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그동안 배달음식을 시킬까 말까 망설였던 내게 김태준의 권유는 작은 충격이었다. 문밖에서 다시 만난 그의 얼굴은 어제와 달리 차분해 보였다.
"윤하린 씨, 어제는 잘 주무셨습니까?"
"네... 뭐, 잠을 잘 잔 건 아니지만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눈앞에 있는 김태준이라는 남자는 어제 내게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을 말했다. 그렇지만, 정말 그게 진실일까? 꼭 그렇다고 믿고 싶진 않았다.
그는 이내 정중하게 말했다. "오늘은 회장님을 뵙고 회장님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정말 제가 회장님의 딸이라는 증거가 맞는 건가요? 그냥 장난이거나, 사기 같은 건 아니고요?" 나는 여전히 거부감과 불안함이 교차한 물음에 답을 찾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서류와 증거물들은 모두 진위가 확인된 것입니다. 회장님께서도 이 사실을 공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확신에 찬 말을 이어갔다.
나는 배제할 수 없는 호기심과 불신감 사이에서 싸우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어요. 그럼 가죠."
차분한 차림의 김태준을 따라간 곳은 서울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 다소 독특하게 서 있는 대저택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던 부유한 냄새는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신발을 벗고, 부드러운 양탄자를 디딜 때마다 여성의 발소리가 캔버스처럼 이어졌다.
"여기입니다." 김태준은 큰 나무 문앞에서 멈추어 섰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눈앞에 있는 모습을 보고 말을 잃었다. 탁자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나이든 남자는, 곧장 내 얼굴을 보며 괜히 눈이 떨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린아... 드디어 만나는구나."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따뜻했고, 그의 두 눈에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회장님... 이렇게 만나게 되어 좀 충격이네요. 저를... 어떻게 찾으신 거죠?" 내가 물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너를 지켜보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 어머니가 너를 잃고 난 후, 우리의 삶은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시 침묵만 흐르며 그를 바라봤다. 이 만남으로 인해 나의 삶이 완전히 뒤집어질까 두려웠으나, 이상하게도 내 안에 작은 기대가 솟아나고 있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너를 찾기를 바라왔다. 너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여기서 가족을 다시 이루고 싶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가족이라... 그토록 바라왔던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싶어 했던 순간이 이렇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제가 여기서 무얼 해야 하죠?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단순히 우리와 함께 있어줬으면 한다. 네가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란다."
이 말에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갑작스럽게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따뜻하고 진심이 담긴 듯 느껴졌다.
"그럼... 다른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제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을..."
그때 그의 옆문이 열리며, 첫날 봤던 김태준 외에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와 중년의 여자가 다가왔다.
"남자형제들을 소개할게. 이쪽은 네 오빠, 한서. 그리고, 남동생인 준서야."
두 사람은 차례로 나를 바라보며 점잖은 미소를 지었다.
한서가 먼저 말했다. "안녕하세요, 하린씨. 우리와 함께 해줘서 정말 기뻐요. 가족이 하나 되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그간 서로를 꿈꿔왔다고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그 말은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진심 어린 눈빛이 내 마음을 조금 녹였다. "저도... 그렇군요.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나는 그들의 존재가 나의 불안감을 조금씩 덜어내는 듯했다. 이 갑작스러운 만남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환영에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의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고 두려웠다. 나는 이 낯선 문턱 앞에서 벌써 새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