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피리 소리에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막다른 벽은 우리에게 피할 공간을 한 치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소리가 떨치는 울림은 내 몸속 깊이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벽을 등지고 서서 어둠 속의 출구를 찾으려 애썼다.
"이 미로도 이제 끝인 거 같아."
신시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견고했으나, 카일의 손을 쥐고 있는 떨리는 손가락에서는 불안이 역력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우린 그저 서 있을 순 없어."
레온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여전히 자신감보다는 의지가 편승된 듯 보였다. 그의 푸른 눈은 전방을 향해 긴장감 없이 밝아졌다. 그는 우리 모두를 고심 끝에 쳐다보았다.
피리 소리는 제멋대로 불타는 듯한 불협화음 속에서 허공을 휘몰아쳤다. 그 울림은 우리를 감싸는 듯했다. 갑자기, 누군가의 발소리가 우리의 접근을 강렬하게 경고하는 듯, 어둠 속 어디에선가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소리가 강력하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나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게 열어놓은 의문은 갈수록 더 명확해졌다. 주변은 벽이 무너지듯 뭔가 떨어지고 있는 듯한 소리로 가득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빛났다. 그 속에서 한 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그 인물은 시간을 거스르는 듯, 고유한 편안함을 던지며 우리 앞에 섰다.
"잠시만, 당신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이었다. 그 인물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낯이 익었다. 그렇지만 그 미소는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세계의 비밀을 더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이민수."
낯선 인사의 목소리에는 묘한 친근함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 소개는 마음속에 문득 일랑거리는 의문과 절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만약 그 예측이 맞다면, 지금 우리를 마주하려는 인물은 분명 엄청난 막강한 비밀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주먹을 쥐었다. 손끝까지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할 때였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이것이 과거의 파편 중 일부임을 깨달았다.
다음 질문은 미루거나 숨기기에는 너무 무서운 물음이었다. 이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뒤집힐지 몰랐다. 그러나 그 비밀의 집합이나 현실의 전환 앞에서 우리는 단지 모험심만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진짜야, 이민수?"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명백히 알 수 있는 인물의 음성이었다. 레온이었다. 그의 주저함 없는 본래의 자세가 나를 중심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나는 너인데, 이세계의 나야."
다급하게 말하려다가 멈춘 그 남자는 갑자기 진정하며 각자를 마주 응시했다. 공간을 두드리는 어조로 조용히 고개를 들어 마주쳤다.
"뭐야, 모든 건 어찌 됐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다 바뀐다고 해야 맞는 건가?"
의미심장한 순간에 모든 것이 흔들리며 불쑥 나타난 수수께끼가 열받은 나의 목소리를 덕분에 곁들이며 터져 나왔다. 긴장감 넘쳤다. 공기가 점차 가볍게 느껴지며 그 흐름이 내 어깨를 덮었다.
하지만, 그때 그가 내뱉은 다음 말이 모든 것을 잠재웠다. 똑같지만 다른 존재로 다가온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선언하고 있었다.
“너희에게도 기회가 있어. 내 손을 잡아.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가자.”
불현듯 들린 목소리로, 새로운 전환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억제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이 우리를 에워싼 가운데 새로운 반격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세상의 경계는 금세 모호해지고 있었다. 전부 손에 닿을 듯한 새로운 전말 속에서 다음 단계를 향해 걸음을 내딛어야 했다.
이 고요함과 선명함 속에서 각자의 길이 엉키며 시작되는 방향성을 깨달았다. 깨어오고 있는 나의 앞에 놓인 이 예측할 수 없는 경지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닐 것임이 되었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의 신호이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깊이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과거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