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붉고 흰 소음으로 찢어졌다.
내 의지로 촉발된 힘의 역류는 통제 불가능한 야생마처럼 아스텔리온의 영혼을 통해 폭주했다. 내 손바닥을 짚은 강철 문이 종잇장처럼 찌그러지는 감각, 뼛속까지 얼어붙는 죽음의 냉기가 내 혈관을 타고 역류하는 고통, 그리고 고막이 터져 나갈 듯한 굉음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내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등 뒤에서 이안의 육중한 몸이 방패처럼 나를 감싸 안고 바닥을 구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 의식은 이미 육체를 벗어나 있었다.
나는 보았다. 칠흑 같은 죽음의 마력이 응축된 구체가, 아스텔리온을 중심으로 폭발하며 황혼 교단의 봉쇄 진을 안에서부터 산산조각 내는 것을. 기도를 올리던 이단심문관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검은 불꽃에 휩싸여 재로 변하는 것을. 지하 금고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우리를 가두었던 감옥이 스스로의 파괴력에 의해 거대한 무덤으로 변하는 것을.
그 모든 광경의 중심에, 대심문관이 서 있었다. 그는 결계를 펼쳐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닌 희열에 찬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이 끔찍한 파괴를,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 오오! 이것이다! 이것이었어!”
먼지와 연기가 자욱한 폐허 속에서, 그의 미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어되지 않는 순수한 파괴의 힘! 신의 편린 그 자체! 황태자 전하의 예언이 옳았다!”
나는 이안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고, 온몸의 마디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영혼의 일부가 강제로 뜯겨 나간 듯한 극심한 탈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내 도박은 성공했다. 우리는 더 이상 갇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미친 맹수의 우리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 꼴이었다.
“대장… 괜찮으십니까?”
엘리안이 창백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안 역시 갑옷 곳곳이 찌그러지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 우리 모두 만신창이였다. 그리고 폭발의 진원지였던 아스텔리온은… 그는 폐허의 중심에 쓰러져 있었다. 넝마 조각처럼 늘어진 그의 몸 주위로, 검붉은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살아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힘을 모두 소진하고 버려진 저주받은 유물에 가까웠다.
“훌륭하다, 공주.”
대심문관이 우리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은 무너진 돌무더기를 밟고 있었지만, 마치 대리석 복도를 걷는 것처럼 우아하고 오만했다. 그의 뒤로, 폭발에서 살아남은 이단심문관들이 망령처럼 다시 우리를 둘러쌌다.
“네가 내 예상을 또 한 번 뛰어넘는구나. 그 저주받은 피의 흐름을 역으로 제어해 강제로 폭주시킬 줄이야. 네 그 오만함과 잔인함이야말로, 위대한 제물이 될 최고의 자질이다.”
“네놈의 목을 원한다고 했을 텐데.”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바로 세우며 대꾸했다.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나왔다.
“그 더러운 주둥이로 내 이름을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하! 아직도 기개가 살아있군. 좋아. 아주 좋아.”
대심문관은 즐겁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단검을 지나, 내 뒤에 선 이안과 엘리안을 훑었다.
“하지만 이제 놀이는 끝났다. 네놈들의 발악 덕분에, ‘시험’은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순순히 마지막 재료가 되어 주어야겠다.”
“이 악마 같은 놈…!”
이안이 으르렁거리며 대검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아까 나를 보호하다가 다리에 큰 충격을 입은 듯했다.
“퇴로가 없습니다, 대장. 완벽하게… 포위됐습니다.”
엘리안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방이 이단심문관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천장은 무너져 하늘이 보였지만, 그곳으로 날아오를 날개 따위는 없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모두 함께 죽거나, 아니면…
***
대심문관이 손짓했다. 이단심문관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영혼을 구속하는 은빛 사슬이 들려 있었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너희가 발버둥 칠수록, 너희의 고통만 가중될 뿐.”
“닥치고 덤벼, 이 개새끼들아!”
이안이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그는 부상당한 야수처럼 포효하며, 가장 가까이 있던 이단심문관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놈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 명의 심문관이 가볍게 그의 공격을 피하며, 좌우에서 그의 팔을 사슬로 옭아맸다.
“크윽!”
이안이 힘으로 사슬을 끊어내려 했지만, 은빛 사슬은 그의 근력을 비웃듯 더욱 깊게 그의 살을 파고들었다.
“소용없다! 그 사슬은 마력을 봉인하고 근력을 약화시키지!”
엘리안이 품에서 마지막 남은 섬광탄을 던지며 외쳤다. 눈을 멀게 하는 빛이 터졌지만, 심문관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들의 투구 아래에는 인간의 눈 대신, 오직 광신만이 깃든 공허한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심문관은 그 모든 소란을 지휘자처럼 즐기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나였다. 그는 다른 부하들을 시켜 내 동료들을 제압하게 한 뒤, 자신은 유유히 내게로 다가왔다.
“자, 공주. 이제 네 차례다. 스스로 걸어오겠나, 아니면 저 늑대처럼 꼴사납게 끌려오겠나?”
나는 대답 대신, 내 손에 남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그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회오리처럼 회전하며 정확하게 그의 급소를 노렸지만,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보이지 않는 검은 벽이 내 단검을 막아냈고, 단검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리석긴.”
그가 조소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아스텔리온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흑요석 반지가 불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반지를 파괴하지 않는 한, 그를 이길 수 없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돌조각을 주워 던지며 그의 시선을 교란하는 동시에, 그의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내 움직임을 모두 읽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내 목을 잡으려던 순간.
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그의 손을 막아선 것은 내 단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스텔리온이 어느새 던진, 그의 가늘고 긴 레이피어였다.
