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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32화
용병 황녀의 귀환
제32화

제32화: 괴물의 목줄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내 영혼에 직접 울려 퍼진 그 목소리는, 정체를 묻는 순수한 의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갓 태어난 신이 자신의 창조물을 내려다보며, 그 존재의 가치를 가늠하는 듯한 오만한 선언이었다.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심연의 부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법 결속으로 이어진 상처를 통해 내 모든 것이 저 검은 공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끔찍한 감각에 현기증이 일었다.

등을 후벼 파는 고통이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대심문관의 마력탄이 남긴 상처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갑옷의 틈새를 적시는 축축한 감각이 생생했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 따위는 아무래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는 내가 만들어낸, 통제 불가능한 재앙이 서 있었다. 그리고 저 재앙의 첫 번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다음 순간 집어삼켜지는 것은 적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될 터였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내 품에 안겨 있던 아스텔리온, 아니, ‘그것’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영혼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절대 영도의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자수정 빛 눈동자는 온데간데없고, 빛조차 빨아들이는 칠흑 같은 구멍 두 개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폐허를 가득 메웠다. 대심문관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검은 어둠에 삼켜져 재가 되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두려워하기는커녕, 황홀경에 빠진 신도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보라!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황혼의 눈물’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껍데기를 벗고, 순수한 죽음의 화신으로 강림한 것! 위대하신 황태자 전하의 계획이 마침내 결실을 보는구나!”

그의 미친 외침은 내게 들리지 않았다. 내 모든 의식은 눈앞의 심연과, 그 심연을 내게 묶어둔 유일한 끈, ‘마법 결속’에 집중되어 있었다. 의식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것은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역으로 나를 자신의 일부로 흡수하려 하고 있었다. 목줄을 쥔 손이, 오히려 목줄에 감겨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안 돼.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어.

나는 피를 머금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는 릴리아 폰 아이젠베르크. 제국의 버려진 황녀이자,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 돌아온 복수귀다. 고작 내가 만든 괴물에게 잡아먹힐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 결속의 낙인이 새겨진 상처를 의지로 움켜쥐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갈리는 듯한 고통이 역류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고통을 밧줄 삼아, 나를 집어삼키려는 심연을 향해 소리쳤다. 목소리가 아닌, 영혼으로.

‘내가, 너의 주인이다.’

그것의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내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했다는 듯이.

‘나의 검이자, 나의 방패. 나의 의지를 행하기 위해 태어난 도구.’

나는 내 모든 의지를 칼날처럼 벼려, 그것의 혼돈스러운 의식의 핵을 향해 찔러 넣었다.

‘복종해.’

그 순간, 그것의 몸에서 터져 나오던 검은 기운이 일순 멎었다. 마치 시간을 멈춘 것처럼. 우리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것은 나를 완전히 지배하지도, 나에게 완전히 복종하지도 않은 채, 그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심문관은 우리의 기묘한 대치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광기에 취해 있었다.

“자, 이제 그만 저항하고 신의 제물이 되어라, 공주! 너와 저 완전한 저주가 하나 될 때, 황태자 전하께서는 마침내…”

“시끄럽군.”

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앞의 심연을 향해,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저자를, 죽여.”

***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것’이 움직였다.

움직였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것은 걷거나 뛰지 않았다. 그것이 서 있던 공간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대심문관을 향해 해일처럼 덮쳐 갔다. 빛도, 소리도, 공기마저도 집어삼키는 절대적인 무(無)의 파도였다.

“크헉! 네 이놈이 감히…!”

대심문관은 당황하며 흑요석 반지를 들어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 사악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은, 심연의 어둠 앞에서 솜사탕처럼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살아남은 이단심문관들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앞을 막아섰지만,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어둠에 닿는 순간,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처럼 소멸해 버렸다.

“이 미친 힘은…! 계획을 뛰어넘었어!”

