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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34화
용병 황녀의 귀환
제34화

제34화: 왕관의 무게

마르셀의 미소는 내가 아는 그 어떤 가면보다도 정교했다. 저 미소 뒤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지난 몇 달간 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고, 그의 정보를 믿었으며, 그의 계획에 내 동료들의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그 미소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만이었노라고.

“마르셀… 이 개자식…!”

내 옆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는 맹수처럼 낮게 울렸다. 그의 손이 대검의 손잡이를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났다. 배신감에 찬 분노가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오러처럼 피어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마르셀은 그 살기 어린 시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고정된 채, 유희를 즐기는 포식자처럼 빛나고 있었다.

“화내실 것 없습니다, 이안 경. 이건 비즈니스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언제나 수익성이 가장 높은 쪽에 투자하는 상인일 뿐입니다.”

“비즈니스? 우리 동료들이 죽어나갔다! 네놈이 흘린 거짓 정보 때문에, 우리가 함정에 빠져서!”

“아아, 그 점에 대해서는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위대한 대의에는 언제나 사소한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요.”

마르셀은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뒤에 도열한 병사들은 미동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강철로 주조된 인형처럼, 감정 없는 헬멧 너머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엘리안의 눈이 빠르게 그들의 무장과 대열을 훑었다. 그의 입술이 마르고, 식은땀 한 줄기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저들은… 제국의 군대도, 황혼 교단도 아닙니다, 대장. 본 적 없는 문장이 새겨진 갑옷… 저들은 제3의 세력입니다. 완벽하게 훈련된 용병단… 아니, 그 이상입니다.”

“눈썰미는 여전하시군요, 엘리안 님.”

마르셀이 흡족한 듯이 말했다.

“이들은 제 오랜 고객이자, 새로운 사업 파트너이신 분의 정예 병력입니다. 이름하여 ‘침묵의 감시자’들이지요. 아주 유용한 친구들입니다. 불평도 없고, 질문도 하지 않으며, 오직 명령에 따라 움직이니까요.”

내 시선은 마르셀의 입이 아닌, 그의 뒤편에 굳게 닫힌 강철 문을 향해 있었다. ‘망자들의 회랑’. 황태자의 힘의 근원이 저 너머에 있었다. 마르셀은 우리가 이곳에 도착할 것을 정확히 알고, 길목을 막아선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동선과 계획을 꿰뚫고 있었다.

“처음부터였나?”

내 차가운 물음에, 모든 소음이 멎었다. 이안의 분노도, 엘리안의 긴장도, 마르셀의 경박한 웃음소리도. 모두가 내 입을 주목했다.

“내가 네놈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이 네놈의 계획이었냐고 물었다.”

마르셀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는 내 질문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정확히는, 공주님께서 죽음의 사막에서 살아 돌아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그 순간부터입니다. 저는 언제나 가능성에 투자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공주님은, 제 평생 본 그 어떤 원석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가능성’ 그 자체셨습니다. 황태자와 맞설 유일한 칼날, 제국을 뒤흔들 완벽한 태풍. 저는 그저 그 태풍이 가장 거세게 몰아칠 수 있도록, 바람의 방향을 조금 조절해 드렸을 뿐입니다.”

그의 말이 내 심장에 비수처럼 박혔다. 우리의 모든 투쟁과 희생이, 결국은 그의 거대한 도박판 위에서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분노 대신, 차가운 살의를 느꼈다. 내 손이 등 뒤의 단검 손잡이를 찾는 것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잡힌 것은 차가운 허공뿐이었다. 단검은 이미 대심문관과의 싸움에서 잃어버린 후였다.

“이제 와서 그런 눈으로 보셔도 소용없습니다, 공주님.”

마르셀이 내 표정을 정확히 읽고 혀를 찼다.

“지금 당신께 남은 패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충직하지만 부상당한 늑대 한 마리, 머리는 좋지만 마력이 바닥난 책사 한 명, 그리고….”

그의 시선이 내 등 뒤, 그림자처럼 서 있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 칠흑 같은 심연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영혼을 팔아 얻은, 제어되지 않는 괴물 한 마리. 과연 이 패로, 제 ‘침묵의 감시자’들을 뚫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었다. 자신감에 찬 선전포고였다.

***

“닥치고 길을 비켜라, 마르셀!”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이안이었다. 그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듯, 포효하며 마르셀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대검이 지하의 축축한 공기를 가르며, 마르셀의 병사 중 하나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챙강!

