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골목 끝을 찢으며 쏟아지던 순간, 이수현의 손이 USB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그녀의 숨이 순간 멈췄다.
정희의 웃음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흘러나왔다. 발소리가 콘크리트를 긁으며 가까워지자, 수현은 몸을 돌려 김태오의 등 뒤로 숨었다. 그의 재킷 소매가 바람에 펄럭였고, 땀에 젖은 천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현아, 이제 그만 숨지 마. 지훈 오빠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정희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지만, 끝맺음이 날카롭게 갈라졌다. 그녀의 손이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내 들었고, 금속이 neon 불빛에 번쩍였다.
김태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발이 물웅덩이를 찼고, 물보라가 바지를 적셨다. "정희, 그 칼로 끝낼 생각은 마. USB 안에 네가 숨긴 거래 기록이 다 들어 있어."
정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칼을 내리며 웃었다. "거래? 그 불꽃이 우리 모두를 태운 거래였지. 수현, 네 연인이 왜 죽었는지 진짜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아?"
수현의 손톱이 USB 가장자리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태오의 팔을 잡아당겼다. "말해. 그 불꽃에 민준이 어떻게 휘말린 거야?"
정희는 한 걸음 물러섰다. 빗물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렀다. "민준은 지훈 오빠의 계획을 막으려 했어. 그래서 내가… 그를 불꽃 속으로 밀어넣은 거야. 너를 증인으로 삼아 모든 걸 덮으려고."
수현의 가슴이 조여왔다. 그녀는 태오를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럼 너도… 그 계획에 동참한 거였어?"
정희는 대답 대신 칼을 다시 들어 올렸다. "이제 선택해. USB를 내놓고 자유를 얻을래, 아니면 여기서 끝날래?"
바로 그때, 골목 뒤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렸다. 헤드라이트가 빗줄기를 가르며 다가왔다. 수현은 몸을 틀었다. "또 다른 추격자야?"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뒤로 물러서. 지훈의 사람들일 거야."
그들은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거리의 웃음소리와 경적 소리가 그들을 삼켰다. 수현의 발이 웅덩이를 밟았고, 차가운 물이 다리를 적셨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정희가 왜 우리를 배신한 거지? 그 불꽃이 그녀에게 준 게 뭐야?"
태오는 작은 골목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벽에 등을 기대며 그는 USB를 꺼냈다. "그녀는 자유를 원했어. 지훈이 약속한 새로운 세력과의 거래. 회사의 기술을 팔아넘기고, 우리를 희생양으로 삼는 거였지."
수현의 손이 그의 가슴을 밀쳤다. "그럼 너도 그 일부였단 말이야? 왜 이제야 말하는 거지?"
태오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따뜻한 체온이 스며들었다. "미안해. 하지만 지훈이 더 큰 덫을 놓았어. 그 거래 상대가… 네 친구 박정희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어."
그들은 오래된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삐걱거리며 닫히자,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태오는 랩톱을 켰다. 화면 빛이 얼굴을 비추며, 파일들이 떠올랐다.
"이 사진… 지훈과 정희가 민준을 끌어들인 장면이야." 수현은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여기, 또 다른 얼굴이 있어. 누군데?"
태오는 화면을 확대했다. "윤지훈의 조력자… 아니, 그건 민준의 형제였어. 그런데 정희가 그를 이용해 우리를 추적한 거지."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몸을 돌렸다. "또?"
그림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향수 냄새가 퍼졌다. "수현아, 기다렸어. 그 USB를 내놓으면, 너희를 살려줄게."
정희였다. 그녀는 칼을 들고 웃었다. "지훈 오빠가 말했어. 이 거래가 끝나면, 우리 모두 자유로워질 거라고."
태오는 수현을 뒤로 밀며 앞으로 나섰다. "정희, 그 자유는 피로 사는 거야. 네가 민준을 죽인 순간부터, 너도 불꽃에 타버린 거지."
정희의 칼이 공기를 가르며 번쩍였다. "그래, 타버렸어. 하지만 너희도 이제 끝이야."
수현은 USB를 쥐고 뒷문 쪽으로 물러섰다. "이 USB를 지훈에게 주면 끝날 줄 알아?"
정희는 대답 대신 앞으로 돌진했다. 칼날이 수현의 팔을 스쳤다. 뜨거운 통증이 피부를 찔렀다.
태오는 정희를 막아섰다. "수현, 뛰어!"
그들은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거리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수현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태오, 이 거래의 진짜 상대가 누구야? 정희가 왜 우리를 끝까지 쫓는 거지?"
태오는 그녀를 작은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 상대는… 너의 과거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지훈이 숨긴 그 세력이, 네 연인의 죽음을 이용해 회사를 장악하려는 거야."
건물 안은 어두웠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neon 불빛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수현은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그 세력이… 내 친구를 이용한 이유가 뭐야?"
태오는 USB를 다시 켰다. "이 안에 기록된 거래 상대의 이름이… 윤지훈이 아니야. 그건 네가 잃은 연인의 가족이었어."
수현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가…"
바로 그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현, 이제 모든 걸 끝낼 때가 됐어."
그림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 쥔 물건이 빛났다. "네 연인의 진짜 죽음은, 지훈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어."
수현은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너… 민준의 형제?"
그는 웃었다. "그래. 그리고 이제, 너희가 가진 USB를 내가 가져가야겠어."
태오는 수현을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다. "이 USB를 주면, 우리를 살려줄 생각이야?"
민준의 형제는 칼을 들어 올렸다. "아니. 이 USB가 열리면, 너희의 모든 과거가 드러날 거야. 지훈의 거래가 끝나면, 새로운 불꽃이 피어날 테니까."
수현의 손이 USB를 쥐어짜며, 그녀의 시선이 태오에게 향했다. "태오, 이게… 우리를 더 깊은 구덩이로 밀어넣는 거야?"
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문 밖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오빠, 이제 그만해. 그 USB를 내놓고, 우리 모두 끝내자."
민준의 형제는 웃으며 말했다. "정희, 너도 이제 알았겠지. 이 거래의 진짜 주인은… 너의 오빠가 아니야."
정희의 발소리가 멈췄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바로 그 순간, 건물 밖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불꽃이 창문을 비추며, 수현의 심장이 요동쳤다.
민준의 형제는 칼을 내리며 속삭였다. "이제 진짜 게임이 시작됐어. 그 불꽃이 너희를 다시 찾아올 거야."
수현은 USB를 움켜쥐고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 이 USB 안에… 네가 숨긴 게 또 뭐야?"
태오는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았다. 창밖으로 번지는 불빛이 그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렸다. "수현, 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
정희와 민준의 형제가 동시에 움직였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수현의 시야가 좁아졌다.
그리고 문이 다시 열리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태오, 수현. 지훈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이번엔… 내가 직접 끝낼게."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익숙했다. 윤지훈이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USB를 내놓아. 아니면, 너희의 모든 비밀이 이 불꽃과 함께 사라질 거야."
수현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 이게… 끝이 아니잖아?"
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윤지훈의 칼이 번쩍였다. 불꽃의 잔영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