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처럼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하윤의 귀를 잡아채는 비명은 진실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는 무릎을 숙이며 떠도는 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안쪽에 숨겨진, 그의 과거가 내뱉는 무자비한 한 조각을 직시하려는 준비를 해야 했다.
"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성전의 종소리처럼 울리는 목소리였다. 하윤은 그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찾기 위해, 그 말을 따라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장엄한 풍경이었다.
"하윤, 이쪽이야." 따뜻한 빛처럼 그의 등을 밀어주는 미소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게 그를 향해 손을 뻗어 있었다. 하윤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싶었지만, 뭔가에 망설였다.
안개가 조금씩 흩어지면서, 그는 한때 눈을 감고 철저히 외면하고 싶었던 그 순간을 기억했다. 어릴 적 그 긴장감과 공포를 되새기며 숨죽인 기억, 새벽녘의 거울 너머로 다가오는 낯선 그림자였다. 그때의 불안은 이제 그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와 맞서야 할 시간이 온 거 같다. 피할 수는 없어." 션이 그의 곁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하는 그 순간, 하윤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션의 존재는 묵직한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은밀하게 다가오는 한기가 느껴졌다. 아까부터 낯선 그림자가 그를 쫓고 있었다. 그는 그 저주 같은 시선을 피해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걸친 낡은 기억들을 하나씩 끌어올렸다.
"하윤, 해가 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미소는 어느새 다시 그의 앞에 서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너머의 결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했다.
그 순간, 하윤은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다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왜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몰랐던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미소의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진실과 직면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며, 리안도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말보다 직관적이었다.
"지금이 기회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 너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리안은 조용한 목소리로 하윤에게 경고했다. 그의 눈은 마치 저 멀리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포근한 어머니의 것 같았다.
하윤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달래며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았다. 그는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저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오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때 느닷없이 안개 속에서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충분히 익숙하면서도 섬뜩했다. 그 얼굴은 여러 번 마주쳤던, 그의 가장 가까운 이들 중 하나가 아니면 안 되는, 헤아릴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나를 잊은 것 같지는 않다." 그 목소리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따뜻하지만 날카롭고, 친근하지만 지속적으로 무겁고 불길한 힘을 실어주었다. 하윤은 그 순간, 자신의 숨이 막혀드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넌 항상 나에게 질문을 내던졌던 겸손한 얼굴로 나타나곤 했지." 하윤은 속삭이듯 답했다. 마치 진실이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있다가 마침내 표면으로 떠오른 듯했다.
그의 눈 앞에 서 있던 건 자신이 잊을 수 없는, 과거의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 자신이 그토록 잊고 싶었던 과오를 날카롭게 되짚고 있었던 것이다. 하윤은 그들이 이끄는 진실을 묵묵히 따라가기로 결심하며, 그 이미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치면 불안하게 흔들리던 기억들이 이제는 한층 더 강한 모습으로 그의 마음을 휘감았다. 그는 다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고, 그 자신이 찾아야 할 진실과 마주 서게 되었다.
그때, 갑작스레 그가 서 있었던 땅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곁에 있던 션과 미소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앞의 풍경이 뒤틀리는 걸 깨달았을 때, 그동안 마주했던 모든 것이 단순한 조각임을 알게 되었다.
"하윤, 너에게 선택의 시간이 왔어."
다시금 듣게 된 그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는 깊은 심연 속으로 떨어지며 자신을 붙들고 있는 진실의 이중주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서 발견할 한 조각의 해답을 향해 필사적으로 발끝을 흔들었다.
마침내 그의 몸이 완전히 암흑 속으로 잠기며 또 다른 가능성을 마주하게 될 것임을 예감을 남기고, 그곳에서 그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었다. 이제 정말로 그가 무엇을 찾아야 할지, 그리고 무엇이 그의 운명을 지배하게 될지를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 암흑 속에도 새로운 흥분과 두려움이 공존하였다. 그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연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