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었다. 진우는 숨 막힐 듯 매서운 경계선에 선 채 서늘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바람은 아득한 비명 소리처럼 끌리며 복도 끝을 지나 석골 틈 사이사이로 사라졌다.
"이게 끝일 거라 생각했어?"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이 자욱이 묻어났다. 뒤돌아본 진우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재하였다. 그가 인적 없는 이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온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진우는 무심히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온 건 네가 처음일 거야, 재하."
재하는 주름 가득한 미소가 어우러진 눈빛을 그에게 던졌다. "뭔가 중요한 걸 찾으려고 했지?" 재하는 그 주름 속 진심을 숨긴 채, 경계의 벽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진우는 고개를 저어, 그가 기대했던 소식이 아니었음을 알리려 했다.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 이곳에 남은 시간의 흔적들은 여전히 수수께끼야."
재하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가로챘다. "수수께끼를 풀고 싶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기억해라. 시간의 법칙 아래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야."
한 순간, 복도의 그림자는 진우의 얼굴을 덮으며 점점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어둠의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기회를 포기할 건가?" 재하의 음성은 단호했지만 어딘가 씁쓸한 감정이 배어 있었다. 진우가 오랫동안 벼려온 결정을 좌우할 힘을 지녔다.
진우는 손끝에 걸린 희미한 떨림을 감지했다. "마치 고통스런 과정에 얽매이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 그런데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야. 이제는..."
재하가 그의 말을 끊으며,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때라 해봐야, 사실 뭘 발견할 수 있겠어? 설마 마음 속의 빈틈을 메꿀 해결책이라도 찾아낼 줄 알았나?"
진우는 길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묻지 않겠어. 그저 답을 찾아나갈 뿐."
그때,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긴 순간을 깨트리며 방의 바닥이 저릿할 정도로 요동쳤다. 난폭한 흔들림에 재하의 얼굴이 강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진우도 그와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너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린 거야?" 재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며 안전한 장소를 찾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한 시야 앞에 놓인 것은, 어떤 것도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 잠재적인 재난이 도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열린 문 사이로 찬 바람이 밀어닥쳤다. 그 냉기가 두 사람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려는 듯 위협적인 소리로 진우와 재하를 덮쳤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이제는 결정해야 해." 재하가 진우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가능성은 다가올 미지의 바다로 향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려 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어떻게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어." 진우는 굳은 결의로 머리를 들이었다. 그의 눈빛은 이제 이곳에서 벌어질 일련의 사건들이 무엇을 예고하는지, 그 진실을 직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재하의 얼굴에 잠깐 스치고 지나간 긴장이 폭발했다. "누가 다가오고 있어." 재하는 방향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머리를 돌렸다.
그때, 그림자 속에서 불현듯 나타난 인물의 모습이 그들에게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 인물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두 사람 앞을 가로막는 순간, 그들의 가슴은 더욱 빠르게 조여들었다.
확연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림자에, 진우는 뜻밖의 질문에 부딪힌 듯한 감정과 함께 그 존재를 응시했다. 이 지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란 불가능했다. 모든 것은 앞날의 결단에 달려 있었다. 그 그림자가 진우에게 다가갈 때, 그의 속에서 무언가가 끓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존재를 맞닥뜨리고 있었다. 어떤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지, 그들은 추리해볼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곧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출발점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