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새벽의 안개가 거리를 감싸던 그때, 진우는 끓어오르는 본능에 따라 발걸음을 내디뎠다. 고요한 거리는 그의 발소리를 삼키지 못하고 홈이 파인 길에 울림을 남겼다. 그가 서있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체념의 구름이 자꾸만 몰려들면서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듣기 싫군," 재하가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은 아닌 듯 했지만, 그가 수신호를 보내듯 손끝으로 어디론가를 가르키고 있었다.
다시금 고개를 숙인 진우의 시야에 낯설지만 익숙한 그림자가 걸쳐졌다. 그의 손에 쥔 것은 작은 나침반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고장난 듯 방향을 알 수 없이 흔들리던 그 나침반이, 이상하게도 오늘은 온전히 한 곳을 정하고 있었다.
"이 불길한 전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마 너는 알고 있는 건가?" 미래가 자신의 시선을 아래로 낮추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의심과 함께 확신이 깃들여져, 오히려 그 의문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진우는 답답한 듯 숨을 들이켰다. 손끝에서 스며드는 한기가 그의 온몸을 경유했다. "글쎄, 아직은 뭐라 단정할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쬐쬐한 조각이라도 모아서 그 고통스러운 과거를 이해해야 해."
재하는 주위의 공기를 두루 살피며 말했다. "그래, 이 시간의 유산은 우리가 두고 온 모든 발자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이 운명도, 멈추지 않고 가야만 하는 이유도."
그 순간, 진우의 눈에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 들어왔다. 높이 얽혀 선 채 빛을 받은 어두운 회랑의 끝, 그곳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감각이 피어오른다. 숨죽여 털끝만큼의 떨림도 허락되지 않는 순간,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수빈이 두 사람의 뒤를 쫓아왔다. 그의 눈은 섬세하게 사방을 탐색하고 있었다. "이곳이 곧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답을 찾을 곳이라면…," 그가 망설이듯 말했다. "그 전에 우리가 마주할 진실은 어느 것보다도 더 잔혹할 수도 있어."
"그렇다고 돌이킬 수는 없겠지," 미래가 다부진 얼굴로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불확실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마치 바람이 귓가를 때릴 때 들려오는 속삭임처럼, 주변은 이상한 소리로 가득차고 있었다. 그 소리는 아득하고도 깊은 곳에서 들려온 것도 같았으며, 모든 감각을 건드리는 듯했다.
"무언가가 우리를 휘감고 있어," 진우는 대체 무슨 이유로 이 느낌이 드는지조차 모른 채 말했다. 이 순간을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막연하고 암울했다.
닫히지 않는 불안이 걸음을 붙잡았다. 그들은 고요히 짙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곳엔 과거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은 알 수 없이 어떤 존재와 대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이제, 여길 빠져나가야 해," 진우가 손가락을 꽉 쥐며 속삭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의 말에 묻어나는 불안감에는 한계를 두기 어려워 보였다. 공기의 떨림이 그의 내면을 흐트러뜨리며 방향을 잃게 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눈앞에 드리워지며, 어떤 해답을 추구하던 그들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제각기의 고민을 품고 깊이 빠져들던 혼란이 이젠 다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가 닿을 시간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한 신호였다.
그들이 가야 할 길, 그들이 마주해야 할 운명. 진우의 발걸음이 그 모두를 스쳐 갈 때, 억제할 수 없는 그림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또 다시, 세상은 그 앞에 무엇이 남아있을지 나름대로 고개를 들이밀지 않는 채로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르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더불어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어 지켜보고 있었다.
상상의 끝자락에서, 그들이 아는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 모든 것의 중심에 그들의 그림자가 흩뿌려져 있었다. 아직 그 모든 끝에서 너무도 멀어, 단순히 한 장의 이야기 일 뿐인 그 세계였다.
"다음엔, 우리가 찾을 수 있을까?" 진우가 스스로 묻듯 내뱉었지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답변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 날이 오면, 그들은 그 이상의 새로운 길을 따라갈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린, 그토록 탐색했던 또 다른 차원의 진실과 맞닥뜨리기 위해. 조급한 손길로 바람을 쥐고, 다음엔 또 그 앞에 알 수 없는 소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속에서 그들이 발견할 모든 것을 향해, 그들은 이제 같이 있을 뿐이며, 그 거대한 비밀의 속삭임이 지금 바로 그들 앞에서 세상을 갈라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