대심문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희열이 아닌 경악과 초조함이 드러났다. 그는 더 이상 이 상황을 즐기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깨우려던 신이, 자신마저 집어삼킬 수 있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는 반지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어둠의 파도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며 소리쳤다.

“이 괴물 자식! 네놈을 만든 것은 교단이다! 나에게 복종해라!”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그것의 의식 속에는 창조주에 대한 기억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원초적인 본능과, 그리고… 그 본능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 나의 희미한 명령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그것의 힘은 강력했지만, 그 힘을 사용하는 매 순간마다 내 영혼 역시 깎여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간 대심문관을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재가 되어 버릴 터였다.

“대장!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무너진 기둥 뒤에서, 엘리안이 절박하게 외쳤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 우리는 여기서 저 미친놈과 동귀어진할 생각이 없었다. 우리의 목표는 황궁에 있는 황태자, 아서였다.

“젠장, 저 괴물 놈이 날뛰어서 나갈 길이…!”

이안이 터진 입술을 닦아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는 저주에서 풀려났지만, 여전히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았다. 사방은 무너진 잔해와, 우리를 포위한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단심문관들로 막혀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심연을 향해 의지를 집중했다.

‘길을 열어.’

내 명령에, 대심문관을 향하던 어둠의 파도가 방향을 틀었다. 그것은 우리의 퇴로를 막고 있던 두꺼운 벽과 이단심문관들을 향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했다.

콰아아아아앙-!

지하감옥의 한쪽 벽면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구멍 너머로는 수도의 하수도로 이어지는 어둡고 축축한 통로가 보였다.

“지금이다! 뛰어!”

내 외침에 이안이 엘리안을 부축하며 먼저 구멍으로 몸을 날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대심문관을 노려보았다. 그는 어둠의 여파를 막아내느라 잠시 균형을 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살아서 나를 향해 불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네놈의 심장을 가지러 돌아오겠다.’

나는 속으로 맹세하며, 몸을 돌려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내 뒤를, ‘그것’이 소리 없이 따랐다. 우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등 뒤에서 대심문관의 분노에 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놓치지 마라! 저주받은 공주와 신의 그림자를 반드시 내 손에 넣어라!”

***

역겨운 악취가 코를 찔렀다.

수도의 모든 오물이 모이는 하수도는 지옥 그 자체였다. 우리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더러운 물을 헤치며, 어둠 속을 끊임없이 걸었다. 등 뒤에서 추격대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복잡한 미로 같은 하수도 덕분에 금방 따돌릴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대한 공동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멈춰 섰다. 엘리안이 마력석에 불을 붙이자, 축축한 이끼가 낀 거대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지하 저수조인 듯했다.

“일단… 여긴 안전할 겁니다.”

엘리안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독한 피로에 젖어 있었다.

“퉷! 빌어먹을 쥐새끼들 신세라니.”

이안은 벽에 기대 주저앉으며, 더러운 물을 뱉어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손과 팔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태우던 검붉은 저주의 흔적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의 시선이 복잡한 감정을 담은 채, 공동의 한쪽 구석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그것’에게로 향했다.

나 역시 그를 보고 있었다. 아스텔리온이었던 존재.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심장도 뛰지 않았다. 그는 살아있는 시체, 혹은 움직이는 그림자 그 자체였다. 칠흑 같은 눈은 텅 빈 채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고, 내 명령이 없는 한 미세한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든 완벽한 살인 인형.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시려왔다.

나는 찢어진 옷자락으로 상처를 동여매며 벽에 기댔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력을 무리하게 사용한 대가가 혹독하게 찾아오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대장?”

엘리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죽지 않아.”

나는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내 상태는 최악이었다. 대심문관에게 입은 상처보다, 저 괴물과 연결된 영혼의 상처가 더 심각했다. 그것은 낫지 않는 저주처럼, 내 생명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저 자식… 저건 이제 카엘이 아닌 건가?”

이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심과 함께, 한때 동료였던 자에 대한 아주 희미한 연민이 섞여 있었다.

