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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화
공부가 사랑을 만든다면
제1화

날개의 시작

거칠게 떠밀리듯 여닫힌 교실 문 너머로, 육중한 방정식들이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한비의 시선은 그저 창문 너머 먼 산에 머물렀다. 비가 내리려는지 하늘은 불안하게 무거웠고, 그녀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한비야, 이 문제 풀어볼래?"

수학 선생님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한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복잡해 보이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향한 모든 아이들의 눈초리였다.

한숨을 삼키고 천천히 일어나 그녀는 연습장을 챙겨 나섰다. 발걸음마다 단단한 교실 바닥이 울렸다. 식은땀이 손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거, 절대 가능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한비의 속으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오른쪽 구석, 교실의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자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희끗한 머리에 반짝거리는 안경테를 쓴 소년이 있었다. 스스로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는 선명히 말했다.

"선생님, 이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식이에요."

평소와 달리 점잔빼지 않는 그의 말투에, 교실은 순간 고요해졌다. 한비는 그제서야 소년의 이름을 떠올렸다. 태범, 그러니까 수학 천재라 불리는 학생이었다.

그날 점심시간, 한비는 교실 복도의 끝 모서리에서 그를 마주했다. 어색한 미소를 건네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다른 식에 골몰해있는 듯했다.

"오늘 아침 수업에서, 너 덕분에 살았어."

태범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맑고 투명했다. 마치 해결되지 않은 미궁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어려운 문제였죠. 내가 너무 끼어들었나?"

"아니야, 너무 고맙지. 난 진짜 끔찍하게 수학을 못하거든."

한비는 의도치 않게 웃음을 터뜨렸다. 태범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떨떠름했지만 정확히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너는 미술 천재라면서. 난 미술 과제에서 늘 고생이야. 이번 전시회 준비도 해야 하는데, 도통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서."

한비는 그의 말에 미세하게 몸을 흔들었다. 학교의 복도는 갑작스런 바람 소리가 휭하니 지나는 것을 상기시키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래? 그런 문제라면 나도 도와줄 수 있는데."

그들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한비의 심장은 앞뒤 가로 막힌 터널 속에서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미소 지으려 했지만, 무언가 그녀를 뒤에서 밀어내듯 진저리 쳤다.

이후, 그들은 함께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서로의 과제를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한비가 도화지 위에 선을 그리면, 태범은 그녀의 연필 잡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떻게 저렇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너, 선이 정말 독특해. 이걸 어떻게 보면서 그려?"

그녀는 연필 끝으로 그의 얼굴을 향해 가볍게 젓다 눈을 감았다. 많은 말이 필요 없이,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너, 이 문제가 왜 어려웠는지 알겠어?"

태범은 한비의 질문에 칠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방정식 위에 그의 눈길이 차곡차곡 내려 앉았다.

"복잡해 보이는 수많은 숫자들 사이에서, 진짜 중요한 건 사실 몇 개 없거든. 나머진 그냥 시선을 뺏기게 하는 연막 같은 거야."

한비는 고개를 끄덕였고, 태범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을 찾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복도 저쪽에서 들리는 어땠든 간에, 그들의 교실 문은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 뒤엔 낯설고도 묘하게 익숙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공부가 사랑을 만든다면
1화   날개의 시작 2화   출발점에 선 두 사람 3화   폭풍을 예고하는 새로운 발견 4화   새로운 교차로에서의 선택 5화   숨겨진 갈림길의 선택 6화   숨겨진 진실의 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