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알 수 없는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며 눈앞에 투영되었다. 준호는 잠시 심호흡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발 끝에서 시작된 작은 무리는 모래처럼 사라져 가는 허상과도 같았다. 마주한 현실이 맹렬히 몰아쳤다. 그 순간, 그의 귀에는 이질적인 낮은 숨소리가 가득 찼다.
"돌아올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 그렇지?"
희미하게 다가오는 목소리, 그 누구도 아닌 강민재였다. 준호는 뒤돌아보며 그의 존재감을 감지했다. 늘 그랬듯이, 강렬한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 민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준호의 가슴에 깊게 파고들었다. 그 말이 마치 예언처럼 그의 미래를 지배할 듯했다. 서늘한 한기가 빼곡하게 목을 감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멈춰선 채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미묘한 불안이 그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던 시간이 충분하다 생각했다.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음영 속엔 무엇 하나도 분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며 으스스한 전조가 발끝에 느껴졌다. 준호의 결의에 찢어진 공기는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게 했다.
"여기에서 무언가 찾아낼 수 있을까?" 준호는 불안한 내심을 누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헛되지 않은 대답이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는 그저 걸었다.
그 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서영이었다. 그녀는 그레이 계열의 긴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은 준호가 성장하며 가졌던 순간들을 더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벗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준호, 여기엔 우리가 찾던 무언가가 있어. 충분히 알겠지?" 서영은 편안한 미소로 준호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친숙한 눈빛 속에는 묘한 기다림이 깃들어 있었다. 그 역시 서영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아직 이곳에서 풀리지 않은 게 있는 거군." 준호는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이 공중으로 퍼지자, 마치 시간 그 자체가 비틀거리며 말들을 수집하듯 들릴 뿐이었다.
잠시 후, 강민재가 그들 곁으로 걸어왔다. 그 역시 타투로 가득한 팔을 펼치며 무언의 결속을 내비쳤다. 아무리 외부의 압박이 거세어도, 그 둘과 함께 있음에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준호, 기억해봐. 네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그 실마리가 여기 다 있어." 민재는 칼로 베어낸 듯 절제된 음성으로 말했다. 그의 언어는 준호의 심연을 관통했다.
세 사람은 서로의 감정선을 잇는 끈처럼, 눈빛을 마주했다. 문득, 서영은 손끝으로 가볍게 민재의 팔을 떠밀며 그의 시선을 끌었다.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시간이 필요해." 서영이 민재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촛불이 꺼지듯 가볍게 그들의 곁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부재는 경계를 넘어선 곳에 숨겨져 있었던 그 무엇을 가리키는 듯했다.
준호는 복잡한 감정의 진폭을 가라앉히며 민재를 마주했다. 그 순간, 불편한 풍경의 언 그림자가 다시 두 사람 사이로 잔뜩 펼쳐졌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준호는 짧게 흘리듯 중얼거렸다.
민재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준호의 어깨를 단단히 잡은 채 말했다.
"모든 건 결국 하나의 포물선을 그리게 되어 있어. 추억만이 아니라, 그 추억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힘을 말이야."
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재의 손을 자신의 어깨 위로 다시 올렸다. 그들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진동은 마치 그 어떤 무게보다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좁고 깊은 공허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의 보석을 정화시키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 두 사람의 방향성이 병렬적으로 달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오는 것은 미지의 시공을 의미했다. 확고부분의 재해석, 그리고 그로 인해 다가올 기적을 향한 그들의 힘찬 고뇌와 결단은 무엇보다 격렬했던 모험으로 이어지며 생동했다.
말들의 겹침 속에서 최후의 고통스러운 방향성이 설정되고, 초점 없이 흩어졌던 그들의 시야를 하나로 모으는 그 순간이 찾아올 준비를 마쳤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 주출매를 크게 울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는 거센 바람에 낮은 울림이 몸을 감싸며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들을 가져갔다.
"준호! 이번엔 확실히 돌아볼 수 있겠지?" 진중한 결말과 그 사이에서 걷는 길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란 질문이 두들겨졌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숨죽인 채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자신을 둘러싼 그 변화를 이해하듯,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 진보는 절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화는 더욱 열정적으로 뻗쳐 나갔고, 풀리지 않은 미궁의 중심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그 답은 그를 향해 천천히 인사하며 밝고 뚜렷한 그림자의 끝을 가르켰다. 그리고 그의 시작점은 다시금 큰 소리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어딘가 생소한 보랏빛이 사방에서 뒤얽히며 엮여져 갔다. 깊은 고유성을 지닌 채지만, 그 메아리가 무엇을 알리는지는 알 수 아직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목소리는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를 불러오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해답은 미지의 세계 안, 바로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마침내 다가오고 있으니."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선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의 망설임은 곧 끝날 느낌이었다.
마침내 그 순간, 깊은 숨을 내쉬며 그의 손끝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매듭에 닿았다. 모든 것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스며들고 있었고, 그 안에 얽혀 있는 복잡함과 함께 더 깊이 감각되는 현실의 우연한 충돌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도록 했다.
어느 순간 공백 속에서 다시 한 번 더 크나큰 바람에 휘말려, 전부는 마치 없는 것 같던 순간 속에서 박자만 맞추어 출렁이며 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또 다른 모습들이 하나 둘씩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준호는 지쳐버린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어떤 유혹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온 순간들과 모헌이 속삭이는 꿈속에서 깨어난 현실 속에서 서 있었다. 이 순간에는 더 이상 기약 없는 충격만이 경계에서 넘쳐 흐르고 있었다.
"준호, 잊지마. 이제 모든 것이 명백해졌어." 나지막이 들리던 서영의 목소리였다. 그리곤 두 손을 펼쳐 눈앞으로 다가오는 낯선 장면 속으로 그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감춰진 건 무엇이었을까. 현실과 맞닿은 허상, 그 무한한 영역의 끝이 정신의 거울 같은 그 고요한 경지를 잇는 자리에 있었다.
마치 무한을 헤매듯, 저 멀리서 다시 피어오르는 흐느낌과 함께 시작된 꿈의 시작이었다. 이럴 수가, 이 정도로 예고된 길에 얼마나 유혹당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
"시간은 흘러가고 있을 뿐이야." 민재의 낮고도 단호한 음성, 모든 건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의 앞에 자리했다. 시간이 오는 것인지, 도망가는 것인지. 다가올 시련과 선택의 순간이...... 준호의 심장은 전율로 울렸다. 뭐라고 말하기도, 하기도 어려웠다.
다음엔 어떤 변화가 도사리고 있을까? 결코 끝나지 않을 행진의 연속이었으니까. 그의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준호는 여전히 걸음을 떼어놓고, 그 방울방울 번지는 시점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알 수 없었지만, 끝내 갈 수 없는 곳이라, 되돌릴 순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그 무대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