“카엘은 죽었다.”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건 그냥, 내 도구일 뿐이야.”

내 차가운 선언에, 이안과 엘리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짓눌렀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은신처도, 동료들도. 남은 것은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와, 언제 다시 폭주할지 모르는 괴물 하나뿐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려 애썼다. 황궁으로 가야 한다. 황태자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더 확실한 수가. 그리고 그 해답은, 내 눈앞의 저 괴물에게 있었다.

나는 다시 의식을 집중해, 내 도구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내면은 여전히 혼돈 그 자체였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안정되어 있었다. 나의 ‘주인’이라는 낙인이, 그의 폭주하는 본능 위에 아슬아슬하게 씌워진 족쇄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가 나를 통해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으로, 그가 나의 생명력을 양분 삼아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마법 결속을 통해, 내 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나는 싸우기도 전에 말라 죽게 될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것’에게 다가갔다. 이안과 엘리안이 긴장하며 내 행동을 주시했다.

나는 그의 앞에 섰다. 지척에서 마주한 그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것처럼 깊고 공허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뺨에 손을 댔다. 인간의 감촉이 아니었다. 잘 빚어진 흑요석을 만지는 듯한, 차갑고 단단한 감각이었다.

“너.”

내가 입을 열었다.

“내 힘을 훔치고 있군.”

내 말에, 그의 텅 빈 눈동자에 아주 희미한 변화가 일었다. 마치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 손바닥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어린아이가 어미의 온기를 찾는 듯한 그 행동에,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이전처럼 수천의 목소리가 뒤섞인 불협화음이 아니었다. 훨씬 더 명료하고, 차분한. 하지만 그래서 더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내 등이 아닌, 내 영혼의 상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상처 부근의 옷자락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길은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가 닿는 순간, 내 영혼을 갉아먹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마치 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리듯, 그의 죽음의 기운이 내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건… 치료가 아니었다. 그는 내 고통을 ‘먹고’ 있었다.

나는 놀라 그의 손을 쳐내려 했지만, 그의 다음 말이 나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 텅 빈 심연 속에서, 나는 보고 말았다. 태고의 존재가 지닌, 지독하고 순수한 굶주림을.

📚 용병 황녀의 귀환
1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2화   과거의 이름 3화   지옥의 문 앞에서 4화   독사의 표식 5화   거짓된 이름의 무게 6화   사자굴 속의 여우 7화   제7화: 사자의 아가리, 독사의 이빨 8화   제8화: 두 개의 복수, 하나의 표식 9화   제9화: 기사의 검, 황녀의 길 10화   제10화: 독이 든 성배 11화   제11화: 거미줄 위의 붉은 보석 12화   제12화: 늑대의 여동생, 뱀의 축배 13화   제13화: 독이 든 축배, 뱀의 낙인 14화   제14화: 늑대의 눈물, 그림자의 칼날 15화   제15화: 유령의 일기장 16화   제16화: 재앙의 탄생, 혹은 거짓된 유언 17화   제17화: 재의 초대장, 늑대의 송곳니 18화   제18화: 피의 자격 증명 19화   제19화: 두 개의 태양, 하나의 그림자 20화   제20화: 은빛 공작의 유희 21화   제21화: 악마의 거래 조건 22화   제22화: 별의 요람, 심장의 무게 23화   제23화: 부서진 거울, 세 개의 실타래 24화   제24화: 태양의 무덤, 그림자의 열쇠 25화   제25화: 황혼의 사냥개 26화   제26화: 달의 심장이 속삭이는 것 27화   제27화: 거짓된 이름, 얼어붙은 심장 28화   제28화: 그림자의 낙인 29화   제29화: 악마의 거래 30화   제30화: 심연의 부름 31화   제31화: 부서진 족쇄, 깨어난 심연 32화   제32화: 괴물의 목줄 33화   제33화: 심연의 계약 34화   제34화: 왕관의 무게 35화   제35화: 왕관을 쓰는 자