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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0화
나는 재벌의 숨겨진 딸이었다
제10화

숨 막히는 진실의 심연

김태준 비서의 차가운 경고가 응접실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친절한 가면 뒤에 숨겨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찾던 진실이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내 목숨마저 위협할 수 있는 거대한 그림자임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심장은 미친 듯이 발악하며 뛰어댔다. 배신감과 함께 그동안 내가 느꼈던 모든 불안감이 실체 없는 공포로 변해 나를 덮쳤다.

"위험하다뇨… 그게 무슨 뜻이에요? 비서님은… 대체 뭘 알고 있었던 거죠? 어머니 편지 내용… 전부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내 목소리는 격앙되어 떨렸지만, 나는 애써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여전히 감정을 읽기 힘들었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아주 미세한 동요가 일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흩어진 편지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아가씨께서는… 알지 않으시는 편이 좋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부인께서는 아가씨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아가씨께서는 그저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아가시는 것이… 부인께서 원하셨던 유일한 일입니다."

그의 말은 마치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니.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평화로운 삶? 그가 말하는 평화는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가짜 평화일 뿐이었다.

"평화요? 제가 25년 동안 고아로 살아왔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가 사라진 이유도 모른 채로! 그게 어떻게 평화일 수 있어요? 저는 진실을 알아야겠어요.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비서님은 왜 저를 25년이나 속여왔는지… 모든 걸 말해주세요!"

나는 그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몸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김태준 비서는 나의 절규에도 흔들림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인께서는… 아가씨가 재벌가의 일원으로 살아가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 집안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은 온갖 탐욕과 암투로 가득한 지옥과도 같은 곳입니다. 부인께서는 아가씨가 그 진흙탕에 발을 들이는 것을 막고자 하셨습니다."

지옥 같은 곳. 그의 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발을 들인 이 호화로운 저택이, 사실은 지옥이라는 말인가.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어머니는 무엇과 싸웠던 걸까.

"누가… 누가 어머니를 위협한 건데요? 편지에 '그들'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대체 '그들'이 누구예요?"

김태준 비서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정원을 향했다. 그 눈빛 속에는 회한과 함께 거대한 비밀을 홀로 짊어진 자의 고독이 엿보였다.

"그것은… 이 그룹의 경영권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부인께서는 회장님의 진정한 사랑이었지만… 이 집안의 일부 사람들은 부인을 단지 자신의 이득을 위한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아가씨의 탄생은… 그들에게 또 다른 장애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경영권 다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벌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과 내 실종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럼…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아버지가 연루되어 있는 건가요?"

내 질문에 김 비서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께서는…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부인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를 잃은 후, 회장님은 오랜 시간 충격과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놓치고… 알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혹은… 알려고 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아버지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준서가 한서 오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형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아버지와 한서 오빠 모두가 진실의 일부를 알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럼… 비서님은요? 비서님은 어머니의 편지에 따라 저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신 거죠? 그게 제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도… 비서님은 대체 왜… 그때 저를 버리다시피 하셨던 거예요?"

내 목소리는 원망과 슬픔으로 뒤섞였다. 김 비서의 얼굴에 처음으로 명확한 고통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부인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아가씨를 지켜달라는… 부인의 마지막 부탁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아가씨가 이 저택에 남아 있었다면… 부인처럼… 위험했을 겁니다."

그의 말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내가 살기 위해 버려졌다는 잔혹한 진실. 나는 그동안 나를 버린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왔지만, 그 뒤에는 이런 슬프고 처절한 희생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미안하다’는 글귀가 이제야 비로소 완전하게 이해되었다.

"그래서… 비서님은 지금까지 그 진실을 혼자 감당해 오신 거군요. 제가 다시 이 집에 돌아오게 된 것도… 비서님 뜻이었나요?"

김태준 비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흐르고… 이 집안의 상황도 조금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아가씨를 찾아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부인께서 아가씨에게 주지 못했던 것을… 이제라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가 진실에 다가갈수록… 위험은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여전히 존재한다니. 나는 몸을 떨었다. 온실에서 준서가 중얼거렸던 말,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어'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준서도 그 그림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림자가… 누구죠? 준서가 말한 그 '재앙'이 저라면… 그럼 그 그림자는 이 집안에 있는 건가요?"