“네 이놈…!”
대심문관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어렸다. 그는 분명 아스텔리온이 의식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레이피어는 대심문관의 손등을 스치며 얕은 상처를 남기고는, 벽에 박혔다.
나는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몸을 날려 바닥을 굴러, 벽에 박힌 레이피어를 뽑아 들고 아스텔리온의 곁으로 향했다.
“일어설 수 있나?”
내가 묻자, 그는 피를 토하며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은 초점이 흐렸고, 숨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었다.
“주군의… 명령이라면… 지옥에서라도… 기어 나와야지요.”
그는 이 와중에도 농담을 지껄이려 애썼지만, 그의 목소리는 끔찍하게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받쳐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저주가 그의 몸 안에서 폭주하고 있었다.
“네까짓 놈이 감히 나에게 상처를 입혀?”
대심문관의 목소리는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등에서 흐르는 피를 경멸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주제도 모르는 개에게는,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가르쳐 줘야지.”
그가 흑요석 반지를 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스텔리온의 기억 속에서처럼, 반지에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아스텔리온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영혼에 새겨진 낙인이, 그의 심장을 불태워버리기 전에.
하지만 대심문관의 목표는 아스텔리온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른 것은, 이단심문관들에게 붙잡혀 있던 이안이었다. 그의 몸이 갑자기 검붉은 불꽃에 휩싸였다.
“이안!”
“이… 이 개자식…! 이게 무슨…!”
이안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지.”
대심문관이 악마처럼 웃으며 말했다.
“아스텔리온의 피에는 추적의 낙인뿐만 아니라, 그 피에 닿은 다른 생명체를 오염시키는 저주가 깃들어 있더군. 네놈들의 여정에, 저 늑대의 피가 튀지 않았을 리 없지. 특히, 언제나 맨 앞에서 방패 역할을 하던 저 충견에게는 말이야.”
그의 말이 맞았다. 유령의 길에서, 그림자 사냥개들과의 싸움에서, 이안은 수없이 상처를 입었고, 아스텔리온의 피가 그의 상처에 튀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나는 아스텔리온을 직접 고문할 필요가 없어. 그의 저주를, 그의 동료에게 전이시키면 그만이니까. 자, 보아라, 공주. 네 충실한 개가 저주에 잠식되어 미쳐가는 모습을! 그리고 선택해라. 저놈을 네 손으로 죽여 고통을 끝내주겠나, 아니면 저놈이 완전히 괴물이 되어 네 목을 물어뜯게 두겠나!”
***
세상이 멈췄다.
검붉은 불꽃 속에서 울부짖는 이안. 절망적인 얼굴로 그를 부르는 엘리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즐기고 있는 악마. 내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분노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얼음 같은 결심만이 남았다.
나는 내 뒤에 서 있던 아스텔리온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너.”
내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의 텅 빈 자수정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네가 시작한 일이야. 네 손으로 끝내.”
내 말의 의미를 그는 즉시 알아차렸다. 그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흔들렸다.
“주군… 그건….”
“명령이다.”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이것은 제안이 아니었다. 그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네 저주를 거둬들여. 네 피로 오염된 모든 것을, 네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라. 그게 가능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네놈의 그 지긋지긋한 기억 속에서 봤으니까.”
그의 기억 속에는, 낙인이 새겨지던 날의 끔찍한 고통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주 희미하게, 그가 가문의 몰살 이후 폭주하는 자신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죽음과 저주를 자신의 몸 안으로 흡수하던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몸을 더욱 망가뜨리는 자해 행위였지만, 동시에 그의 힘을 가장 극적으로 증폭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하면… 저는….”
“죽겠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니, 어쩌면 죽음보다 더 끔찍한 무언가가 될지도. 하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지금 당장, 내 개를 구해내. 그것이 너의 존재 이유다.”
내 잔인한 명령에, 아스텔리온의 얼굴에서 모든 핏기가 가셨다. 그는 나를, 그리고 불길 속에서 고통받는 이안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고 동료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주군의 명령을 거역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하지만 마법 결속은 그의 선택지를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두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체념한 자의 얼굴이었다.
“당신의… 뜻대로….”
그가 중얼거리며, 이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돼! 멈춰라!”
대심문관이 다급하게 외치며 아스텔리온을 향해 검은 마력탄을 쏘았다. 그는 아스텔리온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것이다. 그가 가진 저주의 총량을 늘리는 것은, 황태자의 계획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빨랐다. 나는 아스텔리온을 감싸 안고, 내 몸을 방패 삼아 마력탄을 그대로 받아냈다.
“크윽…!”
등을 꿰뚫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나는 피를 토하며, 내 품 안의 아스텔리온에게 속삭였다.
“해….”
내 마지막 한마디에, 아스텔리온의 눈에서 마침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어둠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안의 몸을 태우던 검붉은 불꽃이, 자석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아스텔리온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어둠 속으로 흡수되었다. 무너진 돌벽, 이단심문관들의 비명, 대심문관의 분노, 심지어 빛까지도. 세상의 모든 색과 소리가 지워지고, 오직 나와 그만이 남은 칠흑 같은 공허가 우리를 감쌌다.
나는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내 품 안에서 괴물로 변해가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의 자수정 빛 눈동자가,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완전한 심연의 검은색으로 물드는 것을. 그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아스텔리온의 의지가 없었다. 오직 태고의 굶주림과,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순수한 악의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괴물을 해방시켰다. 아니.
내가 괴물을 만들었다.
심연으로 변한 그의 입술이 열리고,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천의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기괴한 목소리가 내 영혼에 직접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