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의 말에 민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망설임과 의문이 가득했다. 그가 말한 '색다른 접근'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뜻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재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민호 코치는 깊은 숨을 내쉬며 반박의 여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충분히 강하고 빠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너는 무언가 더 필요하다. 지금의 너로는 온전히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어.”
공명이 사라진 조용한 라커룸에서 그 말은 에코처럼 울려 퍼졌다. 민재의 내면에 감정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그의 뺨에 식은땀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
린밍의 시계처럼 시간이 흘러 팀원들이 라커룸으로 속속 돌아왔다. 그들의 서로 다른 표정들은 각각의 기대와 불안을 반영했다. 그때 민재는 자신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를 감지했다.
“최영호, 너 다 듣고 있었지?” 고개를 돌리자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최영호가 미묘한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걱정 마, 민재야. 좀 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할 뿐이야.” 영호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는 꿰뚫을 듯한 기지가 느껴졌다.
민재는 그의 침착한 어조에 얽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진 않아. 하지만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 영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섞여 있었다.
민재는 가슴 가장 안쪽에서 뜨거운 동요가 일어나며 내적으로 혹독하게 흔들렸다. 영호의 말이 위로가 될 줄 알았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첫 시합이 끝나고, 민재는 익숙한 경로를 따라 혼자 운동장을 걸어 나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채 내비치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특히 그의 눈에 띄었던 김태준과 이민호 코치의 눈맞춤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
산뜻한 바람이 그의 얼굴에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때 민재의 두 눈에는 목표의식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는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그 장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시합 때는 어떻게 할 건데?” 감미로운 목소리가 다정하게 물었다. 민재는 부드럽게 목소리의 출처를 확인했다. 장미나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싶어, 솔직히 겁이 난다.” 민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나는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럴 때마다 네가 해야 할 것은 내가 두려움을 제거해주는 거야. 그리고 너 자신을 믿는 거지.”
민재는 그녀의 침착한 격려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알아차릴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민재는 그저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고마워, 미나. 넌 항상 내 곁에 있어주니까.”
그러나 민재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 전에, 이미 다른 무언가가 그의 주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 순간, 민재의 눈앞에 다가온 것은 그가 가장 피하고 싶은 무언가였다.
운동장의 다른 쪽 끝에서 포착된 새로운 그림자,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가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존재의 걸음걸이는 어떤 결말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고, 언제든지 그를 압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재는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더 큰 시험대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도망칠 수도 없는, 그리고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의 진실이 그의 눈앞에서 서서히 드러나려는 순간, 그 누군가의 걸음은 점차 빨라지는 듯했다. 그의 심장박동이 두드리는 소리는 인이 박히듯 그를 압박했다.
결국 민재는 그곳에서 발길을 멈췄다. 그의 눈에, 서서히 다가오는 인물의 실루엣이 또렷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것이 펼쳐질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예고된 암운이 압도적으로 자리잡았다.
무언가 중대한 전환점이 담긴 다음 순간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다가올 파국의 전주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