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은 보이지 않는 먹으로 물든 듯 어두웠다. 작은 별들이 간간이 그늘을 뚫고 반짝였지만, 그 빛 또한 흐릿하고 불안했다. 파도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낯선 안개가 해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비밀이 숨겨져 있는 커다란 장막처럼.
소연은 민재의 옆을 조용히 걷고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불안이 전염처럼 올라와 심장으로 옮겨졌다. 걷고 있는 길이 아니면, 그녀가 알지 못하는 깊고 검은 루트가 발밑으로 뚫려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민재가 불쑥 물었다. 그의 목소리 속에는 지친 불신이 묻어났다.
소연은 잠깐 멈춰 서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남자의 깊은 눈동자 속에는 알 수 없는 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얇은 웃음을 지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안내자가 말했던 것처럼 이곳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민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었다. "우리가 뒤쫓고 있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도 모른 채 여기까지 온 거군."
그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강한 반발심이 섞여 있었다. 소연의 마음끝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기분 나쁜 불안함이었던 것처럼.
"우리, 그냥 위험을 감수해 볼까요?" 소연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녀는 자신의 제안이 조금은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믿음을 걸 생각이었다.
민재는 긴 의심 섞인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알겠어요. 이게 끝일 수도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겠지."
그들은 다시 길을 걸었다. 부드러운 모래가 발밑에서 자박거렸다. 안개가 짙어질수록 그들의 손은 자연스레 서로의 체온을 찾아 움켜쥐었다. 불안을 피하고자 손을 꼭 잡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그들을 호출했다.
"멈추지 말아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소연과 민재는 그 즉시 멈춰 섰다. 그림자의 안내자가 뒤에 서 있었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긴 머리칼 사이사이로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왜 이런 데까지 우리를 데려온 거야?" 민재가 묻자, 그림자는 미소 짓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건 진작부터 여기에 있었어. 모든 기억과 관련된 것들이 말이야."
그 순간, 소연의 마음속에 있던 조각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이 깨어나기라도 한 듯, 그녀의 시선이 깜박였다.
"이것보다 더, 무언가가 있어?" 소연은 자신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안내자는 우아한 동작으로 손을 든 뒤, 화면을 펼치듯 주위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잃어버린 것들이 있어도 잃었다고 믿지 않는 너희 마음 때문이다. 이곳의 비밀을 풀려면 과거의 흔적을 직시해야 해."
소연의 머릿속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모든 부분이 꽉 찬 퍼즐처럼 맞춰져 가는 것 같았다. 불현듯, 가슴 속 깊이 쌓인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그의 깨어있는 눈동자에는 그녀가 몰랐던 무수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과거의 흔적이라니?" 민재가 중얼거린다. 자신의 목소리가 에코처럼 울린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으려는 사람처럼 주저하고 있었다.
그림자 안내자는 조용히 대답했다. "단서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어. 과거가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그런 흔적들로 말이야."
조용한 해변가에, 멀리서 불빛이 잠시 깜빡였다가 사라졌다. 그것은 두 사람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하는데 충분했다.
"저게 뭔가 있나 봐." 소연이 예기치 않은 흥분의 소리를 냈다. "가볼까요?"
민재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신경질적인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좋아. 이 절망적인 여정도 끝이 있을 테니."
소연은 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신발은 해변을 쓸며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해안의 그림자가 다시 그들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
"조심해." 안내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가 찾는 대답은 때때로 따르는 고통이 뒤따를지도 모르니."
소연은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어떠한 무의식적인 동료적 힘이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민재에게 작게 웃으며 물었다. "용기를 낼까?"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은 채, 그녀는 앞을 향해 걸었다. 발길에 대한 의심을 잠재우고 깨어나고자 했던 기억의 뿌리를 감솜하고 풀어내려는 듯 멈추지 않았다. 민재가 뒤따랐고, 그림자는 그 뒤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그들은 곧 어두운 빛과 그림자 사이의 경계에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그들의 앞에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소연과 민재는 다시금 그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진정으로 잃어버린 기억의 앞에서, 두 사람은 그들의 과거를 직시하는 기회를 맞이했다.
어둠 속에서 숨겼던 그 실루엣은 무언가 중대한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해변의 어둑한 길목에서 더 많은 것은 드러나지 않았다. 잊힌 중대하고 무시무시한 낯선 과거의 힘이 손을 뻗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기억의 가장 끝에 도달하게 될지, 그 수수께끼는 또다시 그들을 덮쳐왔다. 진실의 모호한 그림자가 그들 앞에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더 깊은 충격과 음모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음 순간에 발생할 미정의 사건, 그리고 그 미정의 결론 앞에서 민재와 소연은 또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밝혀야 할 이중적인 진실은 그들의 뒷모습 뒤로 드리운 음영이었다. 어딘가 결백하고 때론 절망적인 내면 속에서, 다음 번역의 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오로지 그 끊임없는 물음의 뒤를 돌아다볼 시간이었다. 누군가 미래를 숨기고 있는 진실과 대면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