이안의 대검은 병사의 투구를 쪼개는 대신, 마치 투명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공허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그 충격에 이안의 몸이 뒤로 휘청였다. 병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갑옷 위로, 희미한 푸른빛의 막이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마력… 방벽인가?”

엘리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그보다 더….”

“소용없습니다.”

마르셀이 이안의 무모한 돌격을 비웃으며 말했다.

“제 ‘감시자’들은 특별히 제작된 갑옷을 입고 있거든요. 고대 룬 문자와 희귀 금속을 녹여 만든 이 갑옷은, 외부의 모든 마력과 물리적 충격을 흡수하거나, 혹은 무력화시킵니다. 당신의 그 무식한 힘도, 엘리안 님의 현란한 마법도, 이들 앞에서는 아이들 장난에 불과하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감시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이안을 포위하며, 특수한 사슬이 달린 갈고리를 던졌다. 이안은 맹렬하게 저항하며 대검을 휘둘렀지만, 그의 모든 공격은 푸른 방벽에 막혀 무력화되었다. 결국, 수십 개의 사슬이 그의 팔다리와 몸을 옭아맸고, 그는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무력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크윽…! 이 개자식들이…!”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요?”

마르셀은 포로가 된 이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나와 엘리안을 향해 물었다. 엘리안은 재빨리 내 앞을 막아서며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승산이 없다는 절망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나의 시선은 묶인 이안도, 마르셀도 아닌, 내 옆의 심연을 향해 있었다. 나는 이미 시험해 볼 필요도 없이 깨달았다. 마르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 가장 강력한 무기 역시 저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저 갑옷은 순수한 마력의 집합체인 ‘그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최악의 상성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명령했다. 이것이 마지막 남은 확인 절차였다.

‘저 갑옷을, 부숴.’

내 명령에, ‘그것’의 몸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피어올랐다. 이단심문관들을 먼지처럼 지워버렸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죽음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살아있는 채찍처럼 뻗어 나가, 가장 가까이 있던 ‘감시자’에게 닿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림자는 병사의 갑옷에 닿는 순간, 마치 뜨거운 철판 위의 물방울처럼, 치이익 소리를 내며 증발해 버렸다. 그림자는 갑옷을 뚫지 못했고, 그 안의 병사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의 몸이 희미하게 움찔했다. 힘의 역류로 인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오, 저런.”

마르셀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소했다.

“제가 깜빡 잊고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군요. 저 갑옷은 사악한 기운에 닿으면, 그 힘을 정화시켜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답니다. 당신의 그 귀여운 괴물을 계속 사용하시다간, 머지않아 제풀에 지쳐 소멸해 버릴지도 모르겠군요.”

완벽한 체크메이트였다.

나의 힘, 나의 동료, 나의 마지막 비수까지. 마르셀은 그 모든 것을 예측하고, 완벽한 카운터를 준비해왔다. 나는 처음으로, 이 지독한 복수의 여정에서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관자놀이에서 차가운 땀이 흘러내렸다. 입안이 바싹 마르고,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

“자, 이제 게임은 끝났습니다, 공주님.”

마르셀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병사들이 엘리안을 제압하고, 내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나는 텅 빈 손으로, 나와 내 옆의 무력화된 괴물, 단둘이 남겨졌다.

“당신이 여기까지 오도록 놔둔 것은, 당신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황태자가 세운 저주받은 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 저주와 동질의,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으니까요.”

그의 시선이 다시 ‘그것’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당신은 제 기대를 뛰어넘어, 이렇게 훌륭한 ‘열쇠’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순입니까? 제국을 파괴할 저주를 없애기 위해, 더 끔찍한 저주를 이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네 목적이 뭐지?”

나는 짓눌리는 압박감 속에서도,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

“황태자의 자리를 네가 차지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더 큰 보상을 약속한 다른 누군가가 네 배후에 있는 건가?”

“그런 시시한 게 아닙니다.”

마르셀은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능글맞은 미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독한 혐오와 경멸이 자리 잡았다.

“황태자? 제국? 웃기지도 않는군요. 저는 이 썩어빠진 제국 자체에 관심 없습니다. 아서든, 당신의 다른 오라비들이든, 심지어 당신이 황제가 된다 해도, 결국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그는 내 코앞까지 다가와,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제국은, 그 뿌리부터 저주받았습니다. 초대 황제가 시작한 그날부터, 아이젠베르크의 피에는 광기와 재앙이 함께 흘렀습니다. 황태자의 저주는 그 피가 낳은 썩은 열매일 뿐. 그 열매 하나를 잘라낸다고 해서, 나무 자체가 정화될 것 같습니까?”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보았다. 단순한 야심이나 탐욕이 아닌, 이 세상의 근간을 뒤엎으려는 혁명가의 광기를.