김태준 비서는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침묵은 더 큰 공포를 안겨주었다. 마치 그 그림자가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해서, 그 이름조차 입에 담기 꺼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응접실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이번에는 나이 든 가정부가 불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김 비서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급한 서류 결재 건이 있다고 하십니다."

가정부의 말에 김태준 비서는 미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는 다시 냉정한 비서의 가면을 쓰고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그는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다시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내가 바닥에 떨어뜨린 편지들을 다시 조심스럽게 주워 모았다.

"아가씨… 부디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이 진실은… 아가씨에게 독이 될 것입니다. 부인께서 애써 지켜냈던 것을… 아가씨께서 스스로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그의 마지막 경고는 차가운 얼음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 그는 편지 뭉치를 품에 넣고는, 고요히 응접실을 나섰다. 닫히는 문소리가 쿵, 하고 울리자 응접실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머니의 희생, 김 비서의 침묵, 그리고 이 집안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그림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찾던 진실은 단편적인 조각이 아니라, 거대한 먹구름처럼 이 집안 전체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건의 가장 중심에 서 있었다. 준서의 경고, 한서 오빠의 회피, 아버지의 모호한 태도, 그리고 김 비서의 경고와 후회까지. 모든 퍼즐 조각이 이제야 비로소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바닥만 응시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이 집안의 깊숙이 숨겨진 비밀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김 비서가 편지를 가져갔지만, 내 머릿속에는 어머니의 절박한 글귀와 그의 경고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지한 고아가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싸웠던 그 그림자와 직접 마주해야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응접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복도는 어제보다 더 길고 어둡게 느껴졌다. 이 저택의 모든 벽이 나를 향해 거대한 비밀을 속삭이는 듯했다.

내 방으로 돌아왔지만, 방 안의 화려함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 저편에,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듯한 온실이 보였다. 준서가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던 그곳. 그 온실 또한 이 비밀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비서는 진실을 쫓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아니,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어머니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내가 그 진실을 밝혀내야만 했다. 그 그림자의 실체를 알아내고,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을 찾아내야만 했다.

갑자기 문득, 한서 오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만약… 정말 그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면… 혼자 두지 않을게. 내가… 내가 너를 지켜줄게. 약속해.' 그의 약속이 이토록 잔혹한 진실 속에서 유일한 빛처럼 느껴졌다. 그의 다정함이 어쩌면 나를 이 어둠 속에서 건져 올려줄 유일한 동아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두려웠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이 재벌가의 숨겨진 딸이 아니라,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사냥꾼이 되어야 했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은 가시밭길일지라도, 나는 나아가야만 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 나를 지키려 했던 그 마음을 위해서라도.

밤이 깊어질수록, 내 결심은 더욱 굳건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거대한 저택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 심장부 어딘가에 내가 찾아야 할 마지막 조각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는 그 조각을 찾아낼 것이다. 이 모든 미스터리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의 그림자를 쫓는 나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 나는 재벌의 숨겨진 딸이었다
1화   1화: 갑작스러운 진실 2화   낯선 문턱 앞에서 3화   3화: 낯선 가족의 온기와 그림자 4화   오라버니의 다정함, 동생의 비밀 5화   차가운 그림자, 따뜻한 온기,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 6화   비밀의 문턱을 넘어서 7화   균열과 마주서다 8화   균열 너머, 드리운 그림자 9화   미궁의 열쇠 10화   숨 막히는 진실의 심연 11화   11화: 판도라의 상자 12화   악마의 초상 13화   13화: 심연의 속삭임 14화   14화: 포식자의 눈 15화   15화: 심판의 서막 16화   16화: 이름 없는 아기 17화   17화: 핏줄의 균열 18화   18화: 악마의 자장가 19화   제19화: 거짓된 요람 20화   제20화: 거짓된 요람 21화   제21화: 부서진 요람 22화   제22화: 잿더미 위에서 피는 꽃 23화   제23화: 악마의 체스판 24화   제24화: 가장 눈부신 파멸 25화   제25화: 우리가 함께 쓰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