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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화
시간의 조각들
제2화

시간의 균열

"그리고 이제 시작일세, 예린."

마스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그의 주변에서 맴돌던 시간의 조각들이 나와 맞닿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바람이 지핀 불꽃마냥, 온몸을 관통하며 아찔한 감각을 남겼다. 다시 한 번 세계는 흔들리며, 우리는 새로운 변화 속으로 던져졌다.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요?" 나도 모르게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이번에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직감이 들었다.

말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눈앞에서는 모든 것이 빛의 파편 속에서 뒤섞이며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확인할 새도 없이 두 눈을 감은 채, 나는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어딘가가 벼락치듯 빛나더니 곧바로 시야가 터널을 지나간 것처럼 좁아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도로는 더럽고 금이 가 있었고, 주변의 건물들은 제멋대로 고층을 이루고 있었다. 최근 까맣게 잊고 있었던 현장이었다. 불길한 느낌이 전해졌다.

두 번째 장면은 이상하게도 낯익은 곳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고민해, 예린. 이곳에 신경을 써봐."

잇는 말이 끝나기 전에 누군가가 내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충혈된 시선은 계속해서 나를 응시했다. 레오였다. 그가 내 앞에 있었다.

"네가 날 찾으러 온 건가?" 차갑고 비웃는 듯한 그 말투는 여전히 나의 신경을 긁는 것이었다.

"레오, 여기에 왜 왔지?"

"글쎄, 더 나은 질문이 있지 않을까? 네가 여기에 온 이유를 물어보는 게 그 첫걸음일 테니까."

석연치 않은 뉘앙스에,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신경을 긁어내렸다.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목소리는 이미 내 가슴속 넓은 빈틈을 용케도 찾아들었다.

"시간의 조각들 사이엔 여전히 무언가가 흐르고 있어. 네가 느끼지 못하는 그 흐름. 난 그걸 다루려는 거야."

레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조작된 공간 속에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제발 그만둬. 이건 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결코 좋지 않다고."

폭발할 듯한 조바심과 맞서며 나는 말을 이었다. 나의 간청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줄 알았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내 속에서 또 다른 질책이 올라왔다.

"이제 멈추긴 이미 늦었어, 예린. 네가 아는 세계와는 다르게, 이곳의 시간은 나와 동조하고 있거든."

레오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말들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차디찬 바람이 피부를 열어 폭로하는 것처럼 내 의지를 갉았다.

"지켜볼 시간이 지나가버렸어. 이번엔 행동해, 예린. 아니라면 너도, 내가 하려는 것에 휩쓸려가게 될 테니까."

그가 돌아서자마자, 내 눈 앞에 무엇인가가 깔보듯 자리 잡혔다. 정체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채 가누기도 전에, 무언의 압박이 달려들어 나를 집어삼켰다.

마치 시간이 휘감겨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내 발끝이 허공에 묻혀버리기 전에, 나는 혹독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틀어지고 기울어져가는 이 세계 속에서 내 마음의 평형조차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세 번째 장면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낡은 벽시계가 흐르고 있는 공간, 그 안에서 미하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린, 네가 직면한 시간을 깨부수는 것은 게으른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네가 아직 다르다는 걸 입증할 찬스이기도 한 거야."

미하엘의 담담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그의 의도는 알지만, 내 마음속 불신의 감정은 가라앉지 않았다.

"잘 생각해봐. 너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우리는 모두 그 결과 속에서 살아가야 해."

아직도 남아 있는 진동과 압박감이 나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그를 따라가야 한다고 나 스스로 설득했다.

나는 미하엘의 손을 잡으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로운 각오를 불러일으켰다. 주어진 길이 위험으로 가득 찬다 하더라도, 그 길은 내가 선택한 것임을 상기시켰다. 이 시간의 틈 속으로 나아갈 때, 내가 무엇을 마주할지 알 수 없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결심이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의 구석구석에 드리운 어둠이 불가피하게 나의 시선을 가로막는 순간이었다. 그러고서, 내 속에 감추어진 의문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떠올랐다.

나의 앞을 가로막은 삼중주의 벽, 그리고 나는 그 앞을 용기내어 걸어가기 위한 발돋움을 하려는 찰나였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은밀하게 속삭였고, 너무나 아는 신체적 감각으로 내 머리를 채웠다. 썼던 모자와 같은 무게감, 그리고 그것이 내 맘속에서 가려는 방향을 흘겨보고 있었다.

순간, 적개심에 불타는 레오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뒤덮으며 다가왔다. 그의 말이 마지막의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폭발적이고 예측 못할 내일의 진실, 그 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무언가가 각성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순간, 진실이라는 짐을 견디기 위해 나는 맘속에 또다른 목적지를 그려냈다. 그리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더 큰 문제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시키며, 세상의 또 다른 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압도하는 위협감, 그것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불안감이 끝없이 휘몰아치던 그 지점에서, 나는 다음 장의 시작, 그리고 미지의 흑막을 배반하려는 의지를 목도할 기회를 얻은 것 같았다.

그 무렵, 불운한 긴장감이 엄습하며 낯선 고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나는 알 수 없는 진실의 끝을 보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제 모든 시작일 뿐이야, 예린."

그가 다시 목소리를 낮췄을 때, 새로운 의문이 터졌다. 그리고 모든 것은 마치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날 다시 천천히 둘러쌌다. 새로운 헤아림의 시작이었다.

곧 다가올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지금, 나의 발걸음은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 시간의 조각들
1화   시간의 벽돌 2화   시간의 균열 3화   균열의 대가 4화   시간의 도박 5화   시간의 어긋난 페이지 6화   시간의 증오와 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