“제 목적은, 이 저주받은 나무 자체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겁니다. 아이젠베르크라는 이름과, 그 피가 세운 모든 것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저의 대의입니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의 계획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는 단순히 황태자의 적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도, 황녀도, 제국 그 자체도 모두 적으로 돌린, 가장 위험한 반역자였다.

“그 대의를 위해, 내가 왜 필요하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완벽한 ‘열쇠’라고.”

마르셀은 강철 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문 너머에는 밤의 가시의 심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장은, 오직 아이젠베르크의 피와, 그 피와 연결된 강력한 저주만이 파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요. 황태자가 자신의 힘을 보호하기 위해 걸어둔 마지막 보험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오직 당신과 당신의 괴물뿐입니다.”

그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그는 내가 황태자와 싸우도록 유도했다. 내가 아스텔리온과 마법 결속을 맺고, 그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내어 이 괴물로 만들도록 모든 상황을 설계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이 문 앞에 도착하자, 그는 본색을 드러내고 마지막 열쇠를 손에 넣으려 하는 것이다.

“이제 선택하십시오, 공주님.”

마르셀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항복을 권유하는 손짓이 아니었다. 동업을 제안하는 악마의 손길이었다.

“저와 함께 이 문을 열고, 황태자를 지옥으로 끌어내리시겠습니까? 당신의 복수를 완수하게 해드리죠. 그 대가로, 당신은 이 저주받은 왕관의 마지막 주인이 되어, 제국의 끝을 제 손으로 선포하게 될 겁니다.”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그의 등 뒤, 거대한 강철 문이 스스로 울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붉고 불길한 빛이 새어 나오며,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맥동이 느껴졌다. 황태자의 의식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시간이 없군요.”

마르셀의 얼굴이 초조하게 굳었다.

“선택하십시오, 릴리아! 저 문을 열고 당신의 복수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우리 모두가 저주에 삼켜져 함께 죽을 것인가!”

그의 외침이, 울부짖는 문소리와 뒤섞여 내 귓가를 찢었다. 내 앞에는 나의 복수를 제물로 바치라는 악마가, 등 뒤에는 나를 집어삼키려는 심연이, 그리고 문 너머에는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면초가. 아니, 이것은 지옥 그 자체였다.

나는 내민 그의 손과, 피처럼 붉게 빛나는 문틈을 번갈아 보았다.

내 선택에, 세상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 용병 황녀의 귀환
1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2화   과거의 이름 3화   지옥의 문 앞에서 4화   독사의 표식 5화   거짓된 이름의 무게 6화   사자굴 속의 여우 7화   제7화: 사자의 아가리, 독사의 이빨 8화   제8화: 두 개의 복수, 하나의 표식 9화   제9화: 기사의 검, 황녀의 길 10화   제10화: 독이 든 성배 11화   제11화: 거미줄 위의 붉은 보석 12화   제12화: 늑대의 여동생, 뱀의 축배 13화   제13화: 독이 든 축배, 뱀의 낙인 14화   제14화: 늑대의 눈물, 그림자의 칼날 15화   제15화: 유령의 일기장 16화   제16화: 재앙의 탄생, 혹은 거짓된 유언 17화   제17화: 재의 초대장, 늑대의 송곳니 18화   제18화: 피의 자격 증명 19화   제19화: 두 개의 태양, 하나의 그림자 20화   제20화: 은빛 공작의 유희 21화   제21화: 악마의 거래 조건 22화   제22화: 별의 요람, 심장의 무게 23화   제23화: 부서진 거울, 세 개의 실타래 24화   제24화: 태양의 무덤, 그림자의 열쇠 25화   제25화: 황혼의 사냥개 26화   제26화: 달의 심장이 속삭이는 것 27화   제27화: 거짓된 이름, 얼어붙은 심장 28화   제28화: 그림자의 낙인 29화   제29화: 악마의 거래 30화   제30화: 심연의 부름 31화   제31화: 부서진 족쇄, 깨어난 심연 32화   제32화: 괴물의 목줄 33화   제33화: 심연의 계약 34화   제34화: 왕관의 무게 35화   제35화: 왕관을 쓰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