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번에도 붙잡혔군, 누군지는 몰라도."
어둠 속, 귓가를 찌르는 듯한 익숙한 목소리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것은 이 내면의 단단함을 깎는 날카로운 줄과도 같았다. 나는 무너져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낯설어 보였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나 익숙했다.
그는 말라비틀어진 그늘 속의 무언가처럼 웅크리고 있었고, 숨결 속의 고요가 나를 집어삼킬 듯 몰아쉬고 있었다. 우린 그 현장에 있었고, 그가 내 목에 침울한 구슬 같은 눈동자를 박고 있었다.
"드디어 상대를 그만 찾고 싶다면, 네 존재 여부를 다시 바라봐야 할지도."
그가 낮게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빗방울의 차가운 감촉이 오히려 온 몸의 감각을 깨웠다. 그가 끝말을 꺼내면서 피어낸 미소는 무언가 이상하고, 기이했다. 그것은 마치 과거의 비극 속으로 걸어들어간 나의 잔상을 비웃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은 사실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게 결국 포기와 같다는 사실만 잔혹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빛이 내 장면의 고요를 갈라찍기 전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공기가 땅을 떠밀듯 내려쳤고, 다음 상황을 잃어버린 톡의 찌꺼기처럼 널 마지막으로 남겨둔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문두 속으로 돌아가자, 갑작스레 균열이 다시금 현실 속 공간을 가득 메웠다. 휘몰아치는 바람, 균열이 감싸올린 새벽의 검정. 거친 바람 소리가 더 살아나며, 균열은 내 앞에서 포효했다. 시간의 팽창과 축소 속에서, 내 두 뺨을 강타하듯 격렬한 공기의 흐름을 이끌어냈다. 나는 그 흐름을 뚫고 숨이 막히는 두려움 속에서 정신을 붙들었다.
"이럴 수도 있겠지, 넌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소리가 멈추고, 그리고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어둠 속의 한 음성이 이어졌다.
어둠 속, 멀리서 나타난 실루엣이 나에게 느리게 다가왔다. 긴장감과 두려움이 다시금 덮쳐오며 내 심장이 서서히 리듬을 찾고 있었다. 그가 나와 미하엘 사이에 서 있음을 깨달았을 때, 피할 수 없는 결정이 남아 있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으나, 거리를 더 가깝게 좁혔을 때 그는 단순히 몸을 제게 향하기만 했다. 그래, 그 흐름 속에서 정확히 마주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아무 집착에 매달리고 있었음을 들킬 텐데.
"이젠 정말, 네가 모두 답할 시간인가 보다."
어느새 내 손끝이 마구 뛰기 시작하며 심장의 폭발적 맥박을 따라잡으려 헛되이, 미지의 실루엣의 진정성과 함께 쓴 역사의 경계마저 들었다. 나의 시선이 그를 넘어설 때, 나는 미하엘의 도움을 받아 균열로부터 탈출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흑막의 뒤편, 미하엘의 고요한 눈빛이 떨고 있었다. 이것이 또 다른 일이 일어날 것임을 직감케 했다.
"어떻게든 예린, 우리는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어." 그가 내 뜻을 알아차리고 나지막히 말할 때, 나는 그제서야 다음을 위한 나의 선택이 진실과 마주하는 방법임을 알았다.
"그래. 우리가 함께하는 한, 분명 방법이 있을 테니까."
갑작스레 내리쬐는 긴장이 또 다른 주파수를 가르며, 우리가 방금 맞이했던 균열과는 또 다른 불안 속으로 우리를 품었다. 눈앞의 어둠이 안겨오는 모호하고 무채색의 향기가 순간적으로 냄새를 더했다.
나는 뒤돌아 그의 존재가 굳건한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목격했고, 안개처럼 뒤덮을 수도 있음을 이해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단절된 상당한 현상, 그리하여 나는 마지못해 대립해 어차피 결말 없는 전개 속의 일부일 주요한 전환 지점임을 다짐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이제 시작임을, 아직 어떤 돌파구도 존재치 않음을 인정하며, 그 무거운 점을 역사로써 받아들이기로 했다.
레오는 아직 멀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나의 눈앞에 다가온 것은 과거의 잔재가 아닌, 미래의 발걸음이었다. 그 발걸음마저 걸음을 옮기려 할 때, 그가 획진된 거리 속으로 사라지며 짧은 기척을 남겼다.
그리고 그제서야 완전하게 떠오를 비극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때에도 나를 향해 균열의 가장자리를 잡아 던지는 참석자들의 내면을 삼켜버린 채 오로지 이제 막 닫힌 문에 의해 봉인되고 있었다.
싱그러운 아침이가 하늘을 물들였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그걸 내려다보았다.
이제 나는, 우연이자 필연 속에서 어떤 이유로 이 길을 가야만 한다는 아래에서 그 발걸음을 드리우며 준비를 다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로써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오후의 장이 맞춰가고 있었다. 다가올 사건과 함께, 또 다른 문제의 실마리들을 벌써 부여 잡은채 그렇게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 시작을 바로잡기 위한 막연한 출발점 위에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전에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어둠 속 그 어느 한 점을 향해 무신히 나아가며, 그 발걸음의 예측할 수 없는 지점으로 향하기 위해 준비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날을 기다리며, 그 시계를 맞춰나가기로 결심했다. 언젠가는 그것을 마주할 날이 똑같이 돌아올 것이었다는 것에 모든 걸 걸며.
마지막 순간, 내 목소리는 고요히 울려 퍼지며 부활의 종소리마저 덮쳤다. 문득, 그 날카로운 실루엣이 불어닥치기 전에, 그 긴 여정을 함께 하려는 모든 것을 속삭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금 앞을 향하기로 약속했으며, 아직 풀리지 않은 시간의 수수께끼 속으로 발을 내딛기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혼란의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진실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순간 틈새의 균열 사이로 나타난 빛, 그 마지막 한 개의 조각이 내 곁으로 흘러들어왔다. 다가올 사건 속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세계를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