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하늘에서 떨어진 억센 빗물이 땅을 때리며 터져나갔다. 소연과 민재는 뒤이어 몰아치는 빗줄기와 바람에 몸을 더 낮추었다.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그들의 심장은 번정 없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답이 삶과 죽음의 교차점이 될지도 모름에 두 사람의 혈액이 빠르게 솟구쳤다.
물결의 입맞춤처럼 별안간 밀려드는 소금은 그들의 목을 타고 흘렀고, 손끝은 차가운 해수가 헝클어놓았다. 소연이 발을 디뎠던 모래는 말랑한 듯 허물어졌다. 발 밑은 금방이라도 그들을 빨아갈 듯 위협적인 변도로 움직였다. 그녀는 허공을 가르며 무언가를 도려내듯 민재의 손을 잡았다.
“이러다간 우리가...,” 그의 목소리가 무거운 바람에 묻혔다. 그의 발끝에서 물이 넘쳐흘렀다. 공포에 주먹질하듯, 두 손이 더욱 강하게 결속되었다.
소연은 이불처럼 가슴 속 걱정을 껴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바다를 넘어 먼 곳에서 온 진실의 속삭임이었다.
그를 이어 잔잔한 모습으로 바뀐 바람 소리에 민재와 소연은 손을 놓았다. 급작스레 흐린 해변에 익숙하다 못해 기이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 순간, 소리도 없이 그들 앞의 파도 속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어떤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오지 마.” 민재는 불쑥 튀어나온 존재에게 경고를 던지며,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그 얼굴의 속내를 급히 읽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오셨군요. 드디어 우리가 만날 때가 됐어요.” 그의 목소리는 녹여진 금속처럼 차가웠다. 그것은 귀에 스며드는 웅얼거림처럼 적과 동지의 영역 사이를 넘나드는 감각을 주기도 했다.
소연은 나지막히 숨겨둔 외침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여기엔 어떤 비밀이 있는 거죠? 우리에게 왜 당신이...” 그녀가 채 말하기 전에, 저 멀리 파도 위로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것은 신기루 같았고, 순간 두 사람은 얼어붙었다.
그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모습 속에서 거친 파도는 이전보다도 격렬하게 몸을 털며 변덕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재는 그 장면을 지켜보다 변화를 읽어내려다 입을 굳혔다. 이내 들이치는 파도가 거세지며 그들의 서 있는 자리에 각기 다른 진실을 밀려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아가면...” 불안에 목소리가 기울어지려 할 때, 소연은 민재의 손을 다시 꼭 쥐었다. 그 손에 전해진 진동은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돌아서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린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민재는 그 쉴 새 없는 파도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서약처럼 의지를 굳혔다. 그의 손에는 강한 확신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때, 누군가가 전에 없이 침묵을 깨며 끼어들었다. "비밀을 알고 싶다면 보여주겠어. 하지만 그 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야." 그 낯선 인물의 목소리가 그들 각자에게 깊이 새겨졌다.
순간, 파도가 다시 하늘로 치솟으며 그들의 모든 것을 삼킬 기세였다. 그들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를 강하게 마주 보며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진실을 기꺼이 맞으려 했다.
그 공간에 위협적인 숨결이 간격을 두려는 듯 불어왔다. 그리하여 그곳은 그들이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이야기, 파도 속에 감춰져 있던 비밀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맞닥뜨리게 될 진실은 아직 그대로였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위기 속에서 이야기는 이제 막 눈을 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